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청년이 지방을 떠난다. 왜? 미래가 없으니까. 지방에 남으면 ‘지방 총각들’이 당연히 남은 여성은 자기 것인 양 건드려대고 취직하려고 보면 일자리는 없고 막상 취직해보면 회사에 여성은 자기밖에 없는 데다가 최저시급도 줄까 말까 하고 성희롱은 빈번한데 사생활이라곤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경력도 연륜도 후려쳐지고 더 나이 어린 여성을 더 싼 값에 부려 먹기 위해 해고한다.
이렇듯 인프라도, 일자리도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큰 격차를 보이는데 이를 감내한 채 ‘지방 청년 여성’으로 남는 이유란 아마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또래 친구들이 다 근처에 살아서 함께 남을 수도 있고, 일자리를 잡아서 이직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연인과 멀어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거나 말거나,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살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니만큼 각자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도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지방 분권을 위해 정책 제안을 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지방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해 현장에서 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고양이 그림을 잔뜩 그리면서 살고 싶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합법적 대마 농사가 꿈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동성 연인과 결혼하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1인 가구로서 온전하게 독립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지방 청년 여성 모두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이 ‘지방 청년 여성들’의 목표는 언뜻 보면 아주 허황해 보인다. 지방이 물가가 싸다는 것도 옛말이다. 빈손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기는 쉽지 않고 자기 집 마련이라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지방의 여성 일자리는 극악한 수준이다. 그에 더해 대부분의 지방은 현재 인구수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인구감소지역을 보면 국내 89개 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전남과 경북이 각 16개로 가장 높고 대구와 인천, 경기가 각 2개로 제일 낮다. 관심 지역 18개를 포함하면 전국 226개 시군구 중 반절에 가까운 107개 지역이 인구 소멸 위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렇게 줄어드는 인구에 더해 1980~90년대 국가적으로 이루어진 여아 살해(낙태) 덕에 성비 불균형은 최악이다. 성비와 인구수라는 난제를 힘겹게 뚫고 누구라도 만나볼라치면 가부장제의 선봉장이거나, 성범죄자이거나, 인종차별주의자거나, 성소수자 혐오자거나 폭력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두 개 이상을 갖추고 있거나 무슨 훈장인 줄 아는지 전부 다 가지기도 한다. 이러니 지방에서 건강한 연애 후에 결혼이라도 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결혼 왜 안 하냐고? 많은 여성이 여러 이유를 둘러대지면 사실 원인은 하나 또는 둘이다. 지방에는 인프라가 없다. 그리고 남자도 없다. 인프라 안에 남자가 포함되느냐 아니냐로 원인의 개수가 갈릴 뿐이다.
‘지방 청년 여성’의 장래는 어쩌면 밝지 않을 수 있다. 이들 대다수가 공무원이거나 중소기업 노동자다. 이들은 어쩌면 신분 상승까지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쇠락해가는 지역이 더디게 문을 닫기를, 지방에 남아 살기를 결정했으니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의지를 다잡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건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지방에서 살아남기라는 무거운 책임까지 떠안게 된 삶은 어쩌면 고된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지방 청년 여성은 삶을 꿈꾼다. 자기 발로, 자전거로, 스쿠터나 오토바이로 혹은 차를 타고 귀가해 내 집(월세나 전세일 수 있다)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맞이할 책 냄새 혹은 강아지나 고양이(햄스터나 뱀, 앵무일 수도 있다) 혹은 동성 연인 혹은 도착해있을 반려가전 택배를 떠올리면서.
* 지난 9월 천 모 씨가 조선일보에 쓴 칼럼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를 패러디해 썼습니다. 패러디하느라 제가 그 글의 조회수를 하나 올려버렸으니 여러분은 찾아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처음에는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지방 청년 여성들’도 가정을 꿈꾼다>로 하려고 했으나 가정의 뜻이 ‘부부를 중심으로 그 부모나 자녀를 포함한 집단과 그들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인 집을 포함한 생활 공동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 걸 보고 수정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누군가는 자녀 없는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므로 차별적인 단어 선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