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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Aug 22. 2022

질병은 사는 곳에 따라 다르게 닿는다.

조재

8월 중순, 분량 조절 실패로 아직도 퀴퍼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매년 퀴어 동아리를 통해 사람들과 퀴어문화축제에 갔다는 이야기다. 퀴퍼 이야기는 언젠가 또 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 어색한 마무리를 하고,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코로나에 걸렸다. 주변에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나도 걸려버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음성, 그다음 날도 음성, 이게 코로나가 아닐 수 있나 싶을 때쯤 양성 판정을 받았다. 회사 점심시간 때 검사받아서 빠르게 확진 사실을 알리고 조퇴했다. 계속 증상이 나타나서 코로나겠거니 짐작했지만, 정말 확진 판정을 받으니 얼떨떨했다. 일주일간 자가격리 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 살아서 집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 격리될 일은 없었다. 아파 죽겠는데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점은 꽤 곤욕스러웠지만….


몇 달 전까지는 확진자들에게 식료품이 보급되었다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장을 봐야 했다. 일주일간 배달음식만 먹고살 순 없는 노릇이다. 이마트몰 어플을 처음 깔아봤고, ‘쓱 배송’이란 걸 처음 써봤다. 마켓컬리니 뭐니 당일 배송 서비스(심지어 새벽 배송)가 잘 보급된 시대에 처음으로 인터넷 장보기란 걸 해본 것이다. 당일 배송은 마감되어 다음 날 오전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동 지역에 산다. 휴대폰을 익숙하게 다룰 줄 알고,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다. 동 지역에 산다는 것과 휴대폰을 잘 다룰 줄 안다는 두 가지 조건 덕에 혼자 격리당해도 굶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면 지역에 있고 거기 회사 구성원 하나가 살고 있다. 회사에 사는 회사원이라니 끔찍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아니고, 옆 건물에 산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곳은 배달음식조차 오지 않고 당연히 마트 배송도 오지 않는다. 그럼 거기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차가 있어야만 올 수 있는 이곳에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무엇 무엇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야지만 살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이런 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은 세고 셌다. 대체로 어르신들이고, 외곽에 사니 코로나에 걸릴 확률이 낮긴 하지만 그래도. 면 지역에 혼자 사는 어르신이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오지마을에 택배가 어떻게 가는지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비용을 더 지불하면 택배가 가겠지 싶지만, 하나 배송하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야 하니 택배 회사로선 수익이 남지 않는다. 그렇다. 오지마을에는 택배가 가지 않는다. 이걸 알게 된 건 오지마을에 택배를 대신 배송해주는 지자체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나간 덕이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택배를 받아 오지마을 이장님 댁에 한꺼번에 물건을 보내드리면 이장님이 택배 수신인에게 따로 연락하는 시스템이었다. 보낼 물건은 한 번에 받아 다시 행정복지센터로 간다. 생각보다 오지마을에 혼자 사는 어르신이 많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이런 곳에서 살기 위해선 마을공동체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재난이 된 질병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닿지 않는다. 시내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떨어져서 사는 사람일수록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서야 사적인 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다. 노인이 된 미래를 상상할 때 시골에서 자랐던 내 미래 배경은 늘 시골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상 속 배경이 바뀌었다. 나는 절대 그곳에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혼자 사는 퀴어 여성이 마을공동체에 속해서 살기란 쉽지 않고, 재난이 닥쳤을 때 누구보다 취약해질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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