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데드 : 머리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들어가며
눈길을 끌기 위해 제목을 과장했다. ‘과연 T가 게임으로 펑펑 울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치만 더 이상 따지지 말자. 대단히 슬프거나 감동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클릭하셨을 테니.
어느새 MBTI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직관적으로 성격을 파악하기 좋은 도구기에 많은 사람이 애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성격을 특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때가 많다) MBTI 활용에 소극적이다. MBTI를 가볍게 다루지 못하고 따지고 있는 것부터 이미 빼박 아재일지도...ㅎㅎ
울음이 많은 사람도 있고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앞설 때가 많다. 감정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감정 기복이 적은 편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머리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황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별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머리가 고장 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볼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감정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주로 쓰는 사람이 때로 무심하게 보이는 원인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앞세우다 보니 감정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는데 훈련이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지 않는 질병(공감 장애)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경험했거나 명백히 감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가슴이 발동되는 건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T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변호했다. 내 얘기라서 그렇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먼저 발동하는, 정서적 공감의 훈련이 부족한 T형 인간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게임이 있다. 바로 ‘워킹데드’다.
극한 상황이 극대화하는 감동
워킹데드는 만화를 원작으로 시작하여 동명의 드라마, 게임 모두 큰 인기를 끈 대표적인 좀비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종말물)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만화,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르다. 좀비, 핵폭발, 자연재해 등 세상 멸망에 가까운 큰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인간들의 삶을 다룬다. 그 자체로 흥미로운 상황 설정이기도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를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목숨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에서는 더 이상 법과 공권력을 포함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규칙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나를 보호해 주는 장치가 없는, 정글 속에서의 동물의 삶과 비슷해진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도덕도 체면도 필요 없어진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들은 욕구에 충실하게끔 그리고 충동적으로 움직인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인간성’이 사라진다. 진가는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랑과 우정을 찾기 어려워진 세상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은 희귀하기에 더 소중하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관계 설정
사실 ‘T는 이럴 것이다’라고 싸잡아서 얘기하기 어렵다. 간발의 차이로 T가 된 사람과 극T인 사람은 같은 T이긴 하지만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마 T성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머리를 더 많이 쓰기에 감동에 인색할 것이다. 나도 꽤 T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도 무장해제 시키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어린아이나 동물 같은 순수한 존재다. 그들 앞에서는 극T인 나조차도 이성과 논리를 먼저 들이대지 않게 된다.
워킹데드는 치트키를 썼다. 어린아이가 등장한다. 시즌1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게 되는 주인공은 이름이 Lee인 30대 중반의 남성이다. 우연히 부모를 잃어버린 Clementine이라는 8~9세의 소녀를 만나 부모를 찾을 때까지 같이 다니게 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좀비로 인해 미처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내 한 몸 살아남기도 어려운데 어린아이까지 챙겨야 하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 아니다. 자기 아이가 아니고서야. 그러나 Lee는 Clementine과 동행을 선택한다. 아무리 T여도 어린아이를 버려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전개와 결말이 달라지는 스토리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안전을 위해 누구도 믿지 않는 선택을 할지, 인간성을 지키며 타인을 믿는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게 된다. 평소라면 더 냉정하게 선택할 수도 있지만, Clementine을 생각하면 좀 더 인간을 신뢰하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누구나 흔히 경험해 본, 가족, 친구, 애인 관계라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게 예상되는 전형적인 반응이 있다. 실제로 자기 아이의 생존만 빼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부모가 등장하는데, 짜증이 나지만 이해는 간다. 그런데 Lee와 Clementine의 관계는 특별하다. 가족, 친구, 애인이 아니다. 생존이 위협받는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의 동료이자, 스승과 제자 같다는 생각도 했다. 딸은 아니지만 딸 같기도 한 굉장히 입체적이고 복잡한 관계다. 워킹데드의 이 복잡하고도 생소한 관계 설정이, T가 자기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추가로 모든 대화나 행동 선택에 시간제한이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처음 마주한 상황에서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T조차도 머리가 아닌 감정적, 직관적인 선택을 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T마저도 울게 만드는 장면
* 스포일러 포함 - 워킹데드 시즌1의 결말 부분
Lee와 Clementine이 함께 하는 여정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Lee가 좀비에 물리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Lee는 인간으로 사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Clementine과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플레이어는 워킹데드 서사 속 주인공 Lee로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왔다. 소설이나 드라마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마치 내가 죽는 것 같은 아쉬움과 허무함이 느껴진다. Lee는 좀비로 변해 가면서도 Clementine의 생존을 위해 걱정과 조언을 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일차적으로 울컥했다. Clementine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미안함과 슬픔이 내 몫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제 플레이어는 Clementine을 조작하게 된다. 누구든 가까웠던 사람과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머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상대방은 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10여 년 전 번지점프대 앞에 섰던 일이 떠올랐다. 뛰어야 하지만 스스로는 도저히 발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았던 기분과 비슷했다.
유지를 이어받는다는 말이 있다. Lee가 했던 생각과 행동이 고스란히 플레이어에게 남아 Clementine으로 이어가게 된다. ‘주인공=나’인 게임만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결과적으로 워킹데드 시리즈에서 Lee는 시즌1에 잠시 등장한 주인공이었지만, 이어지는 나머지 모든 시리즈에서 Lee를 기억하며 플레이하게 된다. 이 또한 머리로는 해석하기 힘든 감정의 여운을 만들어 낸다.
머리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희망은 삶의 다른 말이다. 희망의 종류와 크기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한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 속에서도 스스로 삶을 마감했거나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삶을 놓아버리는 이유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어서이다.
Clementine이 Lee와 이별하고 나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한 희망은 무엇일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추측할 뿐이다. Clementine이 갓난아기인 AJ를 맡아 키우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Lee가 떠올랐다. 그가 인간성을 발휘해서 자신을 챙겨주었던 것처럼 자신 또한 아기와 함께하면 생존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 그런데 Lee와 Clementine처럼 이따금 이성과 합리로 해석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하기도 한다. 이 차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해가 안 될 때 즉 머리 쓰는 것을 멈추게 될 때, 오히려 가슴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감상이다.
워킹데드는 눈물이 흐를 정도의 감동을 주는 여운이 큰 게임이다. 나아가서 머리를 우선으로 그리고 많이 쓰는 T가, 가슴이 시켜서 선택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에도 게임 워킹데드를 다룬 영상을 올렸다. (글 보다는 가볍게 다룬다)
https://youtu.be/01SzH8Oqhnw?si=UlEYOiQXdlT3dc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