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첫날, 쥬데카의 아침

20190910

by 셩혜

성인 남녀가 동시에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방, 이곳 호스텔에 한번쯤 묵어보고 싶어 스스로 선택한 곳이지만 불편한 방 크기에 잠시 후회한다. 방 공간의 80%가 침대다. 트윈침대 두 개를 붙여 킹 사이즈를 만들어 뒀다. 이 방에 난 사각 창문이 후회스러운 마음을 달래준다. 창 너머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Chiesa di San Giorgio Maggiore)이 있다.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여명이 내린다. 이불 밖 새벽 공기는 차지만 시계를 보려면 잠깐이라도 몸을 일으켜야 한다. 다섯 시. 다시 누워 한 시간을 더 자고 나니 붉은 기운이 운하에 조심스레 스며든다.


창문을 열었다. 분명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게 뻔했지만, 그 바람보다 베네치아에서 첫날 아침이 전해주는 기운의 강한 이끌림을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바포레토, 배달선, 청소부까지. 베네치아 하늘과 물길이 이렇게 하루 시작을 알린다. 주섬주섬 입고 산책에 나선다.


쥬테카(Giudecca) 섬은 아직 고요하다. 오버 투어리즘 탓에 베네치아 시민들이 여행자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 하여 간간이 마주치는 이들에게 맘껏 ‘차오’, ‘본 조르노’라고 외치기가 망설여진다. 운하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성당을 지나 걸으니 바람이 꽤 차다. 힐튼 몰리노 스터키(Hilton Molino Stucky) 호텔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었나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얼굴을 내미기에 방향을 틀어 호스텔로 향했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 레덴토레(Redentore) 정거장을 지나는데 좀 전에 어색하게 인사한 노인이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눈이 다시 마주치자 ‘차오! 차오~벨라(ciao bella)’라며 몇 번을 말한다. (이런 건 한 번에 잘 알아듣는다.) 예쁘다고 한 것이 친절인지 칭찬인지 혹은 그냥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성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탈리아 남자는 조심해야 한다는데, 아침부터 조심해야 할 남자 중 한 사람을 만난 듯하다.

유럽 내에서 잘 알려진 호스텔 체인 ‘제너레이터 베니스(Generator Venice)’의 공용공간은 넓지 않지만 꽤 잘 꾸며뒀다. 다양한 종류의 의자와 테이블이 넘쳐 난다. 벽지도 차별화를 둬 화려함부터 정갈함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니 부지런한 여행자는 벌써 짐을 꾸려 하루를 나선다. 호스텔답게 제 몸 보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멘 이들이 많다. 체크인할 때부터 찍어둔 빨간 의자에 앉아 이 산책 일기를 적어본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 따뜻한 커피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시간이다. 객실로 올라와 다시 창문을 열었다. 어! 무지개다. 언제 봐도 신기하다. 베네치아 첫날 아침, 무지개라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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