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임문화포럼 Dec 24. 2021

게임의 재미는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1.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높은 인기로 10여 년 간 방영되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은 잘못된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문제점을 고쳐 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보통은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교정이 아닌 부모의 육아 방식 교정을 통해 아이의 행동을 올바르게 고쳐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 아이의 폭력적이고 버릇없는 행동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어째서 저 지경이 되었을까?” 하면서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를 잘못 양육하거나, 학대하여 문제가 된 것이 대다수였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방치한 경우, 또는 감정적이거나 폭력적이고 원칙 없이 훈육했을 때 아이는 이런 이상 행동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즉 아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인격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나 조부모 등 보호자의 행동에 따라 영향을 받거나 모방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이유는 해결사로 나선 정신 건강 전문가가 상황을 지켜보고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으면서 도저히 교정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천방지축 무법자 아이가 부모의 양육 태도 교정을 통해서 단기간에 그 행동이 변화하는 데 있다. 여러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부모가 그동안 잘못된 육아 태도로 아이를 대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씩 하나씩 아이에게 대하는 행동을 고쳐나갈 때 아이의 행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다. 이 정도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우리 부모가 달라졌어요’가 더 적합한 제목일지도 모른다. 시청자들도 이런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개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감하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의 행동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 아이의 잘못된 행동도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2.  넛지 이론 

  우리는 인간의 행동 변화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동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넛지(Nudge)>의 저자인 카스 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는 2017년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넛지의 원래 의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의미로, ‘넛지 효과’란 부드럽게 개입하여 소비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햄버거를 먹는 사람에게 과일을 먹이고 싶은 경우, 직접적인 개입이 정크 푸드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간접적인 방법인 ‘넛지’는 그저 과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소비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되, 특정한 것을 ‘선택’했을 때 생기는 긍정적인 요인들을 충분히 제시하여 자연스러운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넛지 이론을 도입하여 효과를 본 사례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설치된 특별한 남자 소변기가 있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 넣었더니,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설치된 소변기의 파리 그림 >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파리를 보면 정조준하여 소변을 보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는 사냥이라는 활동에 길들여졌다. 따라서 현대의 남성도 사냥 본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변기의 파리를 보면 정조준하여 맞추고 싶다는 본능이 저절로 발현되고, 저 파리가 날아갈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재미가 결합된 결과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즉 재미 요소와 남성의 사냥 본능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과거에는 남자들의 소변기 밖으로 오줌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등의 부정적 자극이나 명령적 어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행동의 변화를 주려면 부정적 자극보다는 긍정적인 권유가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고의 전환은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권유적이고 은유적인 문구를 사용하여 더 높은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도 이를 실천하고자, 한 발 더 가까이 오면, 문명이 크게 발전한다(上前一小步, 文明一大步)는 거창한 문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인간의 행동 변화를 위해 소변기에 게임기를 연결하여 설치하기도 했다. 좌우로 스키어를 조종하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이용자들이 게임에 집중하다 보니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게임 경험을 통해 설치된 장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소변기 게임을 만들어서 설치한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손님이 증가했다는 성공 사례도 있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lCe0VIL0Eg&t=53s >

  한국에서도 추가적인 발상이 일어났다. 경기도 덕평휴게소는 넛지 이론을 이용한 재미있는 화장실을 테마로 하여 다양한 게임 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표적 사례가 ‘덕평 휴게소 오줌발 대회’이다.  “추석 길에 덕평에서 소변보고 해외여행 가자”는 모토로 개최된 이 대회는 화장실 이용을 재미있는 활동으로 승화시켜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덕평 휴게소에 방문하는 마케팅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 자료 : 경기도 덕평 휴게소 >

3. 게임의 재미를 이용한 사례 

  게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재미’이다. 사람들은 재미있을 때 쉽게 몰입한다. 사람들은 게임을 여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가벼운 오락거리로 여기지만 게임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게임의 기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최초의 게임으로 알려진 바둑은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설화에 의하면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바둑은 어렵고 지루한 학습활동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고도의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교육용 게임)인 것이다. 인도 지역에서 발생한 게임인 차타룽가(Chatalunga)는 진화하여 현재의 체스(Chess)와 장기(將棋)가 되었고, 체스와 장기는 장교들에게 군사 전략과 전술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적 사고와 게임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례 1) 피아노 계단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은 브랜드 캠페인을 위해 기획된 실험으로 재미있는 계단을 만들었다. 이는 공중 건강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하였다. 즉 ‘어떻게 하면 재미를 이용하여 지하철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선택하여 이용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노력의 결과로 나온 아이디어이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오덴플란 역에 설치된 이 재미있는 계단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66%의 사람들이 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2lXh2n0aPyw >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을지로입구역, 부평역,  창동역, 대전 시청역, 부산 경성대역 등에도 설치되었지만 선한 기획 의도와 달리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인구가 많고 도시의 인구 집중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계단을 밟을 때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동시에 밟는 바람에 오히려 소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인구와 출퇴근 시간대의 인구 집중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대부분의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사례 2) 빈 병 재활용 수거 게임기 

  최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구의 환경 보호를 위해 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이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한국의 재활용률은 독일에 이에 2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생활 폐기물의 재활용이 현재보다 더 잘 된다면 후손들에게 더 깨끗한 미래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아이디어가 빈 병 재활용 수거 게임기이다. 이 기계는 마치 오래된 오락실의 게임기 모양처럼 생겼다. 모양도 단순하고 작동 방법도 간단하다. 시작 버튼을 누른 후 불빛이 표시된 구멍으로 빈 병을 밀어 넣기만 하면 디지털로 점수가 표시된다. 보상은 단지 그것 뿐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게임 활동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실험 동영상을 보면 어떤 아이가 빈 병 수거 게임기에서 게임을 하며 환호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게임의 재미가 인간의 행동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 결과 재미있는 빈 병 재활용 수거 게임기는 같은 기간 동안 주변의 다른 전통적인 재활용 수거함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수거했다고 한다. 단지 게임과 같은 간단한 재미를 제공했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SiHjMU-MUo >

사례 3) 춤추는 신호등

  사람들은 신호등이 빨간색 불인데도 길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다. 빨간색 불인데도 무단 횡단을 하는 이유는 단지 ‘기다리기 싫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빨간색 불에 기꺼이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신호등을 재미있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춤추는 신호등’은 미리 준비된 부스에 보행자들이 들어가서 춤을 추면 그 영상이 빨간색 신호등에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방식인데, 사람들은 춤추는 신호등을 보고 재미있어 했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 무단횡단자는 줄어들었고, 사고율도 낮출 수 있었다. 게임적 ‘재미’라는 요소만을 더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험 결과 81%의 사람들이 빨간 불에 멈추어 섰다고 한다. 재미는 확실히 인간의 행동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실험 중의 하나이다. 

<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SB_0vRnkeOk >

  위의 다양한 사례로 보아 게임적 발상이 주는 재미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변화하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6월 미국 FDA에서는 아킬리 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 회사에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EndeavorRx 게임을 디지털 치료제로 세계 최초로 승인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게임을 그저 아이들의 놀이로 치부하고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4. 게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게임 하면 ‘중독’ 이란 단어가 연상되는 이유는 게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다. 조류와 포유류도 놀이를 즐긴다. 영장류가 더 잘 놀기 때문에 지구상의 지배적인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우리가 잘 논다는 것은 더 이상적인 진화를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게임이 주는 재미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에서도 재미있는 선생님이 더 잘 가르친다고 느끼고, 학생들이 더 나은 학업성취를 올린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게임적 사고와 게임의 핵심인 재미를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다. 게임이 주는 재미는 인간의 행동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더 효율적인 활용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조선 시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소학(小學)에서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했다. 즉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그 앎이 실현되는 것이다. 앞으로 게임의 재미를 이용하여 우리 사회에 닥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강제보다는 즐겁고 현명한 선택을 통해 더욱 안전한 사회, 보다 재미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간다면 머지않아 세계가 우리를 우러러보는 진정한 문화 선진국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윤형섭

전주대학교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7-2021 : 중국 길림애니메이션대학교 게임대학 교수/학장

2021~ 현재 : 전주대학교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매거진의 이전글 재활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