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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1

바다를 낀 아름다운 북쪽길

by 감뚱

1. 바스크 지방

■데바 ~ 빌바오

해변에서 떨어져 헤르니카(게르니카) 지나 북쪽길 최대 도시 빌바오로 가는 길

Deba에서 Bilbao로 향하는 길은 이제 잠시 해안선에서 벗어나 내륙 길을 걷게 된다. 중간에 우리에게 게르니카라는 미술 작품으로 유명한 Gernika(헤르니카)를 지나게 된다. 숲과 여러 개의 길고 높은 언덕을 지나게 되며 전체 북쪽길의 난이도로 본다면 개인적으로 난이도 상에 해당한다. 이 구간은 보통 나흘간 걷게 되는 코스로 자연 속에서 고요함과 전통적인 느낌의 스페인 시골 마을과 빌바오라는 대도시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숙박을 위해 머무르게 되는 마을은 Markina-Xemein(마르키나 세메인), Olabe(올라베), Gernika(헤르니카), Larrabetzu(라라베츄) 등이 있는데, 본인의 걸음걸이 속도와 일정 계획 등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규모가 있는 마을이 많지 않아 부득이 공립 알베르게를 이용하기 어려울 경우 숙소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순례길을 걸을 때 보통 걷기 시작하는 시간은 대략 오전 6시 전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간은 보통 어두울 경우가 많고 겨울이라면 한밤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가능하면 다음 숙소가 있는 마을까지 일찍 도착해 내일을 위한 정비를 하는 것이 좋고 많은 순례자가 그렇게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스타일 대로 걸으면 된다. 공립 알베르게의 경우 너무 일찍 도착하면 오픈시간까지 기다려야 하고, 순례자가 많을 땐 또 긴 줄이 세워지기 때문에 굳이 경쟁하듯 새벽부터 출발해 일찍 도착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대도시의 공립 알베르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소 마을의 알베르게는 순서대로 한 명씩 접수받고, 침대까지 안내해 주는 일을 오스삐딸레로(알베르게의 관리자를 오스삐딸레로, Hospitalero라고 한다.) 혼자서 처리하기에 한시간 이상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동트기 전 걷기 시작하는 것은 흔하고, 일몰 후까지 걷는 것은 드물다. 이점을 고려해서 작은 랜턴류를 챙기는 것이 좋다.

데바에서 빌바오까지는 대략 90km 정도로 3일 혹은 4일에 걸쳐 걷는다. 경험성 3일에 걷는다면 매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체력에 딱히 문제가 없다면 3일로 나누어 걷고 빌바오에서 하루 관광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3일 코스로 진행할 경우 중간에 끊어가는 마을도 좀 애매해질 수 있고, 초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 나의 경우는 4구간으로 나누어 걸었다. 만일 다음에 북쪽길을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3일 코스로 걸어야 겠다고 생각해 본다.

화면 캡처 2025-03-30 092713.jpg 데바에서 빌바오까지는 내륙 산악지대로 해발고도 0m 에서 500m 사이의 언덕, 산길이 계속 이어져 체력적으로 힘들다.

데바에서 마르키나 세메인 가는 길에는 상업 시설을 갖춘 마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간식과 음료를 충분히 준비해서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마르키나 세메인 도착 전 약 4km 앞에서부터 매우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다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20220911_063205.jpg 데바의 기차 역사 알베르게를 나오면 이렇게 바다와 이어진 데바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는데, 새벽의 항구 도시 풍경이 아름답다.
P1120852.JPG 언덕 위에 올라 동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짙은 오렌지에서 옅은 보라색으로 이어지는 하늘색의 연결이 감동적이다.
P1120858.JPG 사람이 살고 있는 시골 집들은 대부분 겉보기에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집들이 많다.
P1120861.JPG 언덕을 하나 넘어 내리막을 따라.
P1120864.JPG 숲 사잇길, 혹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비포장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종종 나타나는 시골집들.
P1120867.JPG 뒤따르는 순례자. 곧 그들은 날 앞질러 지난다.
P1120870.JPG 마르키나 세메인까지 높은 산악지대를 걷게 되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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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몹시 뜨거운 산 길에서 몇명의 순례자들이 앞서 간다.
P1120877.JPG 드디어 하루 묵어갈 마르키나 세메인 외곽 마을이 저 멀리 아래에 나타났다.
P1120878.JPG 마르키나 세메인 초입의 Ermita de San Miguel de Arretxinaga 천주교 유적지
P1120879.JPG 작은 성당 안에 그 안을 꽉 채운 바위 세 덩이가 붙어 서 있는데 40만 년 이상된 것이라고 하며 3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P1120883.JPG 성당(Iglesia de Nuestra Señora del Carmen)의 일부를 알베르게로 고쳐서 사용하고 있는데 성당 중정에 마지막 햇볕이 비추고 있다.
01120891.jpg Iglesia de Santo Tomás

마르키나 세메인에서 7km쯤 진행하면 Zenarruza Monastery라는 오래된 성당 수도원과 그곳에 운영중인 알베르게가 있는데 데바에서 여기까지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가게, 식당 등은 없지만 마르키나 세메인에서 약간의 먹을거리를 산 후 이곳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01120897.jpg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Zenarruza Monastery 가는 길
01120910.jpg Zenarruza Monastery 쎄나루싸 모나스테리,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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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arruza Monastery 성당 내부의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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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벽에 나무 기둥을 박아 처마를 만든 독특한 형태의 회랑을 볼 수 있다. 들보에 나무로 짐승 모양을 깎아 놓았는데 그 모양이 재밌다.
01120904.jpg Zenarruza Monastery 쎄나루싸 수도원의 중정은 작지만 아름답다.
01120911.jpg Zenarruza Monastery
01120913.jpg 잘 만들어진 순례길 표지석의 노란 화살표가 정확한 길을 알려준다.
01120916.jpg 시골마을에 아주 잘 가꾸어진 집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집주인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없었지만 정원 관리에 진심인듯 하다.
01120919.jpg Munitibar(Gerrikaite) 마을의 광장 앞의 성당 Parroquia católica Natividad de Nuestra Señora
01120920.jpg 고원 같은 지대를 지나며 만난 소는 덩치가 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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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외관 가꾸기에 진심인 시골집들
20220912_100303.jpg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듯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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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에 데크길도 오르막에 흙, 돌 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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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였던 albergue andiketxe 테라스에서 바라 본 동네 모습. 뭐 없다.

몇 가구 살지 않는 마을에서 새벽 일찍 길을 나서면 정말 칠흑같이 어두운 숲길을 걸어야 하는데, 혼자라면 좀 무서울 수도 있다. 거의 1시간 이상 랜턴에 의지해서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며 걸어야 한다. 당연히 그 시간동에 경치 감상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

P1120930.JPG 숲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Iglesia santo Tomás apostol
P1120931.JPG 조금 멀리 떨어진 후 돌아본 Iglesia santo Tomás apostol

어두운 새벽길을 혼자 걸은 후 헤르니카(게르니카)가 보이는 언덕 정상에서 한참 주변을 돌아보고 헤르니카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헤르니카는 역사의 아픔을 가진 곳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미술시간에 배웠거나 본 경험이 제각각 있을 것이다. 추상화인 게르니카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솔직히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게르니카의 역사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37년 6월 프랑스 세계박람회에 스페인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공화파의 부탁을 받아 그려서 전시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1936년~1939년) 중 가장 참혹했던 사건중 하나였다. 공화국을 지지하는 공화파와 프랑코 장군의 국민파 간의 충돌로 시작된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적 지원을 받던 프랑코의 국민파는 전략적 요지였던 게르니카를 폭격해 군사적 이동을 방해하려 했고, 이 폭격은 작은 마을이었던 게르니카의 주민 1,6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마을의 70% 이상을 파괴했다고 한다. 4.3 때문에 특정한 날 섬전체지역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제주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이 공중 폭격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공격이었다고 하며 파블로 피카소는 이 사건의 참혹함을 게르니카로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해석을 접할 수 있다.

2839_4952_3831.jpg 피카소의 게르니카
P1120940.JPG 헤르니카가 내려다 보이는 지점. Iglesia de la Ascensión del Señor
P1120941.JPG Iglesia de la Ascensión del Señor
P1120942.JPG 아담한 크기의 시골 동네라기엔 그래도 좀 규모가 있는 시골 동네 헤르니카는 2022년 가을엔 조용하고 평화롭다.
P1120945.JPG 헤르니카의 긴 마을 모양을 따라 길게 드러누운 Oka 강의 Mundakako itsasadarra. 생물권 보호구역이라고 함.
P1120946.JPG Museo de la Paz de Guernica(게르니까 미술관)
P1120949.JPG Andra Mari Eliza gotikoa (Gernika)
P1120950.JPG Convento e Iglesia de Santa Clara (Clarisas) 산따 끌라라 수도원 성당
P1120951.JPG 현재의 공식 명칭은 Gernika-Lumo(헤르니카-루모),현지에는 Guernica(게르니까)라는 표현이 많이 보였다.
P1120953.JPG 게르니카를 지나 다시 언덕 위에 올라 뒤를 돌아 바라본 모습
P1120955.JPG 길 위에 버려진 뼈대만 남겨진 빨간색 자동차의 잔해가 눈에 확 띈다. 노란 화살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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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로 밑으로 뚫린 길도 종종 지난다.
P1120963.JPG 길은 다시 어딘가 위로 위로 이어진다.
P1120965.JPG 숲길이 너무 평온하다.
P1120966.JPG 라라베츄 도착 전 마지막 언덕 정상의 인적 드문 곳에 대저택이 하나 지어져 있는데, 고맙게도 수도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해 놨다. 덕분에 땀도 식히고 목도 축일 수 있었다.
P1120967.JPG 9월의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걷는 게 좀 힘들지만
P1120969.JPG 키가 훌쩍 높은 숲을 지나기도 하니 다행이랄까
P1120971.JPG 참으로 다양한 식생지역을 넘나 든다.
P1120974.JPG 바스크 독립을 주장하는 그래피티. "이곳은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니다"
20220913_171615.jpg 라라베츄의 성당 종탑이 살짝 보인다.
20220913_171627.jpg 라라베츄의 공립 알베르게
20220913_180016.jpg 순례자의 음료 중 하나인 콜라가 있는 풍경.

라라베츄 공립 알베르게는 독특하게 생겼다. 지방 우체국 사무소가 2층에 자리하고 있고, 알베르게는 3층에 있다. 이룬에서 같은 날 출발했던 형님을 이곳에서 또 만났다. 매우 빠르게 걷던 형님의 발바닥은 이미 엉망이었다. 물집 때문에 어찌 걸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이곳 알베르게의 오스삐딸레로가 물집을 직접 관리해 주었다. 이곳 알베르게의 밤은 힘들고 길었다. 정말 천정이 무너져 내릴 듯 커다란 코 골음 소리는 순례자들이 잠들면 죽음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마치 잠들기 못하게 막기 위한 것처럼 시끄러웠다. 하지만 아무도 대놓고 불평을 하진 않았다. 이것도 순례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나도 코를 골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그런 인지상정이 아니었을까?

20220914_024419.jpg 순례자의 코골이는 정말 무서울 정도다. 밤새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20220914_070815.jpg 새벽녘의 라라베츄 공립 알베르게 모습
P1120977.JPG Lezama 가는 길의 성당 겸 공동묘지. 마을 언저리 어느 곳에나 있는 공동묘지.
20220914_074832.jpg 레싸마의 동트는 새벽하늘
20220914_075412.jpg 시속 50km 제한인 도로엔 차들이 많이 다니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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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가장 흔한 아침 요기. 생오렌지 주스, 에스프레소 혹은 까페 꼰 레체(라떼), 또르띠아 데 빠따따스
P1120981.JPG 싸무디오 마을 근처에 빌바오 공항이 있어 여객기를 종종 볼 수 있다.
P1120983.JPG 보기엔 화장실 같지만 사실 기차(전철) 역이다.
20220914_093109.jpg 빌바오 전 마을 Zamudio의 Iglesia de San Martín obis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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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lesia de San Martín obispo. 성당 본체에 나무 기둥을 연결해 처마를 길게 만든 모습.
20220914_111256.jpg 싸무디오 마을을 지나 산을 하나 넘는데 산의 이름은 Monte Avril(386m). 이곳에서 바라본 빌바오 일부.
20220914_112848.jpg 몬떼 아브릴에서 내려오다 보면 고급주택과 식당등이 있는 마을로 진입하는데 달맞이 고개 같은 느낌이 살짝 든 달까?
화면 캡처 2023-03-11 103025.jpg 데바 ~ 마르키나 세메인 구간
북쪽 길 5일 차, 램블러기록.jpg 마르키나 세메인 ~ 올라베 구간
6일차  2023-01-17 154927.png 올라베 ~ 라라베츄 구간
7일차 램블러 기록.png 라라베츄에서 빌바오 구간

데바에서 빌바오에 이르는 내륙길은 힘들다. 해발고도 0m ~550m 사이의 높이를 계속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다. 마지막 구간인 라라베츄 ~ 빌바오 구간만 쭈욱 올렸다 쭈욱 내려가는 구간이다. 빌바오에서 하루 여행을 하며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대성당, 빌바오 구도심, 바스크 지방의 타파스와 핀초스를 즐기려면 빌바오 구시가지나 신시가지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 공립 알베르게는 빌바오 시내 초입의 높은 곳에 있어 이곳에서 오르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루를 더 체류하든 지나면서 여유롭게 돌아보며 빌바오를 통과할 경우라면 어쨌든 강 양 옆에 자리한 중심부에 숙소를 얻자. 이곳엔 화교가 운영하는 웍이나 일본 라멘집도 있고 한식집도 있다. 뜨끈한 국물이 벌써 그립다면 찾아가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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