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데에서 뿔뽀와 소갈비찜으로 빵빵한 점심 만찬을 즐기다.
Igrexa de Santiago de Lestedo
Airexe 아이렉세 ~ Boente 보엔떼(A Peroxa 아 뻬록사)까지 27km
갈리시아는 갈리시아다 비 예보가 계속 이어진다. 그나마 겨울 우기처럼 종일 내리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지나는 동네 중에는 꽤 큰 마을이 두 개 있다. 빨라스 데 레이와 멜리데라는 곳인데 빨라스 데 레이의 추억은 비와 비 그리고 비뿐이었다. 멜리데에서의 추억은 역시 뿔뽀 그리고 비...^^
비가 내리지 않을 때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성당이 참 많기도 하다. 그렇다 이 길은 산티아고의 길이다. 야고보, 사꼬베오, 야곱, 산티아고로 불리는 예수의 제자 무덤을 찾아 경배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라는 것이 이럴 때 실감 난다.
아주 풍부한 그린 컬러의 숲 길은 눈도 마음도 평화롭게 만들어주지만 발은 그 평화로움을 느낄 수 없나 보다. 아침을 시작하는 발걸음은 힘에 겹다. 이미 3차례에 걸쳐 약 150일간 3500km를 넘게 걸었지만 힘들고 불편하고 아픈 곳이 매일매일 걸을 때마다 있는 것을 보면 걷는 것 자체는 익숙해질 수 있지만 걷는 것이 편안한 경지에 이르기는 요원한 기대일 듯하다.
7km쯤 걸으니 빨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왕의 삽들?)에 도착했다. 이 마을도 작은 마을은 아니라 성당도 여러 개 있으며 공립알베르게를 비롯해 꽤 많은 알베르게들이 운영 중이다. 맛집도 있어서 구글 지도에 표시해 놓았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밥을 먹고 갈 수는 없었다. 점심 즈음 멜리데에 도착하면 맛있는 문어(뿔뽀 pulpo)를 먹을 예정이기도 해서 성당만 한 군데 들렀다가 걸음을 이어갔다.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한가하고 예쁜 농가주택과 정원을 만날 수 있었다.
순례객들이 부쩍 많이 늘어났다. 확실히 사리아를 지나며 단체들이 많이 보이는데 주로 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주이다.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벌써 17km 지점을 통과하며 작고 조용하고 예쁜 오 레보레이로 O Leboreiro 마을을 통과했다.
레보레이보를 빠져나오면 개울을 건너기 위해 놓인 막달레나 다리 Puente de Magdalena를 건너는데 다리 모양이 단순하지만 미려하다. 2016년 2월 초의 이 다리 주변은 물바다였다. 사람의 길인지 물의 길인지 모를 정도였고 젖지 않기를 아예 포기하고 걸었는데 이렇게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니... 비를 맞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고 한 시간쯤 걸으니 멜리데의 Furelos 푸렐로스 마을로 진입하게 되는데 입구에 Ponte de San Xoán de Furelos 푸렐로스의 성 소안 다리(로만 브리지 표기되어 있다)를 만나는데 앞의 막달레나 다리와 기본적인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가 커서 아치가 3개나 있고 제법 높이가 있다. 로만 브리지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로마시대에 만들었던 다리 자리에 다시 놓인 듯하다.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바로 푸렐로스의 성 소안 성당 Igrexa de San Xoán de Furelos을 만나게 되는데 측면 입구의 돌계단이 매우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디 선가 유사한 계단을 봤었는데, 이런 유형의 성당 입구로 이어진 돌계단은 나의 관점에서는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니까 사진도 찍었겠지.
그리고 이 성당 안에는 유명한 예수 십자가 상이 있는데 독특하게 못 박혔던 오른쪽 팔이 빠져 아래로 늘어져 있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아래 사진은 구글에서 퍼온 사진인데 직접 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을. 성당 문은 자주 열지 않는 듯했다.
멜리데에 도착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뿔뽀 전문점인 몇 개 있고 우리는 Pulpería Ezequiel 뿔뻬리아 에세끼엘(한국분들이 종종 뽈뽀라고 하는데 뿔뽀가 맞는 발음이다)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2016년 왔을 때 보다 가게는 더욱 확장된 듯 보였다. 실내가 상당히 넓었지만 공간이 있어도 바로 손님을 들이지 않고 홀 안쪽의 많은 식탁을 하나씩 세팅하며 한 팀 씩 들여보냈다. 15분쯤 대기했다가 들어가 자리를 잡고, 하우스 화이트 와인 한 병과 뿔뽀 2 접시, 소갈비찜 1 접시를 시켰다.
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나이 많으신 식당 직원 할머니는 단호하지만 유머러스하게 주문받으셨다. 왕갈비 찜쯤 되어 보이는 소갈비 요리는 질기지 않고 간이 잘 맞아 맛있었고 뿔뽀는 말하나 마나 맛있었다. 멜리데 오는 길에 빰쁠로나 마리아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퇴직 공무원 어르신을 만나 같이 식당으로 왔는데, 별 도움드린 것도 없는데 선뜻 식사비를 내셨다. 고맙습니다. ^^ 소갈비 찜 같은 것은 16.5유로, 뿔뽀는 한 접시 11유로, 화이트 와이은 6.5유로 정도였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즐길만했다.
식사비를 내주신 분은 코로나 기간 담당 공무원으로 현장과 맞지 않는 정책들과 싸우며 위기를 극복하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던 듯했다. 얼마 전에 공무원을 퇴직하시고 조금은 무기력하게 보내고 계셨는데 간호사를 하는 따님이 비행기 표를 끊어주어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초반에 빰쁠로나의 마리아 알베르게 중정 벤치에서 처음 인사 드린 후 순례길을 찾고 알베르게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앱을 한두 개 소개해드린 인연으로 종종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는데 오늘 멜리데 오늘 길에 다시 만났고 오늘은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고 하셨다.
멜리데에는 크고 작은 성당이 여러 개 있어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이 충분한 마을이었다. 보통은 멜리데에서 하루 묵어가는 경우가 많다.
멜리데까지가 22km, 오늘의 목적지이자 이번 순례길에서 처음 예약한 보엔떼 마을까지는 5~6km 정도만 더 가면 된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걷는데 비가 막 쏟아진다. 거의 다 와서 이게 뭐람...
예약한 알베르게는 Albergue El Aleman(독일인의 알베르게)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깨끗한 숙소동과 바르가 있는 식사동이 나뉘어 있었는데, 다행히 저녁 식사를 팔고 있어 침대에 자리를 잡고 느지막이 저녁을 주문해 먹었다. 식사는 론세스바예스의 식당에서 처음 뵀던 누님 3분과 함께해 오랜만에 우리말로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일몰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름답진 않았지만 비 내리던 구름 낀 하늘의 끄트머리에 태양이 붉게 내려앉는 모습은 반갑고 예뻤다.
알베르게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았지만 난방을 틀어주거나 하진 않아서 좀 썰렁했다. 난방을 틀어줬으면 신발도 좀 말리고 했을 건데, 난방에 참 인색하다.
이제 이틀 후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어 발음으로는 싼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라고 해야 한다.)에 도착한다. 선배님은 이제 도착하면 순례자 모드에서 여행 모드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