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과 예술…

왜 예술의 시대가 변해도 그 근간이 변하지 않는 걸까

by gamjavas aka 감자
녹천을 미디 기보에 맞게 연주하는 키보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 이 있다.

많은 경우 현재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그게 일반화/대중화되어 기회비용이 저렴해질 때쯤 다른 분야에도 전이가 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고,
우리는 이걸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른다.

증기기관이 그랬고, 말을 자동차가 대체했으며, 전문가의 능력을 가진 기계가 대체하는 영역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사회문제화되는 기술 발달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최근 전자 키보드를 하나 샀다.
할인 후 가격이 참 착하기도 했고, 집의 업라이트 피아노는 이미 옷걸이로 변신해 있어서, 치우기 번거롭기도 했던 이유도 있지만…
이 녀석은 굉장히 신박한 기능을 제공한다.

레슨 기능…
물론 앱을 연동해 레슨 하는 전자 피아노도 새로운 건 아니다.
근데 이 녀석은 별거 아닌 것 같은 기믹을 하나 추가해서 굉장히 놀라운 사용성의 변화를 준다.

바로 모든 건반에 빨간 불빛이 나는 LED를 넣은 것.

다소 유치하고, 싸 보이기도, 방정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건반 하나만 놓고 레슨을 하기엔 이만한 게 없다.

선택한 곡의 누를 건반을 가이드해 주는 것은 기본,
구간을 정하면 마디 단위로 반복 학습하도록 해 주고,
어느 정도 외웠으면, 암기모드를 켜면 틀린 것만 불빛과 소리로 지적해 준다.

게다가 얼마나 악보대로 충실하게 쳤는지 점수도 매겨준다.

개인적으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기술적으로 어렵지도, 돈이 많이 들지도 않지만, 효용 면에서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굉장히 큰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축적된 제조 기술 덕에 굉장히 기능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점이 좋다.


그런데 키보드에 내장된 클래식 곡의 연주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무미건조하지?’
물론 이건 예전에 미디 음악을 하던 때나, 노래방에서 반주를 들을 때도 느꼈던,
기계적으로 악보에 맞게 정확히 연주되는 음들은 건조하기 짝이 없던 경험과 그리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더 좋게 들리게 할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연주자마다의 개성과, 그로 인해 소위 ‘비루투오소’가 생기는,
그래서 같은 곡도 연주자마다 다른 느낌을 주고, 감동의 깊이가 다른 것은 이미 상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게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애초에 악보가 가진 정보량이 매우 적은 게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악보가 표현하는 음의 길이나 템포는 몇 단계 되지 않고, 그 외 악상 기호들을 다 가져와도 실제 음악에서 표현되는 변화폭에 비해 매우 성글다.

만약 지금의 전자 제어기술을 아주 조금만 적용해도, 1초를 수백만 개로 쪼개서 정확한 발성 시간과 템포를 적용하고, 타건 압력을 1024 단계로 나눈 정도를
이러한 정밀한 시간 스케일 단위로 정확히 기록하고 재연한다면 미묘한 느낌도 재현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을 적용해도 비용도 아주 저렴할 텐데 이런 게 바뀌지 않는다.

일단 악보 체계는 예술의 영역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컴퓨터 음악 규격인 미디 조차도 그냥 악보에 충실할 뿐, 인간이 구별해 내기 힘든 수준의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록할 수 있는 높은 분해능(resolution)을 기술적으로 아주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는다.

이는 시각적인 분야에서 컴퓨터가 개입하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표현이 가능해진 것 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발달해 컴퓨터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작곡이 훌륭한 수준에 와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단지 도구가 좋아졌다고 해서 인간의 지각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까지는 정형화되기 힘든 부분이 있어 그렇다는 생각은 든다.

예전엔 기술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 그러나 지금 기술로는 쉽게 가능해졌지만 안 하는 것들…
각 분야마다 개선할 점들을 찾아보면 꽤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뭘까?

관성 때문인지, 기득권의 문제인지, 일자리 문제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래서 공대생인가 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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