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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pr 18.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13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어쩌다 온따나스까지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날씨 계속 좋음

오늘은 오전에 부르고스 대성당 투어를 하고 오르니요 델 까미노까지 20여 km를 가면 된다.

8시에 알베르게를 나와 성당 투어 시간인 9시 30분까지 시간이 있어 근처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부르고스 성 위에서 부르고스 전경을 보러 올라갔다.

언덕을 조금 오르니 산 에스떼반 성당이 위풍 당당히 서있다. 이렇게 많은 성당들이 다 시대에 맞게 이용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스페인의 가톨릭 사랑은 남달랐나 보다.

Iglesia de San Esteban 뒤로 부르고스 대성당

부르고스 성은 보수 중이라 입장을 못하고 전망대에서 부르고스 시내를 내려다본다. 왜 이전 까미노에서는 이런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 사실 지금도 그렇게 여유 있게 관광하듯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좀 덜 걷고 좀 더 보면은 좋을 것을... 쫓기는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드는 것은 아마도 숙소 경쟁 때문만은 아닐 거라생각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표현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부르고스 성 근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부르고스 대성당. 정말 화려하지 않은가?
부르고스 대성당 종탑

성당 투어 시간에 맞춰 순례자 요금인 5유로(일반 10유로)를 지불하고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화려했다. 엘 시드와 그 부인인 히메나의 무덤, 그리고 부르고스 대성당을 거친 수많은 성인들도 각각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은 기본적으로는 무덤의 기능도 했는데 이는 아마도 신의 장소에 묻히면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고한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간이 스스로 완전하지 못한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그 부족함을 어딘가에 의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을 신과 그 신을 추앙하고자 만들어진 건축물 등은 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모태 신앙이었던 내가 지금은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없다고 해도 신을 상상하고 구체화한 인간의 의지란 놀랍다고 할 수밖에.

 13세기 고딕양식으로 처음 지어진 성당은 이후로 수많은 증축을 거쳐 17세기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이 많이 흔들렸네...
천창의 화려함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화려함 위에 금칠로 화려함을 더한 제단 장식 
아름다운 천창
아마도 엘 시드와 히메나?
초기 부르고스 대성당
대성당 모형
중정에서 바라 본 대성당

한 시간 넘게 성당을 관람하고 부르고스를 벗어나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지 가는 길은 약간은 번잡했다가 다시 조용한 시골 마을을 잇는 구간으로 연결되었다.

한 나무에서 두가지 꽃이 피었다. 접붙이기를 한 것인지 괴이했다.눈씻고 봐도 분명 한나무였다.

부르고스 시내를 빠져나오는 끝에는 부르고스 대학이 흩어져 자리하고 있었고, 많은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부르고스 대학 구내에 있는 Ermita de San Amaro

따르다호스 마을 초입에 이 근방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과 관련된 그림이 그려진 집이 멋지게 서있다.

따르다호스 중심에서 제대로 된 메누 델 디아 menu del dia(오늘의 식사?)를 먹으려 했지만 보까디요(bocadillo)류만 팔아서 참치, 로모 보까디요를 시켜서 요기. 사실 이것만 먹어도 배는 불렀다.

길고 긴 밀과 벼와 유채 등이 심어진 오르막 언덕을 넘어 다시 한참 내리막을 걷고서야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 도착했지만 온마을의 알베르게가 풀이다. 우리가 너무 늦게 부르고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순례자가 생각보다 참 많다.  잠시 쉬고 10km 뒤에 있는 온따나스Hontanas를 목표고 힘을 내본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800~1000m쯤 되는 고위 평탄면 지역이고 흔히 메세따 meseta 라고 불린다. 그늘 한점 찾기 힘든 지역이라 순례자들이 걷기를 기피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순례자는 이를 잘 견디고 끝까지 걷는다. 그게 순례의 의미이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다만 불평을 할 이유는 없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입구
수탉 상징이 서 있는 성당과 그 오른쪽 옆의 공립 알베르게

5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어 9시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중간에 산볼이라는 곳에 꽤 유명한 알베르게가 있어 머물 수 있으면 머무르려 한다.

5km쯤 오자 산볼 알베르게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성큼 걸어갔지만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런...

잠시 쉬며 사과한 개 먹고 다시 걷는다.

고위 평탄면 사방이 지평선이다. 내 평생 이런 풍경을 또 보려면 또 이곳에 와야 하나?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초록으로 채워진 들판 사이의 하얀 흙길을 따라 걷는다.

온따나스가 이제 1km가 체 남지 않은 시점에 일몰이 시작된다.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다.

드디어 온따나스 마을 입구다. 초입의 알베르게에 가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애초에 공립 위주로 자려고 했던 계획이 다시 튀어나와 마을 중심까지 걸어 내려가 8시 45분 드디어 온따나스 공립 알베르게에 입실했다. 12유로. 다행히 배정받은 방은 침대는 많았지만 6명만 입실하고 있어 마음 편하게 씻고 눕는다. 저녁은 생략.

고위 평탄면 아래로 들어간 지형에 마을이 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온따나스 전경

계획과는 다른 일정은 순례길에도 그리고 우리 인생에도 상존한다. 계획대로 되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나는 오늘도 길에서 또 깨닫는다.


오늘의 지출 - 36유로

아침 : 20유로 젠장... 비싸 부르고스

치약 등 : 4유로

알베르게 : 12유로

점심 : 16유로쯤(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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