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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Jun 24. 2024

[서평] 거울들

Dark side of the human-being

거울들 : Dark side of the human-being

500년 뒤 세계사 교과서에 2025년 연표가 붙는 한국의 사건 사고는 어떤 일이 등장할까? 


-대한민국 산유국으로 첫걸음을 떼다

-의료 붕괴로 백성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일본에 소프트웨어 주권을 빼앗겼다 


궁금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어쩌면, 인구소멸의 위기 속에 2524년도 세계사 교과서는 한글판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반도에는 침몰된 자국에서 탈출하여 옆나라에 침략으로 정착한 일본인이나, 조선족을 앞세워 새로운 자국의 성으로 흡수 합병한 중국 역사가들이 한반도의 기억을 굳이 되살릴 필요 없을 테니. 

분명 존재했던 국가와 민족들.


존재의 상실은 의미의 상실로 연결된다.

지금 봐도 눈이 번뜩 커질 만큼 놀라운 문명 발전을 이루었던 잉카제국이나 낯선 이방인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여주던 원주민 인디언의 기록은 일부만 남아 가십거리 정도로 배꼼이 머리만 역사 무대에서 보여줄 뿐이다.

기원전 세계처럼 패망한 국가 백성들이 노예로 전세계 각지로 팔려 나가지 않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세계 패권을 주도한 유럽인들과 현재의 최강대국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존되고 기록된 시간의 이면에는 우리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누군가가 - 때로는 패자의 이름으로, 때로는 망각의 이름으로 -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엄연히 대지 위에 존재했던 그들에게도 꽃의 이름을 부여하고 싶고, 족적을 과거와 다른 관점을 들이밀며 해석해보고 싶어도 기록과 유물은 약탈되고 파괴되어 과거를 추격하는 일은 불가능 해졌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는 기록물과 사람들의 구전을 박박 긁어 모아 모든 세상 살아간 이들의 역사를 짤막한 에피소드 연작으로 담아낸 “거울들”이 책으로 등장한 건 기적에 가깝다.

그만큼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페이지들이다. 역사의 구분이나 지리적 선 긋기를 무시하고 시간의 흐름이 무모한 전진만을 해왔듯, 예쁘게 단락을 구분 짓고 챕터를 나누지 않은 채 내용을 빽빽이 적어 내려간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세상은 이렇게 많은 주체들이 각 자의 시공간을 채워왔던 거라고. 


이름모를 시인들이 읊었을 문장이 등장하고, 의술과 사기술의 중간 어디쯤 가는 아랍 여인의 신묘한 의학 기술 이야기도 등장한다. 사실 그들 모두 역사를 이끌어왔던 작은 조각이었고 위대한 왕의 일대기에 비루하지 않은 가치 있는 유산이다. 다만 그런 작은 역사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지 못했을 뿐. 

인간이 군집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며 약육강식 세계에서 버틸 수 있던 근원의 힘은 “협동”이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거친 송곳니, 거대한 몸집이나 빠른 다리, 강점이 별로 없던 포유류가 생존을 위해 붙잡은 유일한 무기는 집단의 힘이다.

군집에서 한 마리를 희생하여 다수가 살아남는 수동의 자세가 아닌, 다수의 분산된 공격을 한군데로 집중시킬 수 있는 공격 성향의 전략이 악조건 속에서 연약한 원숭이가 살아남게 만든 무기가 되었다.


본래 인류의 뿌리는 아프리카였고, 검은 피부였다.


세계 각지로 거주지를 달리하며 태양은 하나의 종에게 다른 피부색을 주게 되었고, 한정된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위한 지성의 암투는 갈등과 차별과 전쟁을 집단의 힘으로 풀어내려 했다. 지금은 핵무기까지 만드는 광폭의 발전을 이뤘음은 물론이다. 

과거와 달리 흩어진 개인 또는 하나의 국가가 나머지를 지배하며 불균형을 균형으로 위장한 채 경쟁력을 확보한다.

태초 인간이 가진 집단의 경쟁력을 잃어버린 현대사회는 어쩌면 외부의 경쟁자 출현으로 인해 파편화되어 군집의 힘을 잃은 인류의 종지부를 찍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였고, 로마에서 시작된 종료는 서양 세계를 집어 삼켰다.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유지하게 시작된 원정 기사단의 활약은 겉으로 보기에 신의 섭리를 따르려는 거룩하고 선한 자의 이미지를 찾으려 했지만, 명분도 없이 지친 몸과 마음을 해결할 방법은 본성 깊은 곳에 숨어있던 흉포함이다.

나와 다른 자들은 괴물로 설정하고 인간이 아닌 살덩어리에 가해치는 폭력은 죄가 아니라 믿었다.

매일 취침 전, 신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며 기도하지만, 다른 피부, 이교도, 적군을 처단하는 행동은 죄의 범주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은 목표가 누구이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망각하고 그저 칼을 휘두르기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십자군의 잔인한 폭주는 훗날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는 백인들의 광란으로 이어졌고, 죽음은 끝없이 이어지고 소중한 문명은 한순간 파괴된다.

그리고 그렇게, 패배한 자들의 역사와 문화와 생명이 지구 땅에서 슬픈 표정으로 사그라진다.  

같은 동족끼리 계급을 나누고 차별을 하는 건 자연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다. 인간 군집이 도를 좀 많이 벗어나서 문제지.


자신의 시를 좋아하는 제국의 여왕을 칭송하는 화려한 파티를 7일씩이나 벌이는 일 따위는 최상위층의 부를 거머쥔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자국민 10만명이 아사로 죽어가는 순간에 펼쳐진 향연은 사람들의 시계바늘이 똑딱 거리기 시작한 이후 되풀이되는 비극이자 코미디이다. (아니 어차피 아사자들은 노예일 뿐이다, 집 안에 기르는 개와 고양이 보다 못한)

20세기에 들어가 통째로 조국이 식민지가 되었어도 인도의 왕자들은 지금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돈 씀씀이를 과시한다. 21세기에도 “카스트”라는 낡은 제도가 국가 통치의 기본 구조로 인정되고 그 안에서 국민들은 흡수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불의와 불이익조차 체제와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의 아이러니와 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부정한 부의 축적을 위해 소규모 투자자들의 등을 따버리는 행위가 유력 인사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또다른 부의 획득을 획책하는 현대에도 유사한 행위는 반복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작전은 대중들의 묵인 또는 무지 하에 자행된다. 


이웃을 사냥하는 사냥꾼

자신이 발명한 기계를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

자신의 가정을 황폐화시키는 유일한 동물

쾌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 

인간의 특징을 표현한 몇 가지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나이 먹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노력은 포기하고 있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변화를 스스로 주문한다.

역사가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를 존중하며 공동운명체의 의식을 유지했더라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잊혀 진 자들의 역사에서 풍기는 서글픈 에피소드는 모든 이들의 역사를 조망해보려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지만, 앞으로 우리가 닥칠 험난한 세상에 인류라는 생명 종 전체가 하나로 뭉쳐야 하는 이유를 알리는 메시지일 지 모른다.


자연재해와 끝없는 갈등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종의 멸절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다름, 차이를 인정하고 작은 역사에 대한 경의를 갖는 지혜를 갖추지 못한 다면 힘의 대결만 난무하고 협상과 타협 없는 막장으로 역사의 바퀴를 밀어 넣게 될 것이다.


협력하는 국가 간의 협력을 이끌 수 있는 강인한 지도자들이 새로운 층위의 역사를 만들 혜안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매머드를 협동작전으로 사냥에 성공하는 인류의 위대했던 쟁투기를 재현해내 길 바랄 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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