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대부분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에 대해 쉽게 세상을 탓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한 걸까?
영화를 연출하는 일은 물론이고
인간사에도 빠삭할 것 같은 여든세 살의
우디 앨런 감독은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잘 생각해보라고,
진짜 문제는 바로 우리들 자신 안에
있지 않냐고...
곧 마흔이 되는 서른아홉 살의 지니는
자기 삶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뉴욕의 대표적인 유원지 코니 아일랜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나이 많은 남편과 어린 아들과 살고 있는
그녀는 한 때 직업 배우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브로드웨이에서
다수의 뮤지컬과 연극에 출연하며
꿈꾸던 삶을 살았다.
반짝이는 인생이었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문제없었고,
뮤지컬 공연을 하면서 만난 악단의 드러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들도 낳았다.
너무 당연해서 행복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행복했던 날들.
어느 날 지니는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젊은 상대 배우와 불륜을 저지르다
남편에게 현장을 들키고 만다.
상처 입은 남편은 그 길로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지니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빠져 현실을
내팽개쳐버린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무대에 서지도 못하게 되고
어린 아들과 살길이 막막해졌을 때
그녀는 지금의 남편 험티를 만나게 된다.
코니 아일랜드에서 회전목마를 운영하는
험티는 돈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지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험티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듯이 보인다.
생계수단이 있고, 사랑하는 지니가 있고,
주말이면 함께 낚시를 나갈 친구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니는 아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뭐가 문제인지
툭하면 동네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고 다녀
모두를 걱정시킨다.
어려울 때 자신에게 의지가 되어준 험티가
고맙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인 이유로 같이 산다고 생각할 뿐.
무엇보다 자신이 종업원이란 사실이 가장 힘들다.
스스로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괴롭다.
그녀는 예전에 무대에 설 때 입었던 의상과
소품을 아직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과거가 그립다.
이런 지니와 험티 앞에 캐롤라이나가 나타난다.
험티와 죽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캐롤라이나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예쁘고 총명한 소녀로 자랐지만
스무 살이 되자 뜻밖에 마피아와 사랑에 빠져
이에 반대하는 부모와 의절하고 집을 나가
결혼해버렸다.
6년 만에 험티 앞에 나타난 캐롤라이나는
마피아인 남편에게 쫓기는 신세다.
남편과 사이가 나빠진 캐롤라이나는
자신에게 접근한 FBI에게
남편의 일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넘겼고,
그 일로 남편의 원한을 산 것이다.
잡히면 죽는다. 남편은 리얼 마피아니까.
험티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에서 포기했던
딸이 돌아오자 삶의 활력을 찾는다.
그는 영리했던 딸이 잃었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야간학교에 보내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이에 대해 지니는 이해를 하면서도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해변을 산책하던 지니는
안전요원인 믹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운 것 때문에 인생을
망쳐놓고도 또 바람을 피운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이 만남을 그만 둘 수가 없다.
자신이 세계적인 극작가 유진 오닐처럼
대성할 거라 믿고 있는 믹키는 작가 지망생답게
달변가에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실제로 그는 명문 NYU의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니
그의 꿈이 허황되다고 할 수도 없다.
아-!
이런 믹키는 지니에게 너무나 이상적이다.
젊고 잘 생긴 데다 극작가다.
작가 지망생인 그는 그녀의 사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매력을 느낀다.
무엇보다 둘은 무대와 예술에 대해 대화가 통한다.
믹키는 데이트를 위해 지니를 코니 아일랜드
밖의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럴수록 지니는 점점 더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진다.
남의 눈을 피해 나누는 정사의 짜릿함!
권태로운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었던
이 비밀스러운 만남은 횟수가 거듭되는 동안
지니의 삶의 중심이 된다.
지니는 믹키를 통해 무대로 복귀할 꿈을 꾼다.
그가 쓰는 작품에 자신이 출연하고
그렇게 예술가 부부로 멋지게 살 수 있다면...!
마침내 지니는 험티와 이혼하고
미키와 새 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여름이 지나 믹키가 안전요원 일을 그만두고
떠나기 전까지 결혼 약속을 받아야 한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지니에 대한 믹키의 감정도 진지했다.
비록 나이 든 유부녀지만
지니는 여전히 아름다우며 독특한 사연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으니까.
물론 거기엔 연상의 유부녀와의 결혼이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이력에
더 어울릴 거라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뭐 어쨌든, 진짜 같이 살 생각이 있었다.
지니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믹키는 우연히 지니의 의붓딸인
캐롤라이나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린다.
통제불능의 진짜 사랑이랄까.
지니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가 마피아에게 쫓기는 신세라
자신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녈 향한 마음을 막지 못했다.
캐롤라이나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이른 나이에 마피아와 결혼했다 도망쳤다는,
지니보다 훨씬 강력한 스토리를 지녔으니까.
지니와 믹키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캐롤라이나는 비록 새엄마지만
언니처럼 믿고 따르는 지니에게
자신과 믹키 사이의 일을 전부 털어놓으며
연애상담을 받으려 한다.
캐롤라이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니는 점점 미쳐간다.
보는 내 마음도 정말 미칠 거 같더라...
지니는 갈수록 심하게 믹키에게 집착한다.
믹키에게 자신의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있기에
그녀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그에게 매달린다.
어떻게든 믹키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남편 험티가 캐롤라이나의 학비로 내려고
모아 둔 돈까지 훔쳐 그에게 줄 비싼 시계를 샀지만
믹키는 부담스럽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이 일로 그와 다투기만 하고 집에 돌아온 지니는
캐롤라이나가 믹키와 데이트하러 나가는 걸 보게 된다.
허탈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출근하던 지니는
때마침 레스토랑 앞에서 캐롤라이나를 찾는
마피아 일행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지니는 처음엔 캐롤라이나를 구하려고
그녀와 믹키가 데이트 중인 레스토랑에 전화를
걸지만 어쩐 일인지 통화가 연결되자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다.
그날 밤, 캐롤라이나는 사라졌다.
험티는 실종된 딸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지니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불러온 결과에
당혹스럽다.
험티로부터 캐롤라이나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다니던 믹키는
지니가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음에도 포기한 걸
알고 지니를 찾아와 비난한다.
믹키와의 관계가 끝장난 것은 물론이고
자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어진 지니는 실성한 듯
예전에 입었던 무대의상을 걸치고
믹키 앞에서 실성한 듯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연극이었으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참전용사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고
모두가 새로운 희망에 들썩이던 1950년대 뉴욕
그 가운데서도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하던 인기 절정의 코니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안타까운
삼각관계의 비극을 보고 있자니
그 아이러니에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눈 깜작할 사이에 벌어진
캐롤라이나의 등장과 죽음은
험티와 지니 부부에게는 한 여름 밤의 악몽,
혹은 헛소동 같다.
엄청난 일이 일어났지만 그들의 삶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캐롤라이나가 나타나기 전으로 돌아갈 거 같다.
그렇다면 ...
그렇다면 그 동안의 일은 다 뭐였을까...?
코니 아일랜드의 상징이지만
그저 빙글빙글 돌 뿐 별 의미는 없는
대관람차, 원더 휠과 지니의 삶은 닮아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그저 비루하게 여겨지고,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나의 비극적 결함은 무엇일까?
지니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너는 정말로 괜찮은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