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을 품은 날의 자기 회복
예상치 못한 만남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났다.
먼저 도착 한 친구는 이미 아파트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 앞이기도 하고 인사만 하는 사이였지만, 자연스럽게 함께 앉게 되었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는 가볍지 않았다.
누구의 자랑도 아니었지만,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배운 것을 강의로 연결한 이야기,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교육관,
돈과 시간, 체력까지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해 온 삶. 그들의 말은 자랑이 아닌 정보였다.
나는 모든 순간 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내 기준은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아이에게 어떤 기회를 주었나,
내 삶은 왜 이렇게 작은가,
그 순간 나는 '자격지심'이라는 감정의 그림자 속에 갇혀버렸다.
작아지는 마음의 순간들
그들의 말 사이사이에서 나는 자꾸 내 삶을 재보았다.
"나는 뭘 해왔지?"
"나는 왜 이렇게 뒤쳐진 기분이지?"
누군가의 경험이 내 경험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다.
자격지심은 남의 잘남을 향하는 감정이라기보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길을 잃은 것이다.
열등감이나 결핍은 인간에게 중요한 동력이자 자극이다.
하지만 그 자극이 내면의 언어로 바뀌지 못하면
그건 성장의 불씨가 아닌 자멸의 불꽃이 된다.
그날의 나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었다.
내가 나에게 건네던 말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나는 어떤 언어로 나를 설명하며 살아왔을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은 다르니까"
"나는 기회가 없었으니까"
이 말들 속에는 나를 축소시키는 습관이 숨어있었다.
나는 늘 비교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했고, 그 언어는 결국 나의 감정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이 감정을 형성하고,
그 감정이 결국 우리의 행동을 이끈다"
심리학자 수잔 데이비드의 말처럼 언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지 결정짓는다.
마음이 복잡한 오늘, 그럼에도
며칠 내 비가 오더니 하늘은 청량함 그 자체다.
그런 오늘의 하늘을 두고도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그날의 대화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빛나는 이야기가 내 안의 그림자를 비출 때,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다행히도, 그 흔들림 속에서 나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비교가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나를 다시 세울 수도 있다.
그건 내가 그 감정에 어떤 말을 붙이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오늘 이 글을 빌려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꾸준히 살려온 사람이야"
내가 해 온 모든 것들을 성취로 부르지 못했을 뿐,
뜨거운 동사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스스로를 인정할 줄 아는 힘
우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인정하지 않을 때 무너지게 된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문장 하나를 삼아보면 어떨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 나답게 살았다"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을 때 나를 깎는 감정이 아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삶은 언제나 비교 속에 있기 마련이다.
비교라는 인간의 본능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방향을 바꿔보자.
"나는 아직 부족해"대신 "나는 배우고 있다"
"나는 보잘것없어"대신 "나는 성장하고 있다"라고.
타인에게도 건네는 인정을, 스스로에게 인색하게 굴지 말자.
방향이 바귀면 우리 삶의 무게도 달라진다.
오늘 이 글이 타인과의 비교로 작아진 또 다른 나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렇게 작아짐을 지나며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