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오싹하게 만드는 전설의 역사 속으로 뛰어들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도시기담 세계사 : 여름을 오싹하게 만드는 전설의 역사 속으로 뛰어들다
선크림을 하나 사야겠구나 마음이 들 즈음, 지하철에서 연결되는 교보문고 잠실점 출입구 앞 쪽에 새로운 코너가 등장했다.
바닥에도 음산한 스티커를 붙여놓고 약간 움푹 들어간 공간에 공포 소설과 기담 도서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오긴 왔구나.
더운 날은 만사가 귀찮지만 그래도 서늘한 등줄기 식은 땀 한 방울 흘러내리는 무서운 이야기는 잠시나마 30도를 넘나드는 열대야의 끈질긴 괴롭힘에서 벗어날 묘책이 된다.
어린 시절에는 “전설의 고향” 같은 납량 특집이란 거창한 타이틀의 드라마가 시선을 끌었지만 OTT가 지배한 세상에서는 일 년 내내 원한다면 버튼 한 방으로 집 안을 피비린내나는 도륙의 현장으로 바꿔버리니 좋은 세상이네, 한마디 내뱉게 된다.
몇달 전 블루레이로 영화 “기담”같이 여러 개 에피소드가 복잡하게 얽혀가는 스타일만큼이나 좋아하는 방식은 실화에 기반한 무서운 이야기다.
영화 초입에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이다.”라고 등장하면 사실 거짓말이 90%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이 문구 하나가 주는 사실감은 몰입도를 2-3배 강화시킨다.
세계사에 떠도는 기담을 역사적 사실과 연계시킨 저자들의 접근방식이 탁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전설이 가져야 할 3가지 요소는 이렇다.
1. 강력한 호소력을 갖춘 일상적인 이야기일 것.
2. 실제적인 신념에 근거할 것.
3. 의미 있는 메시지나 도덕 규범을 나타낼 것.
여기에서 2번만 살짝 비틀어 역사 사실이나 인물에 근거할 것이라는 단서를 집어넣으면 독자들에게는 지루할 지 모르는 세계사를 색다른 눈길로 바라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책에 등장하는 기담들의 반 정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싹한 스토리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역사 속에 남아있는 -물론 진위여부는 별도이다 - 근거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의 살이 될 수 있다.
호러 시리즈의 대표격인 “흡혈귀 드라큘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떻게 스토리가 발생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소설이나 영화화되었는지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매력적인 악역에 대한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여정일 수밖에 없다.
또한 지혜로운 지역의 후손들이 전설로 내려온 기담을 관광 사업으로 연계시켜 세계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비즈니스 연계 과정도 관심있게 지켜볼 부분이다.
한정된 지역이 아닌 주변 국가들에 떠도는 오래된 구전들이 섞이며 점차 현대화되어가고 시나리오에 목마른 현대의 수많은 엔터테이너들이 필름으로 부활시키는 과정 또한 산업의 시각에서 기담이 가지는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대작으로 손꼽히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작곡한 바그너가 등장하는 챕터는 개인의 관심사로 인해 더욱 집중되는 내용을 보여준다.
지금은 바그네리안이라는 추종자들이 음악 동호회의 주류로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있지만 당시로서는 음악뿐 아니라 바그너라는 작곡가의 체제 비판 사상도 문제를 삼을 정도로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외면 받던 음악가를 확실하게 지원해준 루트비히 2세의 결단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지금도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를 통해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나비효과를 만든 권력자로 박수를 받겠지만, 첨예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극단의 정치가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선택이 상이했던 국왕의 말로는 좋을 수 없었다.
한 맺힌 영혼으로 오랜 시간이 되어도 구천을 떠도는 존재가 되었는지 책에 소개되는 에피소드와 음모론만으로 명확히 알려진 사실은 없지만, 심증 적인 살해의 의심은 거둘 수 없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지도자가 일부 권력층의 이해와 상충하면서 의혹 많은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인간 권력의 추악한 일면이다.
러시아를 파멸로 이끈 라스푸틴의 악령 또한 심약한 개인사의 슬픔을 파고들어 광신도로 만든 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른 흑역사로 기록되었지만, 언제 어디서 유사한 일이 재현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약하고 사심 가득 찬 정권의 지배자들은 본인들의 약점을 숨겨 권력을 유지하며, 지극히 속물적인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물론 나라도 팔아먹는 역사의 반복을 자행하고 죄 많은 국민들이 죗값을 받아 치룰 뿐이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인상깊게 감상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오프닝 기담인 “글루미 선데이”는 사회의 어두운 상황과 맞물려 자살률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비정상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선진국 진입 이후, 밝은 미래를 기대하던 국민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로 막힌 내일의 벽과 인구 감소로 인한 몰락만 남은 회색 빛 결과가 가져올 우울한 세계사의 한 단편이 연상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의 흥미를 끌던 기담 이면에 숨어있던 세계사에는 역사의 한 구석에서 숨죽이며 안타까운 몰락과 죽음의 현장과 맞닿아 있는 비극이 놓여있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지배자와 피지배층들의 끝없는 반복은 공포라는 테마의 문학과 예술 작품 사이에 어김없이 등장했고 과학이 지배하기 시작한 현대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두려움은 상실에 대한 역반응이다.
현실이 만족스러워도 미래의 불안이 다가오면 공포가 확대되는데, 현재마저 고통스럽다면 사람들은 극단으로 내몰린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사의 이면에서 교훈을 얻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단순 흥미거리의 기담 속에서도 우리는 변화의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이를 실행하는 이들에게만 두려움은 제거될 수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