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과 기후변화의 복잡한 관계
달콤함 뒤에 숨겨진 쓴 현실:
초콜릿과 기후변화의 복잡한 관계
초콜릿 포장지를 뜯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 달콤한 맛과 순간의 행복감에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초콜릿 한 조각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환경적, 사회적 문제들이 얽혀 있다. 기후변화와 초콜릿 산업 간의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일상적인 소비가 지구 반대편의 환경과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초콜릿 시장을 살펴보면, 2015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은 607g으로, 이를 일반적인 판초콜릿 70g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8.7개를 섭취하는 셈이다.
이는 세계 최대 초콜릿 소비국인 스위스의 연간 1인당 8.8kg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지만,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초콜릿 시장은 저출산과 건강 중시 트렌드로 인해 2018년 9,319억 원에서 2021년까지 연평균 7.5% 감소했으나, 2022년부터 회복세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커피나 와인과 함께 즐기는 디저트 개념의 고급 초콜릿과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를 사용한 무설탕 초콜릿이 시장 회복을 이끌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7,500억 원 규모의 한국 초콜릿 시장은 2024년 7,128억 원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초콜릿 시장은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Global Market Insights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초콜릿 시장 규모는 2024년 1,25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5년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3.3%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의 동력은 다양하다. 세계 인구 증가, 개발도상국의 가처분소득 증가, 고품질 초콜릿의 건강상 이점에 대한 소비자 인식 증가, 그리고 북아메리카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프리미엄 초콜릿 제품 인기 상승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소비 패턴의 변화다. 초콜릿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많은 스위스는 연간 9kg을 소비하며, 이는 스니커즈바 173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반면 중국과 인도의 1인당 소비량은 각각 200g, 100g 수준으로 아직 성장 여지가 크다.
글로벌 초콜릿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3년 기준 상위 기업들의 매출을 살펴보면, Mars Wrigley Confectionery가 22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했고, Mondelez International이 144억 달러, Ferrero Group이 138억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Mars Incorporated는 M&M's, 스니커즈, 트윅스 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며, 2050년까지 밸류체인 전반에서 넷제로 배출을 달성하겠다는 과학 기반 목표를 설정했다. 더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 견딜 수 있는 유전자 편집 묘목 개발까지 모색하고 있어, 기후변화에 대한 업계의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Ferrero Group은 누텔라, 페레로 로셰, 킨더 초콜릿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기업으로, 1946년 설립 이후 프리미엄 재료와 우아한 포장, 혁신에 중점을 둔 전략으로 성장했다. 지속가능성과 책임있는 소싱에 대한 헌신으로도 명성이 높다.
Mondelez International은 캐드버리, 밀카, 토블로네 등의 상징적인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품질과 혁신에 초점을 맞추어 더 건강한 옵션을 포함한 제품 확장과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앞으로 초콜릿 먹기 쉽지 않아진다는 보도를 한번쯤은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을 듯하다.
실제로 그렇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온은 인간의 탐욕과 손잡고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직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매우 까다로운 환경 조건을 요구한다.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20도 이내의 좁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코코아 벨트(Cocoa Belt)'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안정적인 강우량과 비옥한 토양이라는 섬세한 기후 균형을 필요로 한다.
현재 전 세계 카카오의 60% 이상이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며, 특히 코트디부아르만 해도 연간 약 240만 톤을 생산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이 지역의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기온 상승과 불규칙한 강수 패턴은 카카오 나무의 생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옥스포드대학 환경변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도 정도 올라가면 현재의 코코아 재배지는 더 이상 코코아를 키울 수 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2013년 연구에서는 2050년까지 적합한 코코아 재배지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IPCC의 보고서는 서아프리카가 금세기 중반까지 2.1°C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와 카카오 생산 간에는 파괴적인 악순환이 형성되어 있다. 기후변화로 카카오 재배에 적합한 토지가 줄어들면, 농부들은 더 많은 삼림을 벌채해 농지를 확장하려 한다. 이는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심각한 것은 서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삼림 파괴다. 지난 60년간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삼림 중 거의 3분의 1이 카카오 생산으로 인해 사라졌다. 삼림은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배출량의 약 2배에 달하는 중요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단일 재배 카카오 농장으로 바뀌면서 저장된 탄소가 다시 대기로 방출되고 있다.
이로 인한 자연의 균형파괴는 심각하다. 코트디부아르의 경우 1994년 1,611마리였던 코끼리 개체수가 현재 225마리로 급감했고, 2015년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23개 보호구역 중 13곳에서 영장류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나라 카카오의 40%가 보호구역 내에서 불법적으로 재배되고 있어 생물다양성 보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카카오 농장에서 해충과 질병의 증가도 초래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해충이 더 빠르게 번식하고, 강수 패턴의 변화는 병원균의 확산을 유리하게 만든다. 블랙 포드 질병과 같은 병원균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더 잘 자라며, 이는 카카오 생산량을 크게 감소시킨다.
2022년 6월부터 10월 사이 서아프리카를 강타한 대홍수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만 명을 이재민으로 만들었으며, 카카오 밭을 침수시켰다. 반대로 지속된 가뭄은 농장을 메마르게 만들어 수확량을 급감시키고 가격을 상승시켰다.
초콜릿 소비를 무작정 줄이는 것보다는 더 나은 초콜릿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지속가능한 농림업(agroforestry) 방식은 단일 재배와 달리 카카오와 함께 바나나, 그늘 나무 등 다른 종을 함께 심는 방법이다.
이런 혼합 시스템은 여러 장점을 제공한다.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 비옥도를 개선하며, 해충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최대 2.5배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농부들의 수입원을 다양화해 바나나, 목재, 기타 작물을 카카오와 함께 판매할 수 있게 해준다.
볼리비아의 Syscom Project는 이러한 접근법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10년 이상에 걸친 비교 연구에서 농림업 농장이 단일 재배 농장보다 2~3배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더 높은 온도를 견디며, 2~4배 많은 식량이나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 낮다는 결과를 얻었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초콜릿 산업의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도구다. 공정무역 인증은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며,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을 장려한다.
카카오 농부들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방식을 채택한 기업의 경우, 자신들만의 소싱 원칙을 세워 농가의 소득과 안전한 생산을 독려했다. 가나의 3개 협동조합과 코트디부아르의 4개 협동조합에서 구매하는 모든 카카오빈을 'Tony's Beantracker'를 통해 완전히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도 공정무역의 가능성을 엿보게 만들어준다. 이력관리 시스템은 투명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고 이는 다른 식품 분야에서도 충분히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올바르게 생산한 식품을 정당한 가격을 주고 구매하는 과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Coffee and Farmer Equity Practices'는 단순한 공정무역을 넘어선 포괄적 윤리구매 프로그램이다. 커피 품질은 뛰어나지만 공정무역 인증량이 제한적인 지역의 소규모 농가들도 포함시켰고, 농부들이 받는 가격과 중간상인 수수료를 공개한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 장려, 생물다양성 보전에 초점을 맞추어 2015년까지 100% 윤리구매 달성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제로 이를 달성했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 중 공정무역 인증이 가능한 커피는 4% 정도에 불과하지만, 스타벅스는 C.A.F.E Practice를 통해 더 많은 농가들을 윤리구매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공정무역이 보장하는 최저가격 외에 프리미엄 지급 사례도 농가의 선순환 재배를 독려할 수 있다.
주요 초콜릿 기업들도 위기 의식을 갖고 혁신에 나서고 있다. Mars는 2050년까지 넷제로 배출 달성이라는 과학 기반 목표를 설정하고, 더 뜨겁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유전자 편집 묘목 개발을 탐구하고 있다. Nestlé의 R&D팀은 카카오 포드 전체를 더 많이 활용해 필요한 수확량을 줄이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스위스의 경우 더욱 혁신적인 접근을 보인다. 배양 카카오, 해바라기씨 발효, 과육 전체 활용 등 혁신적 대체 소재 개발과 지속가능성 인증을 기반으로 고급 소비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공정무역(Fairtrade) 인증, BIO SUISSE(스위스 유기농 인증), 탄소 저감 인증 등 다층적 지속가능성 인증을 통해 브랜드 가치 중심의 시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소비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무엇보다 정보에 기반한 선택이 중요하다. Chocolate Scorecard나 Food Empowerment Project의 Chocolate List와 같은 도구들은 어떤 초콜릿 회사가 지구와 인권에 가장 좋고 나쁜지 알 수 있게 도와준다.
Fairtrade Certified, Fair for Life, Rainforest Alliance Certified 같은 인증 마크가 있는 초콜릿 제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다. 비록 이들 인증이 완벽한 윤리적 선택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더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제품들임을 나타낸다. 물론 이런 제도가 초콜릿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나라에서 실현하기는 어려운 방식이지만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압박을 줄 이유는 충분하다.
초콜릿 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 시대 환경 문제의 축소판이다.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소비 패턴이 모두 얽혀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문제의 복잡성만큼이나 해결책도 다양하고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초콜릿 포장지를 뜯을 때마다 그 달콤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더 비싸더라도 공정거래 인증을 받은 제품을 선택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기업을 지지하며, 정보에 기반해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
초콜릿 없는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 그럴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면, 초콜릿 산업도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달콤함은 지구와 사람 모두를 생각하는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