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되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나만 몰랐던 끝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그만하거나, 다른 데 갈 때까지 조금 기다려줄까?"
그 말은 갑작스러웠도, 나는 태연한 척해야 했다.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나를 불렀고,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응했다.
처음엔 작고 단순한 일이었고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점점 더 일이 늘어났고 모든 것이 내 일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을 잘 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책임도 결과도 모두 내 몫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은 어떠했나?
이제 필요 없으니 나만 내려놓으면 된다는 식의 말 한마디였다.
그 말은 그들에게 '정리'였지만, 내게는 '폐기'였다.
그렇게 나는 소모되고 끝이 났다.
그 상황에서 가장 화가 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끝까지 좋게 마무리하려 애쓰는 모습.
그만큼 진심이었고 나만의 오해라고 믿고 싶었다.
누구도 나를 책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끝까지 책임지려 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이렇게 되는 걸까.
거절하지 못하는 나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 요청하면 거절하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이상을 하면서 선을 긋지 못했다.
왜냐고?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그래서 애썼고 더 잘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그럴수록 더 상처받았다.
그러면서도 매번,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네빌 고다드의 문장을 보았다.
"반응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이상할 만큼, 이 문장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거절이 두려워 긍정했고, 실망시킬까 항상 과하게 도왔으며,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하려 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 비슷한 상황을 다시 불러왔다.
나의 반응이 바뀌지 않으니 현실도 바뀌지 않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구분해야 할 3가지
그 이후 나는 나의 패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가지를 구분하는 연습을 한다.
1. 도움과 책임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그 일의 책임을 떠안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도움은 순간의 호의지만, 책임은 지속적인 계약이다.
그 차이를 몰랐기에 더욱 쉽게 휘둘렸고, 끝없이 소진되었다.
2. 요청받은 역할은 계속되는 약속이 아니다.
내가 처음에 하겠다는 것에서 시작했을지언정,
끝까지 내가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에게 그 역할이 필요했다면 그에 맞는 공식적 계약과 존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제대로 요구하지 못했다.
내가 해 온 것 자체가 곧 '내 일'이 돼버렸고 책임으로 쏠렸다.
3.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 모든 상황을 반복해 왔다.
진짜 좋은 사람은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
타인과 자신 사이에 건강한 선을 그을 줄 아는 것이 진짜 좋은 사람이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물론 이 모든 게 여전히 쉽지 않다.
선을 긋는다는 것이 때로 불편하고, 오해를 낳기도 하기에.
때로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내가 더 이상 소모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나와 같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지도.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나는 이 일의 책임자인가, 아니면 순간 필요한 사람인가?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것과 선을 긋고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부탁을 받으면 범위와 조건을 확인한다.
때에 따라 정중히 거절하기도 한다.
그렇게 내 시간, 감정, 에너지를 들여다본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 변화가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으니 객관적인 시선으로.
불필요한 소모 없이 역할과 감정 사이의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인정이 없이도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지킬 수 있는 만큼을 선택해서 돕는 사람이다.
이렇게 나에 대해 다시 정의하는 중이다.
나의 반응을 바꾸니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모되던 삶에서 회복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