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꽃이 진 자리

비로소 보게 된 것들

by 이도

2019년 4월,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은 너무도 황망했다. 지병도, 사고도 아니었기에 그 허무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동안 동생이 떠났다는 사실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허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의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기에 내 슬픔은 누르고 숨기며 버텼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연인의 이별은 시간이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가족의 죽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억지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을 애써 피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받아들일 힘도 여유도 없었다. 눈물은 마르지 않았고 가슴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일에만 매달렸고, 시간의 틈을 만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그러다 결국 무너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운전 중 숨이 막혀 구급차를 탔다. 반복되는 발작 끝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종교도 없는 내가 절을 찾아가 스님께 무작정 대화를 청했고 감사하게도 차담을 나눴지만 그 어떤 말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좋은 형이 아니었다. 괜히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형 노릇을 한다는 명분으로 서투르게 거리를 두었다. 응원 한 번 제대로 해준 적 없었다. 연락도 뜸했고, 한 번씩 마주쳐도 필요한 말만 했다.


가장 큰 후회는 하지 않았고 못했던 말들이었다.
형은 널 미워하지 않는다고, 사랑했다고, 아끼고 있었다고, 잘 되길 바랐다고,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단 한 번만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다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날, 동생의 부고를 듣고 달려간 병원에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동생을 30분도 채 안 되어 차가운 냉동고로 옮겨야 했고, 곧 부모님을 돌봐야 했다. 시신 안치실 앞 바닥에 주저앉아 밤을 지새우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례는 숨 가쁘게 지나갔다. 결정해야 할 절차들, 끊임없이 찾아오는 조문객들, 그리고 발인과 화장. 정해진 방식에 떠밀려 나는 동생을 세상에서 부리나케 떠나보냈다.

화장로 앞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실신한 엄마를 붙잡고 망연자실한 아버지를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네가 부모님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강해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나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병들고 시들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린 모두 죽는데 왜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동생이 죽던 날조차 나는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고, 삶이 너무나도 덧없고 허망하게 느껴져 매일 걷고 또 걸으며 끝없이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동생 몫까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왔지만 자신이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두려움과 허무함을 동시에 데려왔다. 동생이 남긴 것은 많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그 부족함이 오히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뒤늦게 동생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제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애를 썼다.

어느 날, 추모공원에서 돌아오는 길 창밖 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늘 보던 길이었는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동생이 없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아프고 서글펐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활짝 핀 저 아름다운 꽃들도 곧 지겠구나. 영원한 건 없구나. 저 푸른 나무들도 결국엔 잎을 다 떨어뜨리겠지.

조금 일찍 아니면 조금 늦게 떨어질 뿐 결국 모든 꽃잎과 나뭇잎은 다 지는구나.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조금 더 빨리 진 꽃이라고 해서 그 피어남이 덜 아름다웠던 건 아니구나. 피어난 시간만큼은 그 자체로 충분히 찬란했구나, 하는.

돌아오는 길, 강신주 철학자의 말이 앞선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너무 슬퍼할 것 없다. 너도 곧 간다.” 그래, 나도 곧 가는구나. 동생이 조금 더 빨리 갔을 뿐, 나 역시 그 길 위에 서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하게도 가벼워졌다.

우연히 유퀴즈를 통해 월호스님을 봤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연달아 두 동생을 잃고 공황을 겪은 끝에 출가했던 그의 사연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다. ‘불이(不二)’. 뻔했던 그 말이, 그 순간 내게는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움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자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동생의 삶은 이미 충분히 빛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잣대로 그의 삶을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짧지만 그는 자신의 꽃을 피웠다. 너무 일찍 져버렸다고 해서 그 꽃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끝없는 슬픔 속에만 머무는 것은 오히려 그의 삶을 욕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후회와 미안함만 붙들지 말자. 따뜻했던 시간, 빛나던 청춘을 기억하자. 그렇게 기억할 때 동생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고, 짧지만 아름답고 따뜻했던 그의 삶을 내가 잘 기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후로 동생 이야기를 더 자주 했다. 그가 좋아하던 곳들을 찾아갔고, 여행을 할 때면 곁에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동생을 잃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사랑을 알기 시작했다.

그 무엇도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동생을 그리워하고, 가끔은 아무 예고 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후회만 붙잡고 끝없이 가슴을 치며 살아가는 대신, 비록 떠났지만 남겨진 삶과 흔적을 가슴 깊이 채우며 사는 것이 동생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동생에 대한 마음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며, 그때의 나를, 그리고 동생의 마음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힌다는 말이 왜 그토록 싫었는지 이제는 분명히 안다. 왜 기억해야 할 사람을, 왜 사랑하는 사람을 지워내야 하는가. 떠났다고,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인 것을.

예전엔 동생의 부재를 인정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떠나보내려 할수록 가슴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우지 않고, 잊으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담아내고 붙잡고 있을 때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애도가 치유로 바뀌는 순간은 ‘놓는 법’을 배울 때가 아니라, ‘놓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찾았을 때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잊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을 쌓아 올리는 시간이. 애써 밀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에 다시 들여놓는 시간이. 그렇게 나는 동생을 떠나보내는 대신,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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