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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Jul 07.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26

스페인 최고(最古)의 수도원 중 하나인 사모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묵다.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눈 쌓인 26일 차를 걷다.

Hospital 오스삐딸 ~ Samos 사모까지 26km 

눈과 입이 행복한 하루였다고 기록하고 싶다. 뭐 눈이야 매일 행복하긴 하지만 말이다.  


알베르게의 창이 밝아 오니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훤하다. 조심할 필요 없이 과감하게 짐을 싸서 1층 식당으로 내려가 먹을 거라고 없는 가방을 탈탈 털어 고픈 배를 살짝 속여본다. 창밖으로 보이는 큰 도로에는 벌써 앞이전 마을과 그 이전 마을에서 출발했을 순례자 여러 팀들이 진 눈과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다. 저들은 왜 이 길에서 저렇게 힘들게 걸을까? 그리고 나는 왜?


순례길은 도로 옆으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들고 있어 난 그냥 도로 옆을 따라 걸었다. 굳이 요령을 피운달까? 인간이 참 간사하다.  

마을 어귀의 성당 Iglesia de San Juan de Hospital
선배님이 도로옆의 순례길을 걷고 있다.

2016년 아들과 왔던 겨울에 난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 1시간 이상 길을 찾아 헤맸었다. 이번엔 길을 잃기엔 표식들이 너무 잘 보였지만 그때 눈이 발목을 넘게 쌓여 있어서 갈림길에서 길을 놓쳤었다. 

살짝 쌓이 눈 사이로 꽃이 예쁘다.

계속 내리막이어야 할 것만 같았던 길은 군데군데 숨 가쁜 오르막을 만들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눈이 살짝 쌓인 초지위에서 풀을 뜯는 소가 있는 풍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이때가 한숨 돌리는 한 순간이 되었다.

Iglesia de San Juan de Padornelo

차도 방향으로 난 가파른 오르막 끝에 성당이 있고 성당을 끼고 오른쪽 방향으로 좀 걷다 보니 문연 바르가 있어 들어갔는데 순례자가 너무 많다. 이 바르는 2016년 겨울에도 방문했던 곳이다. 주문하는 손님은 많은데 중늙은이 주인 남자는 느릿느릿 한 명 한 명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주고 돈을 받고 거스름을 내주는데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콜라와 까페 꼰 레체와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등으로 간단히 에너지를 만든다. 눈이 비로 변해 기분이 상쾌하지 않고 뭔가 계속 불편하다. 몸도 마음도 정신 상태도... 서둘러 답답한 공간을 빠져나오니 바로 길 건너에 바르가 하나 더 있네, 사람도 적어 쾌적해 보이는.  

참 빨리도 걷는 외국인 순례자들. 도대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걷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정상에서 구름이 흘러내린다. 
스페인 북부 지역의 고대 가옥인 빠요사스(pallozas)를 지여 살고 있는 현지인
이끼 가득한 초록과 연두와 노랑의 돌담길이 아름답다. 
Ermida de San Pedro do Biduedo

작은 마을 몇 개가 드문드문 이어지다 한동안 초지 사이로 난 길을 제법 오래 걷는다. 진짜 경치가 끝내준다. 

눈, 진눈, 비의 순으로 내리던 날씨는 해가 나자 등산자켓을 벗게 만든다. 날이 좋아지니 산과 들판은 더욱 초록 초록 연두연두하다.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낯익은 이름인 피요발 fillobal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2016년 겨울엔 차도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마을인데 마을 이름이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았었던 것 같다. 이 바르를 만날 순 없었다. 순례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꼭 들러보길 권하는 바르가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 입구 간판 중간쯤엔 '시래깃국 밥'이라고 적힌 한글을 만날 수 있다. 이 메뉴를 봤다면 냉큼 바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시래기국밥이라고 적힌 액자 같은 간판에는 깔도 가예도 caldo gallego(갈리시아 수프)를 몇 가지 언어로 적어 놓았다.

선배를 기다리며 비에 흠뻑 젖은 테라스의 의자 물기를 휴지로 닦아내고 앉아 까페 쏠로 한잔을 천천히 음미한다. 아 춥다.ㅋ  선배가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 시래깃국 밥(깔도 가예고,갈리시아 수프)을 주문했다. 공깃밥과 국을 따로 주는 모습에서 진짜 따로국밥 같은 인상을 받았다. 공깃밥을 국에 말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니 아! 너무 익숙한 맛이다. 뭐랄까 시래깃국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느낌에 간도 적당하고 심지어 쇠고기 다시다를 넣지 않았다면 이런 맛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물론 11km 넘게 걸은 시점이라 뭘 먹어도 맛이 없기 쉽지 않았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고 충분히 맛있었다. 5.5유로면 환산가로 8천 원 정도라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라면에 비하면 좋은 가격이었다. 

제법 잘 퍼진 쌀밥에 시래깃국 유사한 맛의 깔도 가예

피요발을 지나 내리막을 이어 가면 Pasantes 빠산떼스라는 마을에 당도하는데 Capela de as pasantes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성당 유적이 반긴다. 성당 입구에 장식된 꽃 두 송이가 눈길을 잡는다. 

Capela de as pasantes

빠산떼스를 지나자 곧 초록으로 뒤덮인 뜨리아까스뗄라가 보입니다. 오 세브레이로에 묵었다면 보통은 이곳에서 다시 하루 머물게 되는 마을입니다. 알베르게도 제법 많은 마을이며 마트, 식당도 갖추고 있습니다. 

뜨리아까스뗄라 Triacastela 입구의 모습은 고목과 석조주택들이 어우러져 제법 달력에 실릴만한 풍경을 연출했다. 

이 마을 입구에는 우리나라의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당목 같은 느낌의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데, 나무 기둥 부분에 괴이한 문양 혹은 일그러진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무늬가 있어 밤에 보면 좀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줄기가 뻗어나왔던 곳이 잘리거나 하면서 남은 부분이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사람 얼굴 처럼 보인다. 
담장에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식물도 잘 어울린다. 
마을 중심과 좀 많이 떨어진 공립 알베르게

입구 쪽의 공립알베르게에는 벌써 몇 명의 순례자들이 입실하는 게 보였다. 우리는  사모스까지 가기로 했기에 통과 통과. 마을 끄트머리 왼쪽에 공동묘지 역할을 하는 성당이 있어 잠시 돌아보고, 사모스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길 왼쪽에 장이 섰는데, 문어를 팔길래 점심 겸 뿔뽀 한 마리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주문해 먹어보는데, 와! 맛있다. 갓 삶아내 가위로 툭툭 잘라서 나무 접시에 올리고 올리브유와 pImiento 삐미엔또(서양고추,피망) 파우더, 소금을 대충 뿌려 내주었는데,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매우 좋았다. 같이 내어준 바게트와 화이트 와인까지 제법 괜찮은 늦은 점심식사로 충분했다. 

약간 아쉬워서 뿔뽀 한 마리를 포장해서 배낭에 넣었다. 마을 끝에 산실과 사모스 방향으로 길이 나뉘는데 산실 쪽이 짧지만 사모스 수도원 알베르게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2016년 걸었던 그 길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고자 사모스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San Cristovo do Real 산 끄리스또보 도 레알이라는 오르비고 강을 낀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오르비고 강과 나란하게 난 도로 곁을 따라 약 3km 넘게 걷는데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걸을 수 있었다. 

San Cristovo do Real은 작고, 사람이 살고 있는 듯 하지만 매우 조용해서 건물만 있는 마을처럼 느껴진다.

오르비고 강이 마을 가운데를 흐른다. 

초록으로 가득 찬 숲 사이 길은 렌체,라스뜨레스,프레이뚝세 마을로 이어지는데 길지 않은 이 구간은 또 한 번 프랑스 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만한 길이었다. 역시 기억 속의 그 길처럼 말이다. 

졸린 눈의 냥이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연상되는 시골 주택의 지붕. 지역적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빈티지한 느낌의 가라헤 garaje  차고

강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데 렌체부터는 강이름이 사리아 강으로 바뀌었다. 거참 강은 하난데 이름이 왜 바뀌는 것인지. 이 사리아 강은 사모스 수도원으로까지 이어져 수도원 동쪽벽을 타고 서쪽으로 계속 꼬불꼬불 이어지다 도시인 사리아를 지나면 neira 강과 합쳐진다. 

리오 사리아 (사리아 강)

사모스 도착 전 마지막 마을인 산 마르띠뇨에 도착하면 오르막을 잠시 오르고 오르막 끝에서 사모스 수도원이 내려다 보인다. 한동안 서서 사모스 수도원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빗속에서 아들과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가 안 내린다는 것은 순례자에겐 일종의 축복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스 수도원 돌담에 자리잡은 초록 생물들이 참 예쁘다.
사모스 근처 주택의 동백

오늘의 목적지인 사모스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 건물에 부속되어 있는 알베르게를 가려면 강을 건너 도로를 따라 수도원을 한 바퀴 감싸듯 돌아 걸어 들어간다. 이 수도원은 6세기에 지어졌다고 하며 천년 이상 산띠아고 순례길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수도원 투어를 별도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일요일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투어를 할 순 없었다. 

사모스 수도원 중 일부 건물에 자리 잡은 Iglesia de Santa Gertrudis
[펌] 구글아트&컬처에서 사진 캡처. 중정이 두 개 있는 건물의 형태로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시간차를 두고 증축되었다.

알베르게 입구는 건물의 동쪽을 면하는 방향 도로와 접하고 있었고 입구 오른쪽에 주유기계가 하나 있는데 알베르게 관리자가 주유일과 알베르게 관리를 동시에 하고 있는 듯했다. 무거운 출입문 안쪽으로 방공호 느낌이 나는 커다란 방안에 2층 침대가 제법 많이 놓여 있다. 따뜻한 물 샤워는 가능했지만 난방을 따로 하지 않아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이 따로 없어 들어오는 길에 있던 마트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거나 주변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방안에 그려진 벽화는 천지창조를 모방한 듯한... 

끝쪽의 침대에 누워 바라본 알베르게 전경

짐을 풀고 씻고 간단히 세탁하고 아직 볕이 들고 있는 알베르게 옆 사리아 강가에 높인 벤치에 빨래를 널어놓고 담배를 말아 피운다. 

수도원 남쪽 벽을 따라 흐르는 사리아 강
해가 없으면 아직도 꽤 춥다.  30도씩 올라가는 기온이 아닌데도 햇볕이 매우 강해 얼굴이 많이 탔다. 

저녁을 위해 알베르게 건너편 바르로 들어가 메누 델 디아와 화이트 와인을 시켜 포장해 온 뿔뽀와 같이 먹었는데 역시 음식은 바로 만든 그 자리에서 먹어야 맛있다는 진리를 또다시 깨닫는다. 저녁 식사는 뿔뽀를 빼면 전반적으로 실패다. 갈리시안 수프(깔도 가예고)는 너무 시큼해서 반도 못 먹었고 생선 요리는 양이 너무 적었다. ㅋ 그래도 문어가 있어 다행인 하루 세끼였다.  

해가 떨어지자 기온이 급강하했고, 때문에 알베르게 공용 담요를 침낭밑에 두 겹으로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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