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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1

바다를 낀 아름다운 북쪽길

by 감뚱

1. 바스크 지방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뽀베냐 Pobeña


도시에서 다시 작고 조용한 마을을 따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해뜨기 전에 숙소에서 나오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왠지 일찍 출발해서 도착지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 알베르게 등의 숙소가 북적이는 시간대의 불편함, 새벽 시간의 조용함 등등이 결합되어 그리되는 듯싶다.

20220915_064158.jpg 새벽길을 나서는 순례자를 배웅하는 꽃개. 꽃게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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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비온 강의 새벽 경치
20220915_074348.jpg 일찍 문을 연 바르는 항상 반갑지. 생오렌지 주스와 또르띠아 데 빠따따스.

네르비온 강을 따라 10여 km를 걸어가는 길은 마냥 좋지는 않다. 인도가 애매한 도로 곁을 지날 땐 불편하기도 하고, 걷기에 좋지도 않다.

20220915_080855.jpg 발바오를 빠져나가는 길에 출발 방향을 바라보니 채운彩雲이 네르비온 강에 비쳐 몽환적인 느낌이다.
20220915_085826.jpg 배를 수리하는 곳인지, 아니면 하역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강 임에도 꽤 튼 선박이 들어와 정박 중이다.

빌바오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라깔도 Baracaldo와 뽀르뚜갈레떼 Portugalete 까지 도시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문화 도시로의 개발 방향에 맞춘 듯 강변의 일부 차도는 인도로만 사용되고 도로는 에둘러 이어지도록 새로 깔아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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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의 아스팔트는 원래 차도 였으나 지금은 사람만 이용하게 바뀐 상태
P1121097.JPG 뽀르뚜갈레떼의 Andra Maria basilika(안드라 마리아 대성당)과 Aspaldiko egoitza(비영리 노일 돌봄 및 보호 센터, 거주형 요양 시설과 케어 센터)

빌바오 도심을 통과하는 강 하류에는 이 지역에서 철강 산업이 발전했던 증거인 독특한 구조의 비스카이아 다리(Puente Bizkaia)를 볼 수 있다. 이 다리는 빌바오의 산업화 시기에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기능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했고 현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다리 위에서 빌바오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이곳을 지날 때는 다리 위로 난 보도는 공사 중이라 통행할 수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다리는 초대형 케이블카처럼 차와 사람을 싣고 강 양쪽으로 이동하며, 이용료를 내야 한다. 1893년에 이런 다리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P1121109.JPG 비스카이야 다리를 직접 걸어서 건너보려 했으나, 공사 중인 관계로 배를 타고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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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교에 강철 케이블로 사람과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커다란 바구니를 옮기는 형태의 다리.
P1121123.JPG 배를 타고 건너며 정면에서 바라본 비스카이아 다리

뽀르뚜갈레떼 중심부로 가는 길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경사가 꽤 있는 긴 언덕이라 보행자를 위해 설치해 놓았다. 도시의 주택은 주로 오래되어 보였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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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_105008.jpg Santa Clara kultur-etxea 성당처럼 보이는데 지금은 지역 문화센터로 운영 중 이란다.

언덕을 힘들게 오르면 도심구간이 이어지다가 포장된 자전거 길과 보행로로 사용되는 길로 이어지는데, 주말이 아니어선지 자전거 타는 사람도 걷는 사람도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길은 풍경이 좋아 걷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9월 중순의 날씨는 도보 순례자에겐 그다지 좋지 않다. 다만, 아직 낮의 뜨거운 태양은 북쪽길에 접한 수많은 해변에서 수영할 수 있게 해 주지만, 난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photo-2022-09-15-11-56-41.jpg 뽀베냐로 가는 길은 이렇게 잘 포장된 자전거 길과 보행로로 일정구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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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2022-09-15-12-29-28.jpg 자전거 길을 상징하는 자전거 조형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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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자전거 길을 따라 꽤 한참을 걷는데, 중간에 식사할만한 곳들이 몇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밥시간이 맞지 않는다. 스페인의 점심시간은 12시에서 1시가 넘어야 시작하고, 저녁은 8시가 넘어야 주문을 받는다. 보통 정해진 밥시간에 가지 못하면 부엌이 닫혔다고 말하고 따로 요리가 필요 없는 간식 위주의 먹거리만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래서 새벽부터 출발해 목적지에 일찍 도착한 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후 간단히 장을 봐 저녁은 직접 해 먹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립 알베르게는 10시경에는 문을 폐쇄하기 때문에 스페인의 늦은 저녁시간이 불편하다. 물론 사립 알베르게나 호스텔(오스뗄), 호텔 등에 묵는다면 여유로운 현지 분위기의 저녁을 즐기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20220915_141031.jpg 유럽 사람은 하와이안 피자의 맛을 잘 모르는 듯. 먹어 보면 반할 텐데. 파인애플이 토핑으로 올라간 피자의 맛은 꽤 좋고 동네에서 피자가게를 할 때 하루엔 한두 판 이상은 꼭 팔렸

해변에 가까워지자 멀리 보이는 부드러운 산들이 꼭 제주도의 중산간을 연상시킨다. 험하지 않은 산 사이에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난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P1121125.JPG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이지만 저길까? 아니면 저길까 하며 걷는 맛도 나쁘지 않다.
P1121126.JPG 가끔 보이는 라이더
P1121127.JPG 해변 쪽 나무가 별로 없는 산등성이와 그 밑으로 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빌바오에서 출발한 지 6시간 정도 되었을 때 거리로는 약 23km 정도 걸었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해변이 툭 튀어나온다. 해변의 이름은 Playa de la Arena(모래 해변)인데 아름답고 유명한 해변이라서 관광에 필요한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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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21137.JPG 높지 않은 산 정상부 위로 구름이 낮게 지나가는 모습이 낯설다.
P1121138.JPG 해안 경관이 상당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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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04-18 060504.jpg
20220915_143929.jpg 바다 위의 요트와 그 뒤로 구름이 멋지다. 수직으로 발달한 구름을 적란운이라고 배웠는데 이것도 적란운인가?

해변을 따라 왼쪽으로 걸으면 바다로 이어진 '바르바둔'이라는 이름을 가진 맑은 강(이라고 하기엔 작다)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 끝으로 Ermita de Nuestra Señora del Socorro y San Pantaleón이라는 이름의 성지가 왼쪽으로 자리 잡고 있고 다리를 지나 좀 더 걸으면 뽀베냐의 공립 알베르게로 이어진다.

P1121139.JPG Ermita de Nuestra Señora del Socorro y San Pantaleón

마치 섬처럼 자리 잡은 이 작은 성당은 자료에 따르면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선원들이 보호를 기원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Nuestra Señora del Socorro(구원의 성모)는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의 한 형태로, 특히 바다에서 생명을 걸고 일하는 어부들에게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고, San Pantaleón은 기독교 순교자로, 의사였던 그는 기적적인 치유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두통과 결핵 치료를 위해 기도하는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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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mita de Nuestra Señora del Socorro y San Pantale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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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서 바라본 바르바둔 강과 해변 풍경
20220915_194920.jpg 작은 마을인 뽀베냐엔 또 다른 성당 Iglesia de San Nicolas de Bari
뽀베냐 알베르게 1.png 뽀베냐 공립 알베르게 모습
뽀베냐 알베르게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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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인 해변의 식당에서 먹기가 좀 그래서 그냥 동네 바르 왔더니 저녁한끼 해결할 만한 요기거리가 있어 맛나게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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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쪽길의 첫 번째 구간인 바스크 지방의 서쪽 끝에 다다랐다. 몸은 이제 순례길에 적응하기 시작하지만 매일 20km 이상 걷는 길은 결코 편해지는 법이 없다. 수많은 오르막과 산길을 넘어 일주일을 넘게 걸었으니 좀 적응될 만도 한데 몸은 계속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바스크에서의 신체 적응이 깐따브리아, 아스뚜리아스로 이어지는 길을 조금은 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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