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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법적 노름꾼 Apr 23. 2024

비트코인, 그거 튤립 아니냐?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소위 ‘튤립 투기‘가 발생했다. 튤립 중 희귀한 색깔을 가진 품종이나 개체를 서로 비싼 값에 사고팔면서 그 가격이 천정부지 치솟은 사건이다.  화무십일홍. 꽃이 피어 십 일을 못 간다는 동양의 고사성어를 네덜란드인들이 몰라서였을까. 결국 튤립이 시들듯이 유행도 빠르게 사그라들면서 시장에 참여한 이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렸다.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버블 경제의 선례로 남게 되었다.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을 보며 많은 이들이 튤립에 비유한다. 아름다운 튤립과 달리 실체도 없을뿐더러, 아름답기라도 한 튤립보다도 무용해 보이는 이진법의 데이터 쪼가리가 어느새 개당 7만 달러를 터치했다는 뉴스를 보면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이다. 자산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비트코인의 가격이 전고점을 갱신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마저 느낀다. 비트코인은 튤립인가? 자산인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수렵 채집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고 신과 종교를 신봉하고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시각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혁명들과 그것들의 원동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력에 기반한다는 것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화폐를 신용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구리 합금의 동전과 종이로 된 지폐가 단순히 물질 그 자체로 일상생활에서 쓰일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서비스를 누린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사용한다. 사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돈과  상품을 교환하는 것은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화폐는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화폐를 신뢰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비트코인은 컴퓨팅 파워로 유지되는 일종의 거래장부다. 연산력을 제공하는 참여자들은 그에 따른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이때 전체 네트워크에 동원되는 연산력의 합을 해시레이트라고 칭한다. 비트코인은 반감기가 진행될수록 보상이 적어지고 그만큼 채굴 행위의 난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효과도 부가적으로 나타난다.


bitcoin hashrate(출처: https://bitinfocharts.com)

  비트코인의 해시레이트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해시레이트의 의미를 화폐의 속성과 연결 짓고자 한다. 해시레이트의 상승은 암호화폐 판의 참여자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신뢰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단순히 참여자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특정 자산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렇다. 유발 하라리의 예시를 소개한다.



  가상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인도와 지중해 지역 사이에 정기적인 무역이 시작되었을 때, 인도 사람은 금에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거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하자. 하지만 지중해에서는 금이 선망하는 신분의 상징이어서 가치가 높았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인도와 지중해 사이를 여행하는 상인은 금의 가치 차이에 주목했을 것이다. 인도에서 금을 싸게 사서 지중해에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겼을 것이다. (중략) 그저 지중해 사람들이 금을 신봉한다는 사실 때문에 인도 사람들도 금을 믿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인도 사람에게 금을 사용할 실용적인 용도가 없더라도, 지중해 사람들이 이것을 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도 사람들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별보배고둥이나 달러, 혹은 전자 데이터를 믿는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그것들을 믿게 만들기 충분하다. 설령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미워하고, 경멸하고, 조롱하더라도 말이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돈에 대한 믿음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 현재 글 쓰는 시점에 홍콩 또한 비트코인 ETF 승인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현물 ETF의 운용은 운용사의 현물 매입이 뒤따르게 된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시장 참여자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영향력은 이제' 튤립 투기' 현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우리가 미워하고, 경멸하고, 조롱하더라도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쓰고 보니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인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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