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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인간의 이중성

파괴와 창조의 순환,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무기

by 까막새


무기와 인간의 이중성 :


파괴와 창조의 순환, 그리고 AI라는 새로운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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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진 뼈에서 궤도를 도는 위성까지


영화관 스크린 위로 한 마리의 유인원이 뼈를 하늘 높이 던진다. 그 뼈가 공중에서 천천히 회전하다가, 마법처럼 우주선으로 변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 장면은 단 몇 초 만에 수백만 년의 인류사를 유려한 비주얼로 압축해 보여준다.

짧은 순간 속에 숨겨진 진실은 놀랍도록 깊다. 우연히 집어든 뼈 한 조각이 어떻게 인류를 지구 최강자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같은 도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영화에서는 모노리스라는 미지의 존재가 자각을 도와주긴 하지만.


영화의 웅장한 상상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 곁에는 여전히 차가운 현실이 있다. 화창한 오후 거리에서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문명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자부하는 이 시대에도, 가장 원시적인 폭력이 일상을 파고든다. 이것이야말로 무기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큰 역설이 아닐까.

무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혁명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끝없는 고통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인 인공지능(AI)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이번에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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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을 바꾼 작은 돌조각


상상해보자. 아득한 옛날,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마음대로 지배하던 시절을 말이다. 그때는 주먹의 크기와 근육의 두께가 곧 권력이었다. 약한 자는 강한 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뾰족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 작은 돌조각이 모든 것을 바꿨다. 더 이상 힘의 크기만이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작고 여린 손이라도 날카로운 돌을 쥐면 거대한 근육덩어리를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폭력의 시대가 보편성을 갖추게 된다.

만약 힘이 약한 침팬지가 힘이 센 침팬지와 맞붙는다면? 맨몸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한두 번 할퀴고 물어봐야 소용없다. 하지만 무기가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번의 정확한 공격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더 놀라운 변화는 원거리 무기가 등장하면서 일어났다. 돌을 던지고 창을 던질 수 있게 되자, 여러 명이 힘을 합쳐 가장 강한 적도 쓰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가까이서 육박전을 벌일 때는 서너 명이 달려들어도 서로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달려든 이들도 부상을 당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멀리서 돌과 창을 던질 수 있다면? 다섯 명, 일곱 명이 모여 최강자를 포위하고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다수가 강력한 파워를 가진 최강자를 억압할 수 있는 사회성의 발현이다.

이 작은 변화가 인간 사회를 뒤흔들었다. 더 이상 폭력과 힘만으로는 스스로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치의 탄생 - 함께해야 살 수 있다


무기가 등장하자 세상의 법칙이 바뀌었다. 이제는 누가 더 센 주먹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동료를 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바로 이때 '정치'라는 것이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약 4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혼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동물을 사냥하려면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 했고,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치밀한 협력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우리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좋은 사냥 파트너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집단화는 평판과 평가라는 가치 체계의 변화를 몰고 온 셈이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작은 무리에서 큰 집단으로, 개인의 관계에서 공동체의 관계로 사고의 틀이 확장되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다른 집단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구석기시대 후반의 동굴벽화를 보면 이런 변화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활을 든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 함께 사냥하는 모습들이 동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무기가 단순히 개인의 생존 도구에서 집단의 협력 도구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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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양면 - 창조하며 파괴하다


무기는 인류에게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당연히 둘 가지 모두이다. 한 손으로는 문명을 일으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파괴를 불러왔으니까.

24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가 나타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손재주가 좋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들은 정교한 석기 도구를 만들 줄 알았다. 작은 체구였지만 자유로워진 손과 발달한 뇌로 돌을 깎아 무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큰 동물의 뼈를 부수어 영양가 높은 골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단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인간의 뇌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더 똑똑해졌고, 더 똑똑해지니까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을 둘러싼 선순환의 고리가 가열차게 돌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어두운 면도 드러났다. 무기를 사용한 폭력의 흔적은 농경이 시작된 1만 년 전부터 발견된다. 150명 정도의 작은 무리에서 큰 공동체로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수치다.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는 다른 포유류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두 배 높은데, 인간은 문명화 이후 그 비율이 10~20배나 급증했다. 무기가 발달할수록 폭력도 함께 진화한 것이다. 1:1 결투의 양상은 다수와 1, 그리고 다수와 다수의 폭력으로 확장되고 이에 따른 비명횡사도 급증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땅의 소유', '언어의 출현', '집단 정체성'을 꼽는다. 농경과 정착생활로 생긴 경계가 분쟁을 낳았고, 언어를 통한 추상적 사고가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냈으며, 종교와 신화가 집단의 적개심을 부추겼다 잉여 생산물이 경제를 일으켰고 개체의 노예화까지 확장되며 욕심은 커지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기와 폭력의 결단 뿐이다.



전쟁이 만든 문명 - 아이러니한 발전


역설적이게도 전쟁과 무기는 인류 문명 발전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 모순의 역학이지만, 파괴를 위한 기술이 창조의 밑거름이 되어온 것이다.

중세 유럽의 웅장한 성들을 생각해보자. 그 놀라운 건축술은 왜 발달했을까? 적을 막기 위한 요새를 쌓으려는 권력자들의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다. 강철 제조 기술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강철 무기의 위력을 본 지배자들이 앞다퉈 그 기술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화약을 개발하면서 화학이 발달했고, 유황을 찾다 보니 지질학도 함께 발전했다. 군사 기술이 먼저 개발되고, 그것이 점차 민간으로 퍼져나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런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만3000년 인간 역사를 통해 무기와 병원균, 금속이 어떻게 문명을 바꿔놓았는지 추적한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자 '잉여'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문자를 만들고 예술을 창조하며 제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유라시아인들은 가축과 함께 살면서 각종 전염병에 노출되었지만, 그 덕분에 강한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면역력 자체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물학적 무기가 된다. 후일담으로 기록되지만 인류가 의도치 않았던 무기를 획득한 순간이고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축으로 살상무기화되는 비극으로 발을 내딛는다.



작아지는 무기, 커지는 혁신


무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점점 작아지고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갈라선 이유 중 하나를 바로 이 '소형화'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생각해보면 현대의 기술 발전과 비슷하다. 거대한 진공관이 작은 트랜지스터로 바뀌면서 통신 혁명이 일어났듯이, 석기시대 조상들도 작고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사용하기 편하고 이동이나 보관에도 소형이 유리하다. 효과만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말이다.


1인치도 안 되는 작은 돌조각들이 전 세계 구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마치 오늘날의 일회용 면도날이나 종이클립처럼, 일상에서 자주 쓰이고 쉽게 교체할 수 있는 도구들이었던 것 같다.

무기의 소형화에는 세 번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만 년 전, 손톱이나 치아 대신 돌 조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다. 두 번째는 10만 년 전, 활과 화살 같은 고속 무기가 개발되면서 가벼운 화살촉이 등장한 때다. 세 번째는 1만7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인구 밀도가 늘어나자 자원을 아껴 써야 했던 때다.

이런 소형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었다. 작은 도구를 정교하게 만들고 사용하려면 뛰어난 손재주와 계획 수립 능력이 필요했다. 인간의 뇌 발달을 더욱 촉진시킨 촉발점이 된다.



협력이라는 무기 - 함께하면 더 강하다


무기가 개인의 전투력만 높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협력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하면서, 인간은 진정으로 똑똑해졌다.

과학자들은 '협동번식'에서 인류 진화의 비밀을 찾았다. 새끼를 함께 돌보면서 큰 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뇌를 가진 아기를 여러 명이 함께 키우면서, 더욱 똑똑한 종족으로 진화한 것이다.


초기 인류는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협력해야 했다. 혼자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거대한 매머드나 들소를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사냥했다. 이 과정에서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안목이 생겼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신경 쓰게 되었다. 선택받지 못하거나 무리에서 쫓겨나면 야생동물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도태되는 동일한 결과가 된다.


이런 변화를 통해 인간의 사고는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나만 생각하기'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하기'로, 다시 '우리 집단 전체를 생각하기'로 진화한 것이다.

언어가 등장하면서 이런 협력은 더욱 정교해졌다.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며 집단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맞춰가면서 더욱 현명해지고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사회 집단을 이루면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지능이 발달하게 되었고, 이런 예측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이론이 입증되고 있다.



권력의 게임 - 무기가 만든 정치


무기의 발전은 권력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힘센 개인이 약한 개인을 지배하는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정치 체계로 진화한 것이다.

추장 사회와 국가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중앙집권화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군사력과 자원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종교를 통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면, 군대는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지배자들은 백성들의 반발을 염려하여 나름대로의 대비책도 준비한다. 첫째, 일반인들의 무기를 빼앗고 엘리트들만 무장시켰다. 둘째, 거둬들인 세금을 백성들이 좋아할 만한 일에 사용해서 인기를 얻었다. 셋째, 무력을 독점해서 치안을 유지하며 백성들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넷째,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종교의 역할이 중요했다.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단을 위해 희생할 동기를 부여하면서 중앙집권적 사회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채렵수집 생활을 하던 인류가 농업과 목축을 하게 되며 스트레스 수준이 심각하게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억제할 방법으로 종교가 등장했다는 주장과도 일치한다.

냉병기 시대에는 일반인도 어느 정도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농기구나 공구를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가끔씩 봉기나 반란이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약과 총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성능 무기를 만들려면 복잡한 기술과 많은 자원이 필요해졌고, 결국 국가만이 이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의 등장은 예절까지 바꿔놓았다. 항상 무기를 들고 다니는 문화에서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목숨이 위험했다. 그래서 서로 예의를 갖추는 문화가 생겨났다. 악수도 '내 손에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평화의 제스처에서 시작되었다



현대의 광기 - 문명 속 야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충격적인 현실이 있다. 화창한 대낮에 지하철역에서, 번화가에서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사건도 등장한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뒤 서현역에서 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왜 이런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 단순히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불평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회 곳곳에 쌓여있다는 것이다. '밑바닥 혐오' 현상이 소설과 드라마는 물론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너나 나나 비슷한 처지인데,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도 갖지 못하게 하겠어'라는 심리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만난다. 나무에서 내려온 인류가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조상들의 원시적 본능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었단 반증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짝짓기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같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사회적 비교는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본능의 요소들이 억압을 받게 되니 다른 본능을 활용하여 욕구를 해소하는 삐뚤어진 방어기재가 작동한다.

테러의 개념도 변했다. 과거에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요인을 암살하거나 항공기를 납치하는 식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테러는 다르다. 무차별적으로 많은 사람을 해치면서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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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새로운 무기 - 네 번째 혁명의 시작


인류 역사에서 세 번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네 번째 변곡점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다.

과거 돌 무기가 힘의 균형을 바꿨고, 농업이 문명을 일으켰으며, 산업혁명이 세상을 뒤바꿨다면, 이제는 AI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혁명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서 인간의 직업, 사회 구조, 삶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근육의 힘을 기계로 대체했다면, AI 혁명은 두뇌의 힘을 컴퓨터로 확장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AI 증강'이라는 개념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보완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AI의 도움으로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변호사는 AI를 통해 방대한 법률 자료를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AI는 인간의 기억력, 주의력, 문제 해결 능력까지 향상시키는 '인지 증강'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이 더 똑똑해지고, 더 창의적이 되며,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인간-AI 협업이 발전의 속도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동전의 뒷면도 있다. AI는 새로운 형태의 무기로도 발전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은밀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AI는 실제 전장에서 살상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미군의 무인공격기가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AI 드론이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하는 효율적인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도서쇼핑몰을 마비시킨 랜섬웨어가 AI의 손을 빌려 더욱 악랄해진다면 아마 모든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다.



AI의 두 얼굴 - 천사인가 악마인가


AI는 과거 무기들이 보여준 이중성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흥미진진한 변화는 'AI 간 대연합'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앤스로픽의 MCP와 구글의 A2A 같은 기술을 통해 AI끼리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류 문명 발전과 똑같은 패턴이다.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지식을 주고받았기에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 AI들도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집단은 개인의 단순합을 넘어서는 시너지 효과를 내왔다는 인간들의 증거가 여기 있지 않은가.


초기 AI는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학습했다. 글, 사진, 영상 등 인간이 남긴 모든 것을 흡수했다. 하지만 이제는 AI끼리 서로 배우고 협력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마치 인간이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하듯이, AI들도 자신만의 '언어'로 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AI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평시에도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가 되고 있다.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공간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가 사이버 안보 환경을 바꾸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기존 위협의 범위를 크게 확장한다. 공격이 더 쉬워지고 더 많은 공격자가 더 빠른 속도로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공격자가 익명으로 숨기 쉬워져서 공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다. 셋째, AI를 사용하는 공격자가 방어자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새로운 동반자 - 인간과 AI의 협력


미래의 직장에서는 AI 동료와 함께 일하는 모습이 일상이 될 것이다. 지금은 AI가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지만, 점점 '동료'로 진화하고 있다.

AI는 이미 성능면에서 인간의 유능한 파트너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장벽이 있다. 바로 AI에 대한 인간의 불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의인화'다. AI에게 인간적인 특성을 부여해서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외형, 행동, 대화 방식 등을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거부감을 줄이려고 한다. 의외로 사람은 ‘의인화에 굉장히 취약한 감정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의 실체가 아닌 대화의 기억 속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유대관계와 감정까지 공고해진다. 상대방이 AI라면 점차 인간으로 느끼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은 우리가 지속 경계하고 경계를 두어야할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사회와 산업 현장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기술만 좋아서는 안 되고,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와 절차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는 'AI 팀워크'라는 개념도 부상하고 있다. 인간 팀과 AI 시스템이 하나의 팀으로 협력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과 AI의 분석 능력을 결합하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성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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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 계약서 - 모두가 행복한 AI 시대


AI 시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과거 산업혁명 때 노동조합과 사회복지 제도를 만들어서 기술 발전의 혜택을 모두가 나눴듯이, 이번에도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부 투자, 기본 소득 보장 제도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 중심 AI'라는 개념이다. AI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할 때 항상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계명이 AI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당연히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어서도 안 된다. 새로운 공공 서비스, 교육 기회 확대 등을 통해 사회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켜야 한다. 희망사항이라도 흘려듣지 말고 분명히 이런 점을 강조하고 요구해야한다.

AI는 동시에 새로운 군비경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이 군사 분야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자율살상무기의 등장으로 미래 전장의 모습이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은 이런 역기능을 해소할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인공지능에 대해 인간이 나서야할 긴장완화가 어쩌면 우리가 가진 고유의 기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호모 코퍼라티오 - 협력하는 새로운 인간


AI 시대를 맞아 인류는 또 다른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도구를 만드는 인간 '호모 파베르'에서 협력하는 인간 '호모 코퍼라티오'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AI와 어떻게 '협력해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가 핵심이 되었다. 인간과 AI가 함께 살고 같이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초기 AI 연구자들은 10~20년 후면 AI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길 것이라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47년이 걸렸다. 그런데 알파고는 달랐다. 체스보다 훨씬 어려운 바둑을 금세 학습해버렸다. 기존 지식을 입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경험하는 AI'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AI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AI의 진화 속도를 급속도로 앞당기기는 어렵겠지만, 결국 사람과 AI가 함께 진화해 나갈 것이다. 공존하며 공진화하는 것이다

배제하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 될 테니, 성숙한 사람들은 AI를 도구로 활용해서 더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하며 AI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


우리는 최초의 뼈 무기에서 시작해서 AI라는 최첨단 무기까지, 인류와 무기가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은 무엇일까?

무기는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 얼굴은 생존과 발전을 위한 도구였고, 다른 쪽 얼굴은 파괴와 지배를 위한 수단이었다. 최초의 뼈 무기가 사냥을 가능하게 해서 인류의 뇌를 발달시켰듯이, AI도 인류 문명을 다음 단계로 이끌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기가 발전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갈등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오늘날 거리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폭력이 보여주듯이, 기술의 발전이 자동으로 인간성의 향상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AI라는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첫째, AI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기는 항상 힘의 균형을 바꾸는 강력한 도구였다. AI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AI 과금 시대가 열렸다. 경제 상황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 차이는 불가피하지만 최소하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누구나 열린 정보를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 획득의 평등이 실현되야 한다.

둘째, AI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무기는 언제나 협력과 연합을 촉진하는 정치적 도구였다. AI 무기의 위험을 막고 평화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려면 전 세계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셋째, AI 개발과 활용에는 반드시 윤리적 고려가 따라야 한다. 무기는 문명 발전의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파괴의 위험이기도 했다. AI도 마찬가지다. 안전장치와 윤리적 기준 없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I를 단순한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무기를 통해 개인 중심에서 집단 중심으로 진화했듯이, 이제는 AI와의 협력을 통해 호모 코퍼라티오로 진화해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이 보여준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유인원이 던진 뼈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그 마법 같은 순간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압축이 아니었다. 가능성의 확장이었다.

마찬가지로 AI라는 무기도 인류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파멸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차원의 문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무기를 손에 든 인류는 이제 새로운 모노리스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얼마나 과거로부터 배우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가 파괴가 아닌 창조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그 선택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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