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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또개 Jan 14. 2024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는 남편

남편에겐 고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써보고 싶은 병'이다.

취미로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영상을 찍어 올리다가 채널을 돌연 삭제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 얼마 전 유튜브 채널을 다시 만들고 싶다던 남편은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고민하더니 이제야 본질을 깨달은 사람마냥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그래! 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던 거였어!"






남편의 뜬금없는 외침에 웃음이 터졌다. 인플루언서라니... 


"니가?"


나도 모르게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남편이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유명한 채널에만 붙는다는 '협찬' 때문이었다.

본인이 유명해지면 제품 협찬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거고 남편은 원하는 제품을 써 봐서 좋고 기업은 정성껏 써준 리뷰에 좋고 잠재 고객은 맛깔난 리뷰를 접해 좋고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일거양득 아니겠냐는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선택적 관종인 우리가 인플루언서로 성공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어쩌면 남편이 지금 한국에 있었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있을 당시 제품 리뷰는 그의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그는 카메라, 이어폰과 같은 전자 제품 리뷰를 블로그에 남겼고 그의 제품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장비 대여 업체는 그의 놀이터가 되었다. 체험단에도 여러 번 당첨이 돼 그의 리뷰는 우수 체험기, 심지어 최우수 체험기로도 뽑혀 해당 제품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었다. 블로그가 커지면서 새 제품 리뷰할 기회가 더 많아졌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독일로 이주하며 남편의 취미생활은 중단됐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한국에서처럼 활발하게 원하는 제품을 접할 수 없어 남편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의 새 제품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작게는 필기구부터 크게는 전자 장비까지,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물건은 그의 관심거리가 된다. 과거엔 관심 있는 건 쉽게 접할 수 있던 남편이 지금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리뷰 영상을 보며 대리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영상 속 주인공이 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아주 앙큼한 야망을 품고 있기도 하다.


남편의 수많은 관심 분야 중엔 '청소'도 포함되어 있는데(정확히 말하면 청소도구) 쓸고 닦는 단순한 청소가 아닌, 십수 년은 방치해 둔 것 같은 케케묵은 찌든 때를 벗겨내는 청소에 관심이 많다.

갓길에 세워진 더러워진 차바퀴를 보며 '청소해 주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건 일상이고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소생 불가능해 보이는 카펫, 보기만 해도 역겨운 차량 내부의 환골탈태 과정을 보며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유튜브 채널을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로 보는 게 신기해서 잠깐 옆에서 지켜봤는데, 나도 모르게 묘하게 빠져 들며 쾌감까지 느껴졌다.


그런 남편이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남편에겐 청소 요정이 분기마다 강림하는데 매일같이 밀고 닦는 청소가 아닌 세탁기 배수 필터, 먼지 낀 창틀, 더께 앉은 주방 후드와 같이 스팀 쫙쫙 뿌리며 시원하게 때를 벗겨내야 하는 청소에만 관심이 있다. 물론 청소 요정의 도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까지 관리돼서 좋지만, 청소가 가동된다는 건 간간이 눈독 들이는 새로운 청소 도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 거기에 불순한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남편은 오늘도 '세상의 모든 것을 판매한다'는 아마존을 관성처럼 들락거리며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다. 장바구니를 채우는 게 곧 구매로 직결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스크롤을 끝도 없이 내려야 하는 남편의 위시리스트에서 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보았다.


물건을 '소유'하기보다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남편은 언젠가 하나 둘 물건을 모아 렌털업을

도전해 봐도 되겠다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보다는 그게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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