경험해야지만 알 수 있는 것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지인들이 “또 가?” “또 하와이겠지 뭐”라고 할 만큼 내 여권에는 몇 년간 같은 도장이 찍혀있다. 그렇게 하와이 여행을 다니면서 사용한 경비도 경비이지만, 항공사 마일리지도 꽤 많이 적립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경험이 생겼고 결국 그 경험은 모든 이야기를 쓰는데 출발점이 되고 있다.
소개팅하며 처음 만나는 상대도, 처음 밟아보는 낯선 땅도, 처음 느껴보는 공기도 모두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경험하지 않고 절대 알 수 없는 것 말이다.
처음 하와이 여행을 갔을 때 청명한 바람을 꽤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 선셋 세일링을 신청했다. 둘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딱 좋았고,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이 가득했다.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알코올, 온몸으로 느끼기 좋은 태평양을 담은 바람, 바다에 잠드는 불그스름한 노을, 그 위를 검붉게 물들이는 황홀한 석양까지. 저녁을 먹으며 두세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바다 위 작은 파라다이스는 낭만으로 가득했다. 크루즈를 할 만큼의 대형 선박은 아니었지만, 20~30명가량 요트 위 선셋을 즐겼다. 그 뒤에도 선셋 세일링 때와 비슷한 크기의 요트를 타고 마우이 섬 인근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무인 섬인 ‘몰로키니(Molokini)’에 스노클링을 하러 가기도 했다. 설렘 가득한 스노클링도, 낭만으로 충만한 선셋 세일링도 요트 투어는 우리 부부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용을 낸 것 이상으로 즐겼고 또 두고두고 회자할 만큼 좋은 추억도 새겼다.
얼마 뒤 친한 친구들이 하와이 여행을 간다고 했다. 안 가본 사람보다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 낫지 않을까? 친구들이 계획한 일정을 보며 나는 주저하지 않고 스노클링을 추천했다. “여기 스노클링 해봐!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한번 거북이랑 같이 수영을 해볼 수 있을 거 같아?”하며 온갖 미사여구와 기대치를 보탰다. 친구들은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스노클링 일정을 추가했다. 친구들의 여행 중 스노클링을 잘 하고 왔는지 궁금해 메시지를 남겼다. 그들도 나처럼 멋진 바닷속을 탐험하게 되어서 좋아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서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꽤 간단했다. ‘실신!’ 여자 세 명이 모두 배 위에서 쓰러졌다는 것!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모두 뱃멀미로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혹시 몰라 먹은 멀미약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심하게 멀미를 한 탓에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빈 속만 부여잡고 호텔을 병원 삼아 누워있었다고 전했다. ‘바다 투어’ 혹은 ‘요트 투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만큼 내 친구들의 기억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몸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일화이다. 특히, 신체 컨디션과 관련된 것은 더더욱이 말이다. 내 추천으로 고생했을 친구들에게 “내가 느끼지 못해서 뱃멀미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어.”라며 내심 미안한 마음을 건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식구들과 함께 요트 투어에 다시 나섰다. 카우아이 섬, 나팔리 코스트(Napali Coast)를 즐기기 위해 선택한 선셋 투어였다. 조각칼로 새긴 것처럼 기이하게 생긴 에메랄드빛 절벽을 바다 위에서 즐기고 싶었다. 속으로 ‘어른들이 타시면 진짜 좋아하실 거야!’라며 혼자 꽤 뿌듯해했다. 5시간이 소요될 만큼 꽤 긴 투어였다. 트레일을 하더라도 2박 3일이 걸리는 나팔리 코스트, 그 장대한 절벽을 즐겨야 하는 시간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 경험이 떠올라 어른들의 멀미약도 미리 챙겼다. 엄마와 이모는 낯설지만 진귀한 경험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우리 부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요트는 40~50명가량 탑승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전에 경험한 요트보다 조금 더 큰 것이었다. 요트 탑승 후 출발은 꽤 좋았다. 선상 내 자리를 잡고 갑판 위로 올라가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출발지인 포트 알렌(Port Allen)이 점점 더 멀어져갔고 에메랄드 해안 절벽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했다. 살결을 스치는 바람도 적당히 우리의 기분을 흔들었고 이모는 포즈까지 취하면서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 역시 나팔리 코스트가 나오기 전부터 감탄사를 내뱉었다. 항구에서 요트가 출발한 지 5-10분, 딱 거기까지였다.
갑판 위에서 눈부신 경치를 즐기고 있던 나를 부른 건 엄마였다. 부랴부랴 갑판 아래로 내려가니 이모가 보이지 않는 것. 주위로 시선을 돌리다 크루(Crew)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멀미와 사투를 벌이고 이모가 시야에 들어왔다. 요트 내 멀미 봉투를 얼마나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힘겨웠던 시간. 이모의 멀미 때문에 요트를 항구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투어를 마치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더 남았다. 이모의 멀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손쓸 방법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옆에서 몸을 기댈 수 있게 한쪽 어깨를 내어주는 것밖에는 말이다. 중국인 남성 한 명도 이모와 나란히 앉아 멀미와 사투 중이었다. 둘을 보고 있으니 ‘뭐든 혼자보다 둘이 나을 거야’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안도감도 들었다.
이모의 뱃멀미를 보고 있자니 전염이 되는 것처럼 괜찮았던 나 역시 멀미를 하는 듯했다. 기분 좋던 파도의 울렁임은 뱃멀미를 하는 두 사람 앞에만 가면 바다의 적막함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울렁증이 시작되는 거 같으면 ‘아~ 나마저 이러면 안 돼!’ 하고 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이모의 멀미는 요트가 항구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계속되었고 이모가 본 건 나팔리 코스트의 웅장함이 아니라 눈 감으면 빙빙 돌아가는 선체였다. 뱃멀미는 항구에 내려서야 평온을 찾는 듯했다. 이모가 겪은 시간에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간 여행 중 진땀을 가장 많이 흘린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카우아이의 추억은 친구들이 배 위에서 겪었을 고통을 작게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모는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아직도 끔찍하다.”며 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타인도 당연히 괜찮을 거로 생각했던, 미처 알지 못한 뱃멀미는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모든 사람의 기억은 제각각이고, 추억 역시 다르게 적힌다는 것. 모두의 추억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