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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버터 혈당 잡는 완전식품

하루 두 스푼, 땅콩버터의 드라마틱 역사 이야기

by 까막새

땅콩버터 혈당 잡는 완전식품 : 하루 두 스푼, 땅콩버터의 드라마틱 역사 이야기




아침식사는 고민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먹는게 영 부담스럽고, 오전에 배가 음식물로 차있는 상태도 직장생활에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아침식사가 과식을 제어하고 여러가지 성인병 예방이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의학조언을 들은 이후로는 꾸준히 노력한 탓에 이제는 아침식사를 거르면 허기가 온 몸에서 먹을걸 달라고 아우성치는 체질로 변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문제는 아침식사 선택은 굉장히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지하철역에서 간단히 식사하던 꼬마김밥의 간편함과 오뎅 국물의 깔끔함이 건강에 꽤 큰 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외부에서 아침식사는 꽤나 어려운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땅콩버터”의 효능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뇨, 설탕이 없는 100% 땅콩버터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땅콩을 추적해보죠.


신대륙의 선물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금과 은에만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인류 역사를 바꿀 진짜 보물은 그들의 발밑, 땅속에 숨어 있었죠.

바로 땅콩(Peanut)이었습니다.


아즈텍과 잉카 문명의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땅콩을 갈아서 페이스트 형태로 만들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땅콩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생존의 양식이었습니다. 긴 여행길에 휴대하기 좋고, 영양가 높은 이 신비한 견과류는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땅콩이 진짜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유럽의 귀족들에게는 이 조잡한 견과류보다는 아몬드와 호두 같은 고급 견과류에 손이 갔습니다. 이렇게 땅콩은 한동안 가난한 자들의 음식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노예선에서 시작된 기적


땅콩의 운명이 바뀐 것은 아프리카 노예무역 때문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가 땅콩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죠.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은 고향에서 이미 땅콩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에서 땅콩 재배법을 전수했고, 특히 조지아와 버지니아 지역에서 땅콩 농업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은 생존을 위해 온갖 요리법을 개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땅콩을 갈아서 만든 페이스트는 가난한 자들의 견과류 답게 단백질과 칼로리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땅콩 페이스트는 아메리카 남부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습니다.

닥터 켈로그의 건강 혁명


시간이 흘러 19세기 후반,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는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 박사라는 독특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배틀크릭 요양원을 운영하며 혁신적인 건강식을 개발하고 있었죠. 네, 여러분이 아는 그 켈로그의 공동 창업자입니다. (실제 켈로그를 주도한건 그의 동생이지만요,)


켈로그 박사는 채식주의자였고, 환자들에게 고기 대신 식물성 단백질을 공급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1895년, 그는 운명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볶은 땅콩을 특수한 기계로 갈아서 크리미한 페이스트를 만든 것이죠.

그가 만든 땅콩 페이스트는 기존의 거친 땅콩 반죽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부드럽고 크리미하며, 빵에 발라 먹기 완벽한 질감이었습니다.

켈로그 박사는 이 제품에 "Nut Butte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조지 워싱턴 카버의 마법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는 아마도 땅콩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일 것입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터스키기 대학교의 교수가 된 그는 농업 과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부는 심각한 농업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면화 단일재배로 인해 토양이 고갈되고 있었거든요. 카버 교수는 이 문제의 해답을 땅콩에서 찾았습니다.


"땅콩은 마법의 작물입니다!" 카버 교수는 농부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땅콩은 질소고정작용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면화보다 수익성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땅콩을 대량 생산해도 수요가 없었던 것이죠. 카버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놀라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300가지 이상 개발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이었던 것이 바로 개량된 땅콩버터였습니다. 카버 교수는 켈로그 박사의 레시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더 맛있고 보관하기 좋은 땅콩버터를 만들게 됩니다.


산업혁명의 달콤한 결실


20세기 초, 미국은 산업혁명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빠르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원했죠. 땅콩버터는 이런 시대적 요구에 완벽히 부합했습니다.


조셉 로젠필드(Joseph Rosenfield)는 1922년 "Skippy" 브랜드를 만들며 땅콩버터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는 기존 땅콩버터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기름 분리 현상을 해결합니다. 특수한 유화 과정을 통해 기름과 땅콩 고형분이 잘 섞이도록 만든 것이죠.


같은 시기, Jif와 Peter Pan 같은 브랜드들도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제조법으로 경쟁했죠. 어떤 회사는 더 달콤하게, 어떤 회사는 더 짭짤하게, 또 어떤 회사는 크런치 타입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땅콩버터는 미국 가정의 필수품이 되기 시작했고, 특히 대공황 시대에는 저렴하면서도 영양가 높은 땅콩버터가 많은 가정의 생존 식품이 되기에 이릅니다.


PB&J의 탄생과 문화적 혁명


1920년대, 한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미국을 강타했습니다. "Peanut Butter & Jelly Sandwich", 줄여서 PB&J의 탄생입니다.

처음에는 "땅콩버터에 잼을 바른다고?"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조합은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줍니다. 땅콩버터의 고소함과 잼의 달콤함, 그리고 빵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PB&J는 곧 미국 어린이들의 대표 도시락 메뉴가 되었고, 어머니들은 아침마다 아이들의 도시락에 PB&J 샌드위치를 싸주게 됩니다. 이 시기 땅콩버터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서 문화적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땅콩버터는 미국다움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2차 대전과 글로벌 확산


제2차 세계대전은 땅콩버터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미군들은 K-레이션(전투식량)에 땅콩버터를 포함시킵니다. 오래 보관되고, 영양가 높고, 맛도 좋은 땅콩버터는 완벽한 군용식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군이 세계 곳곳에 주둔하면서, 땅콩버터도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 신기한 갈색 크림을 맛보게 되었고 다양한 반응을 내놓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프랑스의 한 요리사가 땅콩버터를 처음 맛보고는 "이것은 요리가 아니라 건축 자재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가끔 입맛 없을 때 식빵에 텁텁함이 가득한 땅콩 버터를 느껴본 적이 있을 듯합니다. 바로 그런 첫인상을 가진거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에서도 땅콩버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건강 논쟁의 시대


1970년대부터 땅콩버터는 건강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영양학자들은 땅콩버터의 높은 칼로리와 지방 함량을 문제 삼습니다. "땅콩버터는 비만의 원인이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하지만 동시에 땅콩버터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땅콩버터에는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 비타민 E가 풍부하다!"라는 반박이 등장합니다


이 논쟁은 자연식품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소비자들은 설탕과 방부제가 들어간 상업적 땅콩버터 대신 100% 천연 땅콩버터를 찾기 시작하는 변화를 가져옵니다.

1980년대에는 유기농 땅콩버터가 등장했습니다. 화학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땅콩으로 만든 프리미엄 제품이 인기를 끌게 됩니다. 가격은 비쌌지만,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땅콩버터는 치명적인 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땅콩 알레르기였죠.

의학 연구 결과, 땅콩 알레르기는 다른 식품 알레르기보다 훨씬 심각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심한 경우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이 소식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학교에서 땅콩버터 반입을 금지했고, 항공사들도 땅콩 간식 서비스를 중단했죠. "Nut-Free Zone"이라는 말이 일상용어가 되었습니다.


땅콩버터 업계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더 안전한 제조 공정을 개발하고, 알레르기 경고 라벨을 강화하게 됩니다. 이 틈을 타서 대체 견과류 버터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는데, 아몬드버터, 캐슈넛버터, 선플라워 시드버터 등이 땅콩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한 대안이 시장에 선보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이 상품을 본 적이 없다면 오리지널의 강력함을 이겨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겠죠?


한국의 땅콩버터 스토리


한국에서 땅콩버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60년대였습니다. 미군 부대 주변에서 PX 상품으로 판매되던 것이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이상한 외국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달고 느끼한 맛이었거든요. 하지만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땅콩버터도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는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국산 땅콩버터를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덜 달고 더 고소한 맛으로 개발되었습니다.


2000년대 웰빙 열풍과 함께 땅콩버터는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무첨가, 무설탕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땅콩버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슈퍼너츠, 오넛티, 홀넛 같은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과학이 밝혀낸 땅콩버터의 진실, 의학적 효용성


이제 처음에 꺼냈던 본론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1세기 영양학 연구는 땅콩버터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밝혀냈습니다.

먼저 혈당 지수(GI)관한 발견이었습니다.

땅콩버터의 GI는 단 14로, 이는 대부분의 과일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당뇨병 환자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저혈당 식품이었던 것이죠. 한 땅콩버터에는 레스베라트롤이 풍부하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는 적포도주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성분으로,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심혈관 건강에 대한 연구도 놀라웠습니다. 2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 정기적으로 땅콩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심혈관 사망률이 38% 낮다는 것이 증명되기도 합니다. 땅콩버터에 풍부한 *니아신(비타민 B3)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과학적 증거들은 땅콩버터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더 이상 "정크푸드"가 아니라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100% 땅콩과 무설탕 제품이 효능이 있다고 제한해야합니다.

그런데 땅콩 자체가 워낙 고소하다보니 단 맛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제 경우에는 코스트코 베이글에 땅콩버터를 발라먹는데, 물론 베이글이 혈당지수는 도넛의 2배라는 충격적인 실상도 있지만 놀랍게도 땅콩버터는 수치를 반 정도로 낮춰준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침에 큰 한 스푼 땅콩버터는 하루의 혈당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잡아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만 칼로리가 높아 퍼먹다가는 하마가 됩니다.


작은 견과류의 위대한 여행


땅콩버터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개인 맞춤형 영양식품, 우주 식량까지, 땅콩버터는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또 모르죠. 화성의 첫 번째 정착민들이 지구에서 가져온 땅콩버터로 우주 시대의 첫 번째 PB&J 샌드위치를 만들지.


작은 땅콩 한 알에서 시작된 이 놀라운 여행은 인간의 창의성과 적응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아침 빵에 발라 먹는 그 갈색 크림 한 스푼에는 수 세기에 걸친 인류의 지혜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100% 땅콩버터를 개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진흙탕을 보는 것처럼 크런치 땅콩 알갱이 위로 갈색 국물이 가득차 있었거든요. 이거 불량인가? 자세히 제품 포장을 보니 앞에도 소개된 기름층이 분리되어 나타난 현상이고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개봉후에는 깨끗한 스푼으로 한번 휘저어 주라고 하더군요.


혹시 모르셨다면, 메모하시고 건강한 고소함을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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