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에 관하여
유난이라는 말에 흔들리던 날들
"그냥 좀 대충 살아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다고 안 죽어~ 예민하다 예민해"
소시지 하나, 기름 한 병, 첨가물 확인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조금 까다로웠다.
'건강한 선택'은 단지 음식에 관한 일이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였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신혼 초, 나는 코코넛 오일로 달걀 프라이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정말 힘들어했다. 굳이 그래야 하냐고.
카놀라유나 콩기름도 멀쩡하고
남들 다 먹는 건데 굳이 비싸고 역한 이 기름을 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도 흔들렸다.
10년도 전의 일이니 지금보다 구하기도 힘들었다.
혹시 내가 헛된 것을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별나게 구는 걸까.
기능성의학, 후성유전학, 장뇌축, BDNF, 미토콘드리아 등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개념들이 당시엔 낯설고 조심스러운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상담해야 했기에 시작한 공부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배움으로 확장되었다.
민간 자격증이긴 했지만, 다른 전공자들보다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그리고 그 지식은 내 생활에 하나씩 반영되기 시작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렇다고 모두에게 내 기준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유기농을 먹이고, 전자레인지를 쓰지 않았던 아이 이유식을 먹일 시기,
시댁에 방문하거나 함께 여행을 가면서 시댁식구들도 내 방식을 알아갔다.
그렇다고 내가 시댁 주방에서 간섭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을 존중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인정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시댁에서도 내 방식을 이해해 주셨고,
'유난스러운 며느리'가 아닌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으로 대해주셨다.
물론 지금 나도 팬데믹을 겪으며 꽤나 느슨해졌다.
하지만 이 '느슨함'은 포기가 아니다.
관계를 바꾸는 대화
얼마 전, 큰 맘먹고 고급 올리브오일을 사고 싶었다.
그동안은 어쩌다 내가 한 병을 구매하곤 했지만,
잔고가 없는 통장을 보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바로 주문해 주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10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강압이나 설득이 아닌 시간이 바꿔놓은 작은 믿음이었다.
그가 무시한 게 아니라 서로가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건강한 음식만을 좋아할 리 없다.
하지만 달달한 케이크를 좋아하면서도
'적당히'즐기며 먹고 포크를 내려놓을 줄 안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값진 존중과 선택의 힘이었다.
지식은 삶이 되고 삶은 관계로 이어진다
건강은 단지 수치나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해서는 지식보다 관계가 먼저다.
나 혼자 건강해지는 삶이 아니라, 함께 건강할 수 있는 삶.
그래서 나도 무조건적인 설득이 아니라 타협안을 제시한다.
어릴 적 '바람과 해'이야기를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람처럼 강제로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하지 않고,
햇살처럼 따뜻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훨씬 어렵지만, 오래 남는다.
유난이라도 괜찮다
예전에는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유난이 우리 가족을 좀 더 건강하게 바꿨고,
우리 삶의 기준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바탕엔 존중과 신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투닥거린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기준으로 고를지,
가족일지라도 의견이 엇갈리곤 한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갈등'이 아니다
우리 가족에게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대화의 주제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말에 자꾸 지게 되는지?
나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고 느끼는지?
나의 기준이 '유난'으로 받아들여질까 두려운지?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유난도 삶의 방식이다"
다만, 함께 조율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더 나은 하루를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것으로 충분한 따뜻한 식탁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