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수록 주의해야 할 '안다는 착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말 점심 외식을 약속했다.
평범한 하루였지만,
가족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키기는 언제나 숙제였다.
그런 상황에 둘째의 메뉴 제안은 쌀쌀해진 날씨에 딱이었다.
칼국수를 원한 둘째,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를 원한 첫째.
나는 여러 음식점 중에서 두 곳을 골랐고 한참을 망설였다.
첫 번째 가게는 지인 모임 때 나만 가 본 곳인데,
육개장 칼국수가 있고 집에서도 가까웠다.
다만 바지락 칼국수는 없었다.
두 번째 가게는 조금 떨어진 곳에 처음 가보는 가게지만
칼국수 메뉴에 충실한 평이 있는 가게였다.
아이들의 기대와 남편의 취향,
나의 호기심 사이에서 고민하다 보니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말했다.
"바지락 칼국수로만 시키자"
그 말은 단순했지만 묘하게 마음이 내려앉았다.
우선 남편과 둘째는 바지락을 먹지 않는다.
나는 단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늘 "하고 싶은 대로 해"에는 언제나 단정이 담겨 있었다.
"결정은 네가 해, 대신 결과도 네 몫이야"
그의 표정은 "대수롭지 않은 것을 뭘 그리 고민이냐"는 무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다양한 메뉴가 있다며 고민이 된다"라고 말했고,
남편은 "그럼 출발해서 차 안에서 정하자"는 말로 결정을 미뤘다.
결국 두 번째 가게로 향했고 메뉴는 여전히 미정이었다.
차 안에서 내가 다시 얘기를 꺼내자
남편은 "바지락으로 통일하자"라고 말했다.
"아까 그래서 다시 정하자고 했잖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차피 내 결정은 싫다고 하면서 왜 묻는 거야?"
나도 참지 못하고, 짜증이 묻은 목소리가 나왔다.
"아니, 아까 차에서 정하기로 했는데 같은 말을 하잖아"
그러자 남편은 단호히 말했다.
"그런 적 없는데?"
순간 명치가 턱 막혔다.
정말 그랬는지 녹음이라도 되어 있다면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단지 새로운 가게에 가는 김에
취향에 맞는 여러 음식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미 오해가 깊어져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있기에 큰 소리로 다투진 않았다.
허기지던 배는 조용해졌고, 대신 속만 더부룩해졌다.
가는 내내 심호흡을 하고 찬바람을 쐬며 겨우 진정이 되찾았다.
결국 메뉴는 아이들이 바지락 칼국수를,
남편과 나는 함께 먹을 얼큰 쌀국수, 사이드로 파전, 만두를 시켰다.
다행히 맛있는 칼국수 가게였다.
아이들은 보리밥까지 든든하게 먹었고,
우리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짧게 사과했지만
미묘한 냉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단순한 서운함이라기보다는
"10년을 넘게 살아도 왜 이렇게 어긋날까"
그 질문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살다 보면, 서로의 취향도, 습관도,
미묘한 표정변화까지 모두 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그 익숙함에 속아
우리는 종종 가장 위험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건 말 안 해도 알겠지"
"그 정도는 눈치로 알아야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통할 거라 믿는 순간,
대화의 문은 서서히 닫힌다.
부부 사이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한쪽은 배려의 뜻으로 한 말을
다른 쪽에서는 무관심으로 받아들인다거나
한쪽은 동의를 기대한 말을
다른 쪽에서는 강요로 듣는다.
각자의 말에는 분명 진심이 있다.
그러나 그 진심은 언제나 상대의 해석이라는 문턱을 지나야 한다.
그 문턱이 조금만 어긋나도 우리는 쉽게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남편은 아마도 나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렵다면 이후 선택은 모두 자기가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미처 읽지 못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결정을 미룬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관점과 언어가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해는 더 쉽게 쌓인다.
남에게는 길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설명을 생략한다.
그 생략이 쌓이면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 멀어진다.
진짜 친밀함은 '안다'는 확신이 아니라
'모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정말 네 마음에 괜찮아?"
"나는 이렇게 느껴졌어"
이런 짧은 문장들이
사랑과 이해를 키워주는 이음씨가 되어준다.
칼국수는 따뜻했다.
하지만 내가 남은 건 소통의 맛과 온도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는 줄지만,
그만큼 마음의 해석이 많아짐을 경계해야겠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말해봐야겠다.
"나는 이 메뉴가 먹고 싶어, 당신은 무슨 메뉴가 좋아?"
단순한 주문이 아닌 서로를 배우는 연습이 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짜 사랑은 말로 표현할 때 자란다.
사랑은 추측이 아니라 대화로 완성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