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메타버스인가
메타버스(metaverse)가 현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미디어 기업과 ICT 기업은 물론이고, 대학, 은행, 그리고 정부 부처에서도 메타버스 플랫폼과 콘텐츠를 제작하고 활용한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최근 일이라고는 해도, 메타버스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메타버스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서비스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MVR, 2007).
하지만 네트워크, 하드웨어, 네트워크 인프라, 시각화, 공간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관련 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메타버스적 현상과 서비스들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점차 더 좁고 명확한 의미로 그것들을 묶어 바라볼 필요가 생겼다(Newzoo, 2021). (그럼에도 여전히 개념이 합의되지는 않은 듯하나, 기존에 언급된 논의들을 거칠게 종합하자면) 이제 메타버스는 이용자가 아바타를 통해 접속해 자유롭게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하는, 현실 세계와는 독립적 혹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갖는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그 특징을 정리하자면 다음 표와 같다.
[표 1] 메타버스의 특징
메타버스가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기술의 진보뿐 아니라, 이용자 변화와 환경의 영향도 자리한다. 미디어와 콘텐츠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으려는 MZ세대는 거부감 없이 메타버스 안에서 활동하고 소통한다. 코로나 19(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일상 대부분의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가상공간으로 옮겨가게 된 측면도 크다(Newzoo, 2021). 2000년대 등장했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구글 라이블리(Google Lively)> 등의 메타버스 서비스는 초기 인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지 못했지만, <포트나이트(Fortnite)>, <제페토(Zepeto)> 등과 같은 2020년대 메타버스 서비스는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지속 가능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게임은 메타버스인가
디지털 게임에도 조금씩 메타버스 열풍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 현실과는 구분되는 가상세계에서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활동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게임과 메타버스는 상당 부분 유사하거나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폭넓게 규정한다면, 얼핏 메타버스가 게임을 포함하는 개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게임과 함께 빈번히 사용됨에도, 둘 간 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는 드물다. 필요에 따라 둘을 교차하거나 구분해 언급하고, 때론 동일시한다. 하나의 개념이 더 널리 그리고 많이 활용되기 위해서는 그게 유리한 측면도 틀림없이 있다.
그럼에도 게임과 메타버스 간 관계를 논의하는 일은 보다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다음 세 가지 고려사항을 통해 게임과 메타버스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단서를 찾고자 한다.
첫째, 게임은 플랫폼별·장르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게임을 하나의 추상적 대상으로 뭉뚱그린 상태에서 메타버스와 막연히 연결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물론 메타버스로 바라봐도 큰 무리가 없는 게임들도 일부 존재하지만, 적어도 현재 기준으로는 너무도 많은 게임들이 메타버스의 속성을 띠고 있지 않다. 아바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게임들도 있고, 플레이어 간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들도 있다. 특히 경제적 활동과 가치 생성의 경우는, 적용하기 힘든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세계관이 없거나 희미한 게임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적어도 게임을 메타버스와 함께 논의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게임을 어떤 구체적인 메타버스 서비스와 연결할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첫째 고려사항과의 연장선상에서 게임과 메타버스의 세계관은 너무 다른 특성을 보인다. 적어도 세계관 차원에서만 보면 게임은 거의 확실히 메타버스가 아니다. (세계관을 분명히 갖는) 게임과 메타버스 모두 가상의 세계로, 그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원리라 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다. 하지만 게임의 세계관이 상대적으로 닫힌 것이라면, 메타버스 세계관은 열린 혹은 무한대의 어떤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는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찾고 목표를 설정하기에 그에 따라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으며, 다른 참여자들과의 마주침과 만남을 통해 서로의 세계관이 교차하거나 뒤섞일 수도 있다.
메타버스도 게임이 아니다. 게임보다 현실 세계와 더 유사한 가상공간으로, 현실과의 연계 속에서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덜 폐쇄적인 세계관을 지니면서 플레이어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게임조차도 그 안에서 특히 경제적 활동이 이뤄지긴 어렵다. 애초에 게임법에서는 게임의 환금성(인-게임 재화를 현금으로 바꾸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요컨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긴 해도 게임은 게임이고 메타버스는 메타버스다. 그리고 세계관의 개방 정도는 연속체적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완전한 의미에서 열림과 닫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메타버스에 가까운 메타버스적 게임과, 게임적 속성을 좀 더 띠는 게임적 메타버스가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메타버스가 P2E(Play to Earn) 비즈니스 모델을 경유해 게임과 함께 이야기된다면, 둘은 만나기 더 어려워진다. P2E는 플레이하면서 돈도 벌 수 있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play’와 ‘earn’은 중첩되기 어려운 개념이다(이경혁, 2021. 11. 27). 게임 플레이를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면, 그 즐거움은 플레이의 자유성과 비경제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성은 즐거움의 주체가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활동을 다른 누군가나 외부요인으로부터 강요당하지 않는 것이며, 비경제성은 활동을 통해 어떠한 재화나 부도 만들어내지 않음을 의미한다(Caillois, 1967/1994).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산업에 의해 기획되고 구축된 가상세계에서 돈을 버는 것은, 참여자가 그 기획에 참여해서 돈이 되는 만큼의 행위를 해야만 가능하다. 그 행위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참여자에게 돈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 가상세계를 만든 주체에게도 (최소한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돈을 가져다준다. 그러한 행위와 결과가 애초에 참여자가 가상세계에 진입하면서 원했던 행동이라고는 보기 힘들다(정말 놀기 위해 온 참여자라면 더더욱).
결국, P2E는 참여자로 하여금 원하지 않았던 활동을,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유성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Schell & Raynolds, 2011. 2. 10).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활동 자체가 이미 다른 누군가나 외부요인으로부터 설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를 참가자와 설계자 모두의 재화로 바꾼다는 점에서 비경제성과도 거리가 멀다. P2E는 실은 노동에 불과한 것을(노동 개념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을 의미) 마치 진짜 플레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운 것으로 포장함으로써 플레이가 갖는 가치를 사라지게 만드는 착취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게임 옆에 메타버스를 슬쩍 세워놓고 P2E를 적용하면서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앞으로의 게임과 메타버스
게임과 메타버스가 같은 듯 다른 것임에도, 메타버스가 게임에 미친 영향과 의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설사 메타버스가 현재로서 다분히 과잉된 개념이라 해도 말이다. 새로운 말이 유행할 때엔 그 말이 갖는 힘이란 것도 있을 터다. 그간 여러 유사개념들이 있었음에도 ‘메타버스’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메타버스는 증강현실·가상현실·혼합현실, 세컨드 라이프·서드 라이프와 같은 기존의 개념들뿐 아니라, 디지털 휴먼, 지식재산권 묶음(IP) 등의 비교적 새로운 개념들까지도 폭넓게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의 인기가 사그라든다 해도, 그것이 설명하는 수많은 현상 자체는 당분간 계속되거나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로 인해 ‘가상’이 갖는 힘이 현실에서 인기를 얻게 된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은 그러지 못했다. 게임을 둘러싼 사회 담론은 대체로 가상보다 현실에 무게중심을 실으면서, 가상에의 집중을 긍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기 일쑤였다. 게임에 메타버스가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메타버스가 기존의 게임을 통째로 바꿀 만한 무언가도 아니다. 하지만 기존 게임의 영역 및 플레이어의 경험 확장 차원에서 메타버스가 기존 게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가상의 일상화, 즉 메타버스가 편재하면서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진다. 이제 가상과 현실은 연결돼 있고, 그 사실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가상에서도 현실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런 부분에서는 게임 플레이어들도 메타버스 참여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이 됐든 메타버스가 됐든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갈수록 늘 것이며,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미치는 영향 또한 계속 커질 것이다.
참고자료
강신규 (2020).
-현실로 들어온 놀이: 서드 라이프 시대의 디지털 게임.
-원용진 등,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139~177쪽). 커뮤니케이션북스.
박근서 (2009).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이경혁 (2021. 11. 27). -위험한 ‘바다이야기의 꿈’. <경향신문>. URL: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1270300035
Caillois, R. (1967). Les Jeux et les hommes: Le masque et le vertige. 이상률 (역) (1994). <놀이와 인간: 가면과 현기증>. 문예출판사.
Kücklich, J. (2005. January).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Fibreculture, 5. Retrieved 6/6/19 from http://journal.fibreculture.org/issue5/kucklich_print.html
Newzoo (2021). [Newzoo trend report 2021] Intro to the metaverse.
Schell, J. & Reynolds, B. (2011.2.10). Discuss about gamification vs. gameplay in gaming industry at DICE 2011. G4TV. Retrieved from http://www.g4 tv.com/videos/51205/dice-2011-hot-topics-gameification-vs-gameplay/
Stephenson, N. (1992). Snow crash. 남명성 (역) (2021). <스노 크래시>. 문학세계사.
Metaverse Roadmap (www.metaverseroadmap.org)
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8.12.~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2019.9.~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게임광고자율규제위원회 위원
2020.5.~게임문화포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