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 거슬러버리기
내가 놀러 가는 날에만 폭우가 쏟아지고
고민하다 찍은 정답은 꼭 아깝게 오답이다.
늦잠 자고 허겁지겁 준비하니 빨간 날,
찾는 물건은 꼭 마지막 장소에서 발견된다.
아침 출근길이 늘 문제다.
내 차가 서 있는 줄은 항상 막힌다. 가까스로 다른 줄에 들어가면 뒤에 있던 차가 유유히 내 옆을 지나고 있다. 지하철이라고 뭐가 다를까, 좀 시간이 빠듯한 날에는 꼭 간발의 차로 지하철을 떠나보내곤 한다.
출근길만 문제일까, 출근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 아프게도 나는 모든 내기의 주인공이다. 가위 바위 보부터 족구, 알까기, 신문지 째기 뭐 내기라는 내기는 내가 모두 꼴찌를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팀이 화목해졌지만 말이다.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경우”
이를 이 세상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로 했나 보다.
감자의 생생 머피의 법칙 탐방기
아주 아주 아주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감염 방지 차 붕대를 똘똘 말았지만 다친 부위는 사실 정말 작다. 회사에 출근해 화상을 입기까지, 머피의 법칙 탐방기는 길고도 길었다.
그날은 출근 전 아침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내 출근길은 자차를 타는 날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로 나뉘는데, 늦잠을 거하게 취한 덕에 그날은 자차를 이용하기로 했었다.
계기등에 노란색 타이어 공기압 주의 센서가 올라왔다. 늘 그래왔듯 금방 없어지겠지 생각하며 멈춰 세우지 않았다. 그 와중에 물론 내가 주행 중인 차선은 가장 느린 차선이었고 계기등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소방관인데 찝찝하게 갈 순 없는 노릇, 차를 멈춰 세우고 펑크가 나진 않았나 꼼꼼히 바퀴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문제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동을 껐다 켜보니 노란 계기등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였다.
다시 출발하려던 찰나.. 시내버스가 우회전을 하려다 기사님께서 너무 크게 회전 반경을 잡으셨는지 다가오는 승용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버렸다. 네거리 전체가 마비되었고, 방금 시동을 걸어 출발한 나는 버스 엉덩이만 십 분간 대면해야 했다.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덩어리째 일진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오전 내내 잠깐 밖에 있었단 이유로 더위를 먹은 듯이 머리가 띵했고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어지러움을 느낀 것도 잠시, 도심 외곽 어느 창고에서 화재가 났다. 부리나케 출동해 도착해 보니 옆 창고로 불이 조금씩 옮겨 붙고 있었다. 곧장 수관을 전개해 화재진압에 나섰지만, 머피가 지켜봤는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소방차의 수압이 평소와 달리 정말 약해 물이 시원찮게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화재가 덜 나주는 것은 아니기에, 약한 수압을 보완하고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화재를 진압했다. 당시엔 조금 뜨거운 정도였지만 장갑을 벗어보니 이게 웬걸, 나도 모르게 화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머피의 법칙 거스르기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으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나 가만 생각해 보니 참 오늘 하루 안 풀렸구나 싶었다. 늦잠부터 타이어, 버스 기사님과 띵한 머리, 화상. 놀랍게도 하루 만에 겪은 일들이다. 더 놀라운 것은 모두의 걱정을 뚫고 출동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다름 아닌 체력단련 족구였다는 것이다. 머피고 뭐고 노는 게 제일 좋을 때인 감자씨에겐 머피도 기가 찼을 것이다.
화상 덕에 손 쓰는 일은 모두 힘들어졌다. 감염 방지를 위한 붕대는 헬스장에 가기 망설여지게 만들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차는 바람에 쉽게 찝찝해지곤 했다. 씻기는 또 얼마나 불편한지, 출동할 땐 또 얼마나 불편한지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쏘냐, 바깥으로 향하려 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놀러 다녔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러 느낌 있게 커피도 마셔주고 일요일을 맞아 교회도 다녀왔다. 황사를 견디며 유채꽃구경도 다녀오고 맛집들도 찾아다녔다. 어째 화상 당하기 전보다 훨씬 더 부지런히 쏘다니고 있었다.
헬스와 운동을 못하니 남는 시간이 많아져 오히려 놀 시간은 더 많아졌다. 그 시간 덕에 콩자씨와 함께할 시간이 늘어났고 못다 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한결 많아진 시간 덕분에 콩자씨의 고민을 듣고 도와줄 수도 있었다. 머피가 마냥 미운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도 머피의 법칙인가 찾아보니, 이건 또 샐리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머피든 샐리든 피터든 토마스든 에디슨이든, 내 삶을 규정시켜보고 싶은 친구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사실 돌이켜보면 행복할 기회는 정말 많았다. 늦잠을 자도 지각하지 않았고 계기등에 불이 들어와도 차에 문제 하나 없었다. 버스와 승용차가 접촉했지만 부상자도 없었고 내가 사고를 당하지도 않았다. 화상을 입어도 아주 조금만 입었고 결론적으론 옆창고로 옮겨 붙을 불을 진압했으니 화재 피해도 줄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안 풀리나 한탄하기엔 너무 감사한 하루를 보낸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되는데 당시엔 왜 머피 생각밖에 나지 않았을까! 하긴 법칙이라고 만든 것도 머피니까 머피 탓을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머피도 샐리도 줄리도 뚝딱뚝딱 법칙을 만드는데, 나라고 못 만들 법칙일까. 되는대로 생각을 버리고 살아가다, 정신 차려보니 행복이 다가와 있는. 감자의 법칙을 이참에 하나 만들까 보다. 지나 보니 다행이었고 돌이켜보니 감자한 일이었던. 아니 감사한 일이었던 나만의 법칙 말이다.
놀러 가는 날엔 꼭 비가 온다. 아쉬워하며 한숨을 푹 쉬게 되겠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머피의 법칙 말고도 규정시킬 법칙은 많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따끈따끈 신상 감자의 법ㅊ..
태풍이 몰아치면 실내 여행을 하고, 소나기가 쏟아지면 빗소리 들으며 커피 한잔 하고, 잔잔히 비가 내린다면 우비 입고 밖을 나가보는 것도 평범치 않은 인상적인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도 여행이 망해버렸다면
그땐 그냥 머피가 나빴던 걸로 해두자
심술은 머피 몫, 삶은 우리 몫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