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복제한 AI의 축복, 또다른 나의 백업
인간의 뉴런은 860억개 정도라고 하는데 만약 디지털 기술이 향상되어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다면 웨스턴디지털 하드가 몇 개나 필요할 지 궁금하다.
대략 1페타바이트 (PB)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47억권의 책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 단순하게 지금까지 평생 읽은 책 수와 비교만 해봐도 아득한 분량인데, 우리 뇌는 메모리의 역할 뿐 아니라 감정 구현이나 미세한 감각 센싱 등 복합 신호 처리를 해야 하니 단순 비교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하드디스크에 뇌의 모든 활동을 저장할 수 있고, 데이터가 인공 신체 등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호 데이터 교환이 가능한 기술을 발명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복제될 수 있을까?
뇌의 데이터를 뽑아내어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여 의식을 생성한다면 그 녀석의 기억이나 생각의 방향, 의사결정의 선택은 100% 나와 동일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 놈은 나인가?
그 녀석은 나를 어떻게 해석할까?
“적으로, 동지로, 경쟁자로, 한낱 고기 덩어리에 갇힌 한심함 영혼?”
복잡해지는 테크놀로지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결국 AI 시대에 맞는 윤리학 제창이 시급하다는 경고를 준다.
게임 유저들에게 각광받던 앤비디아의 주식이 하늘을 뚫어버리는 경제 가치를 보여주고 있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생성형 AI의 놀라운 결과물은 미래의 변화가 인간의 인식을 아득히 넘어선다는 예상은 쉽게 가능하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쏙 빼 닮은 살인기계를 인간들에게 보내는 약간의 유머까지 동반한 AI 등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진행형의 2024년 오늘 모습이다.
죽음이 예견된 말기 암 환자의 아내가 겪을 세상사람들의 동정이, 그녀가 놓인 처지에 따라 제 각각의 반응이 보이는 장면은 - AI가 구현해내는 세상이 결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암시일지도 모르지만, 결코 공정한 사회는 아닌데 굳이 카피할 필요가 있을 지 모르겠다.
대기업가의 죽음으로 사람들은 동정 어린 시선이 아닌 질투와 음모의 검은 눈동자로 미망인을 바라본다.
심지어 남편이 일구어 낸 기업의 임원들도 업무를 잘 알지도 못하는 대주주의 조용한 퇴장을 바랄 따름이다.
합리성과는 동떨어진 처사라고 비난하기에는 어려움도 따른다.
실제 여배우 출신의 주인공이 거대 기업의 총수가 된다면 경쟁사들만 만세를 부를지도 모르니.
남편의 서재에 칩거하던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라는 인연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뜻밖의 방해자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잔잔한 인생의 여유가 되었겠지만 세상일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방해꾼이 세상과 작별한 전남편이라면 두 연인의 기분이 어떨까?
인공지능이 인간 내면의 악한 면까지 학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흥미를 돋군다.
AI에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자료를 제공하고, 대화를 진행할 때 사회의 부정 요인을 자주 언급했을 때 결과값이 그동안 학습된 내용이 크게 반영된 사례가 소개된 적이 있다.
과학자가 자신의 생을 가상공간 속에서 영위하기 위해 카피에 가까운 동기화를 진행한다면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추악한 면, 심지어 자각하지 못한 잠재의식마저 전송될 수 있고 인간의 한계성을 넘는 데이터와 결합하여 새로운 인격체를 가지게 된 AI의 폭주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교묘한 위장막 너머 인류의 위협이 될만한 무언가를 준비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러 악을 증폭시킨다면 파장은 파국이다.)
감각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논리의 데이터 형태로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AI는 본인 의지에 맞게 감각을 왜곡하고 또다른 추론을 통해 상상치도 못할 악의 화신이 되어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무한한 능력을 부여하기에 각 국 정부와 과학자들이 2024년 오늘날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부정의 측면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의 역사물을 흥미로운 서사로 풀어내 드라마화까지 성공시켰던 작가의 신작은 예상을 벗어난 가까운 미래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고전미 넘치는 작품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주제와 시대상이 예상과 빗나가 아쉬운 감도 들었다. 그러나, 인상 깊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손길을 가게 만든 출판사의 전략이 먹힌 탓인지, 책을 골랐고 -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며 작가의 상상력과 문자로 뿜어내는 정제된 화려한 문체는 최근 가장 큰 화두가 근 미래 세상의 불안한 광경을 목격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와 희망이 교차되는 가능성의 시간을 제공한다.
SF소설이 과거처럼 “공상” 소설이 아닌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미래 예측이라는 점은 읽어가는 책장이 살짝 떨리는 착각을 일으킨다.
추천 대상 : sf 라면 바로 이 책, 일단 시작 /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세계를 도전하고 싶은 독자 / AI 세상의 어두운 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윤리학자와 과학자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