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내는 꾸준함의 철학
"엄마는 꿈이 뭐야?"
아이가 어느 날 불쑥 내게 물었다.
고작 유치원생의 그 짧은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꿈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 엄마는 너희랑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지.
그리고 글도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사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너무 많네"
그러자 꼬맹이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글쓰기는 그림책을 많이 봐야 돼.
그리고 되고 싶은 건 다 될 수 있어"
그 말에 가슴이 묘하게 울렸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 될 수 있다"는 말이 이렇게 단단하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이제는 아이들이 큰 요즘,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잊고 있던 그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덩달아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았던
내 과거의 시간들이 불현듯 밀려왔다.
결과가 따르지 않으면 스스로를 '안 되는 사람'이라 단정 지었고,
시작해도 오래가지 못하면 "역시 난 안되지"라고 단념했다.
핸드폰 메모에도, 각 사이트에도
시작만 가득한 문장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내 글감이자 열정의 흔적이라 생각했던 시기도 있지만,
결국 포기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꿈을 찾지도 이루지도 못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찬란한 빛을 잃어버린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아이는 달랐다.
아이에게 세상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했다.
"왜 안돼?"라는 말보다 "왜 못해?"가 먼저였다.
실패조차 또 다른 시도에 불과했다.
끝이라는 단어는 아직 그들의 사전에 없었다.
!!!
그때 깨달았다.
꿈은 결과가 아니라 방향이었다는 것을.
어딘가로 향하려는 마음이 사라질 때,
비로소 꿈이라는 빛이 꺼진다는 것.
그 대화는 내 안에서 오래 숙성되어
이제는 브런치의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은 잘 쓰는 것보다
그저 계속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의 꿈이라는 불씨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제야 알겠다.
꿈은 명사가 아니다.
꿈은 내가 매일 선택하는 동사에 있다.
'쓰다, 배우다, 살아내다.'
이 단어들이 내 하루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좋다.
단지, 이 하루를 마음으로 살아내는 일,
그 속에 꿈은 더 큰 빛으로 자라난다.
어쩌면 꿈이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끝이 아니라, 계속 써 내려가는 과정.
꿈보다는 현실이 중요해져 버린 우리는
대출, 아이, 회사,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현생의 삶에서
'나의 꿈'을 조금씩 저만치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의 꿈을 지지하는 가장 큰 힘은
내가 여전히 나의 꿈을 살아내는 모습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글을 쓰고, 배우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이
아이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었다.
"되고 싶은 건 다 될 수 있어"
아이의 그 말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주문이었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어떤 동사를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
성과가 없어도, 실패가 반복되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여전히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매일 선택한 동사의 합이
내 꿈으로 빛나는 순간, 삶은 다시 뜨거워진다.
아이의 꿈 앞에서 현실을 조언했던 나를 반성하며,
이제는 그 말을 돌려줄 차례다.
한때 나를 일으킨 그 한마디를
언젠가 다시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
"되고 싶은 건, 다 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