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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by 감동글

배우자를 처음 만난 건 내 나이 25살,

떠나간 전 연인의 대한 아픔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무렵 직장에서 매일 보던 한 여직원에게 눈길이 갔고 요즘 말하는 몇 달의 플러팅 끝에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연애 초반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눈만 마주쳐도 좋았다

입 짧은 그녀 덕에 라면을 일주일 내도록 먹었어도 즐거웠고 취향에 안 맞는 영화를 봐도 재밌었고

면허가 없어 고속버스를 타고 놀이동산을 가더라도 행복해했고 그늘져 있던 나에게 항상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21살 어린 나이의 그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사치 부르는 것과 노는 걸 좋아했는데 만난 지 1년이 좀 지났을까? 결국엔 남자 문제로 사고를 치고 말더라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남녀 사이 헤어지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당연한 사유도 될 수 있는데 연애는 곧 결혼이라 생각하고 만나는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뭐 이전에 떠나간 연인들도 다 같은 이유였지만 몇 번 경험이 있더라도 익숙해지진 않더라


너무 괴로웠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

스스로 정신과를 찾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돌아오라고 몇 달을 울부짖었는데 한 번 돌아선 여자는 냉정하더라


몇 달이 지났을까, 매일을 취하지도 않는 술로 지새우던 어느 날 그녀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전 공기와는 너무나도 달랐는데 그래도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좋았다

깨진 유리컵을 억지로 테이프 덕지덕지 발라놓은 꼴이었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그 컵이 다시 깨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이별을 더 맞이하고 붙잡고 반복하길 수차례,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뭐가 안쓰럽고 애처로워 계속 붙잡았나 생각하니 비로소 나에게도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


한 때 나도 유흥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반발 심리였는지 그동안의 아픔을 다른 곳에서 보상받으려 했는지 몰라도 노니까 재미는 있더라


그리고 이 미친 짓들을 서로 10년 가까이 반복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결혼은 쉽게 했고 나름 지금까지 순탄하게 가정을 유지하고 있어 연애 시절 서로 죽을 듯한 아픈 기억을 심어준 게 밑거름이 되지도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의 고통과 아픔은 희미하다


우리의 이야기가 결코 완벽하거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할 수는 없다

또 누군가는 저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놓지 못하고 다시 잡아준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가정을 꾸리는 이유가 다 같진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금적적 여유가 없을 때나 육아 문제로 대립할 때면 여전히 치열하게 싸운다

근래에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을 갑론을박하며 싸웠는데 지내온 시간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에 이내 곧 화해하는 거 하나는 좋다


가끔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지만 오늘은 배우자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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