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May 20. 2023

돌로미티는 제발 가보세요 (1)

콩감자네 이탈리아 여행기 1-1편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프랑스의 작가 Gustave Flaubert가 한 말이다.


내게 그런 깨달음의 여행이 언제였나 묻는다면, 지난 10월 이탈리아 여행 중 ‘돌로미티’라는 산맥을 마주했을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돌로미티?


베네치아의 바로 옆 동네 메스트레, 이른 아침부터 메스트레역 앞은 시끌벅적했다. 세계 각지에서 베네치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그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단체 투어에 참여하려는 것인지 역전은 세계인으로 뒤엉켜 있었다.


그곳엔 감자와 콩자씨도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조금 색다른 투어로 향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자리한 알프스의 한 줄기, 돌로미티 산맥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알프스라면 모두 스위스를 떠올리겠지만, 이탈리아에도 알프스의 1/3씩이나 되는 산맥들이 자리해 있다. 일정 상 스위스는 방문하지 못했던 터라 이렇게라도 알프스를 즐기려 한 우리였다.


하지만 유럽이 처음이었던 우리에게 돌로미티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던 것 아닌가. 유튜버 알베르토 몬디 형님께서 돌로미티는 꼭 가보라는 말씀에, 여러 교통편을 수소문하여 결국! 가이드님과 동행하는 소그룹 차량 투어에 함께 하게 되었다.


사진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투어 시간에 늦었거든요.


보시다시피 이탈리아에서도 우리에겐 코리안 타임이 필요했나 보다. 그래도 마음은 앞섰기에 최선을 다해 달려갔고, 도착해 보니 우리가 1등이었다. 우리 한국의 온정을 먼 땅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투어는 가이드님과 더불어 한 커플, 우리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서 진행하게 되었다. 소수 인원 투어였기에 가이드님의 개인차를 타고 이동해도 충분했다.

돌로미티로 향하는 교통편은 차량 말고도 몇 가지 있지만, 보통 차량을 렌트해 가는 것을 추천했다. 베네치아에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가까웠는데, 창문 너머 보이는 이색적인 풍경 덕에 그 두 시간 마저도 짧게 느껴질 수 있었다.


흔한 알프스 동네 뷰


돌로미티로 향하는 차에서는 가이드님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쉽게 알 수 없었던 여행 QnA가 쏟아졌다. 아플 때 처방받으면 좋을 이탈리아 약부터 나폴리의 마피아 집단, 이탈리아 사람들의 휴양 등 끝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먼 타지에서의 불안함과 고민을, 편안하게 공유하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소그룹 투어의 장점이자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가이드님께서는 고속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곳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쏟아내 주셨다. 송구스럽지만 투어를 다녀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사실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것이 몇 가지 있긴 한데, 이 돌로미티라는 곳의 하얀 산들은 만년설과 같은 눈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이 아닌 백운암이라는 석회질의 바위였기에, 융프라우와 같은 만년설을 기대했다면 돌로미티 보다는 스위스에 가는 편이 나을 것이라며 말씀해 주셨다.


백운암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신 것도 잠시, 나는 조용히 콩자씨에게 백운암을 보며 10월에 눈이 쌓여있다면서 좋아했다. 어떻게 또 내 말을 들으셨는지, 재차 친절히 백운암이라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네 돌로미티는 정말 백운암입니다.

기억하세요 백운암입니다 배구남!




돌로미티!


가는 길목, 휴게소에 들러 커피 타임을 가졌다. 이탈리아는 작은 구멍가게도 엄청난 고가의 커피 머신을 사용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평범해 보였던 휴게소의 카푸치노가 얼마나 맛있게 느껴졌나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좋은 배경에 그런 설명을 듣고 먹는다면 어떤 커피라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원효대사의 해골물과 같은 것일까 생각도 들지만. 아니다 정말 맛있었다.


꼴깍


소박하게 이탈리아의 휴게소를 경험해 보고 처음 도착한 곳은.


Lagazuoi


돌로미티 동부에 있는 한 산의 이름이다. 그곳에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산악자전거를 타며 오르는 분도 보였고, 두 발로 트래킹 하며 오르는 분도 꽤나 보였다. 그중 우리는 놀랍게도(?) 자전거도 두 발도 아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하늘에 보이는 저 줄들. 맞습니다 우리의 자전거이자 두 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갈수록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윈도우 배경화면이나 어렴풋이 잡지 같은 곳에서나 본 것 같은 광경이 이렇게나 가까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한국에서 봐온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커다란 돌덩이들이 땅에 우직하게 박혀있어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날씨가 좋아 하얀 산들이 더 눈에 띄었고, 그 덕에 고요하면서도 강한 기운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쿠궁


압도당해버렸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꼬꼬마 단신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과분할 만큼 장엄하고 광활하게 느껴졌다. 그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은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나는 얼마나 겸손해야 할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대자연 앞에서는 그저 흘러가는 사사로운 일들이지 않을까.


우러러만 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은 마음을 놓아 내려다봐도 될 텐데 말이다. 돌로미티가 내게 여유와 겸손을 가르쳐 주려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나 좋은 곳인데, 우리만 보고 온 것이 참 아쉽기만 했다. 언젠가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워진다면(?), 미니버스를 렌트해 우리 가족들과 콩자네 가족들 모두 모시고 가장 먼저 돌로미티부터 꼭 다녀올 것이다.


이제부터 부자가 꿈입니다. 말리지 마세요.


멍 때리며 경치를 보기 바빴지만,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맞은편 산 중간중간에 굉장히 인위적으로 뚫어놓은 듯한 규칙적인 구멍들이 보였다. 가이드님께 여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제1 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접전지였고, 구멍들은 대포를 설치하기 위해 파둔 곳이었다.


한 없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이, 아름다운 경관의 운치를 더럽힌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좀 더 걸어가 보니 그 굴에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참 묘했다. 그 어색한 구멍으로 내다본 맞은편 산들도 , 정말이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아무 기척 없이 우직하게 서서, 철없는 우리를 용서하고 있는 듯했다.



정상 부근에 가니 참전자들을 기리기 위한 작은 십자가가 있었다. 그 주위로는 돌로미티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 삼아, 십자가와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많았고 나와 콩자씨 또한 기념사진을 멋지게 남길 수 있었다.


“원 투 쓰리 쓰마일~~” 콩자씨의 깜찍한 구령에 모두 찐웃음이 터졌다


여담이지만 둘이서 유럽 여행을 가게 되니 함께 커플 사진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돌로미티에서 만큼은 소그룹 투어로 함께 오신 분들께 사진을 부탁할 수 있었고, 끝내주는 돌로미티를 배경으로 여러 인생샷을 남길 수 있었다.


소그룹 투어의 장점입니다




운 좋게 생긴 시간을 쪼개,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 콩자씨에게도 나에게도, 처음 가게 될 유럽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정을 계획했다.


베네치아에 3일을 머무는 일정 속, 돌로미티 투어로 하루를 할애하기란 꽤 고민되는 일이었다. 여러 경우의 수로 짧은 시간을 조율해 보고 투어 상품도 여럿 비교해 가며 결정하게 된, 그런 고민 덩어리 돌로미티 투어였던 것이다.


도심을 구석구석 다니는 것도 유럽을 느끼기에 충분히 좋았지만, 돌로미티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유럽 여행을 벗어난 새로운 감동을 주는 곳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 중이거나 돌로미티를 생각 중인 분들께서 이 글을 접하게 된다면, 주저 없이 일정에 돌로미티를 넣길 조심스럽지 않게 권해본다.


자연 앞에 그저 무지한 우리이기에 돌로미티를 믿고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돌로미티는 우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여전히 우뚝 서 있을 테니 말이다.


돌로미티 2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너 또 다이어트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