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나를 잊게 한다. 가족을 챙기고, 쏟아지는 집안일과 끝없는 상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누구나 이를 벗어나기 위해 좋은 의미의 일탈을 꿈꾼다.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회를 찾기도 한다. 동심을 찾아 놀이공원에 가서 마음껏 소리도 질러보고, 누구도 막지 않는 망망대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나도 지난 10년간 타지 생활을 하면서 바다 하나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차를 20분이나 몰고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떠나기는 어렵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밤 걷기'다. 아파트 1층 아래에는 걷기 좋은 공간이 있다. 낮에는 아이들 목소리로 시끌벅적하지만, 밤 10시가 되면 조용해진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집으로 달려가는 일만 없다면 적당히 고요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흐른다. 집안일을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그 길을 걷는다. 지방이 타기 위해서는 40분 이상 걸어야 한다기에 그 시간을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걷기를 마치면 그네에 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쉬어간다. 밤하늘은 낮의 하늘과는 달리 나에게 차분함을 선사하고, 머릿속을 비워준다. 낮 동안 쌓인 피로와 생각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이 시간이 매일 기다려진다. 친구를 만나도, 가족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밤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