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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Nov 16. 2021

'기도'라는 것에 대하여

  전지적 하느님 시점의 해석


우리는 모두 매일 기도를 한다. 나 같은 천주교 신자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고, 또 다른 이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한다.

신앙이 딱히 없는 사람들도 기도를 한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거나 무의식으로 되뇌는 무수한 기원들, 모양과 지향은 다르나 모두 나름의 기도들이다. 천지신명을 찾든 부처님께 청하든.. 간혹 어르신들은 "아이구 아버지"하신다. 그 아버지는 댁에 계시는 아버지는 아닐 테고,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님, 정을 나누었던 고인들에게도 우리는 무심코 무언가 기원하고 청한다. 기도의 대상은 '나를 이 상황에서 구해 주거나 내 염원을 의탁하고픈 누군가'이니까. 인간에게 기도는 '본능'이다.


올해 7월 나는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진급이 유력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6월이 지나고, 7월의 문턱에 들어선 어느 날 가슴속이 하릴없이 콩딱이고 불안과 기대의 어느 지점쯤의 감정에 흔들리는 나를 보았다.

머리로는 아닐 줄 알면서도 주변의 온갖 시그널들이 나의 진급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작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성호를 긋고,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무릎도 꿇고 간절히 기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간절히 기도하니 간절해졌다. 어느덧 그 간절함이 어스름한 '희망'으로, '기대'로 모양을 바꾸어 갔다. 진급 발표 당일에는 기대 섞인 '설렘'이었다.


결과는 낙방.


진급 낙방 이후 나는 생각했다. '이건 무언가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다'라고.

청한 내용이 낙방은 아닐 텐데, '주님은 왜 내게 낙방을 주셨을까? 왜 주변에 저 사람들은 진급의 영광과 달콤함을 가지게 되고 나는 아닐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으나 그날 이후 성호를 긋는 일도, 혼자인 밤 기도를 하던 내 모습도 사라졌다. 섭섭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길을 가다 '포니 자동차' 장난감을 사주신다고 흘리 듯 말씀하신 다음 날 퇴근한 아버지 손에는 '포니 자동차'가 아닌 소주 한 병, 통닭 한 마리가 들려 있는 모습을 보고 느꼈던  그 섭섭함.  

▲  2013년 내 아들의 장난감 획득을 위한 염원

그날부터 다음 날까지 나는 게거품을 물고 뒤로 자빠져 나뒹굴었다.(실화다.) 결국 포니 자동차를 손에 넣었지만 진급이 '포니 자동차' 장난감은 아니니까..


그 무렵 나는 향후의 진급 계획을 포기했다. 기회가 더 있었지만 많이 지치기도 했고, 실망감에 의욕도 잃게 되어서.

그리고는 일선 조종사로 복귀했다.(나는 2005년부터 비행해 온 군 헬기 조종사다.)

돌아온 조종사로서 첫 출근하는 날 7번 국도 도로변 바다가 싱그러웠고 안보이던 꽃들, 나뭇잎과 나무들, 그림 같은 하늘의 구름 떼가 눈에 들었다. 출근하는데 자유로웠다. 헛웃음도 나오고 '내가 그간 뭘 하고 있었던가? 나는 지금껏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우리에 갇혀 있던 침팬지 마냥 지내다 '뜻하지 않은' 자유 얻은 느낌이랄까?


'기도'라는 것에 대해 '전지적 하느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 신앙인 천주교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하루에 주님께 기도를 통해 청원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범위를 좀 좁혀서 나와 같은 직업군인이 진급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

홀로코스트를 통해 수백만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히틀러도 굳은 신념으로 기도했다. 한일전 축구를 할 때면 이쪽 5천만, 저쪽 1억 2천이 서로 반대의 결과를 간절히 염원한다. 하느님 관점에서 이 청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의의 여신 마냥 두 눈을 가리고 저울질해서 판가름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자유롭다. 그리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행복하기도 하다.

하루 일과가 하늘을 나르는 일이고, 이건 20대 중반 내가 간절히 염원하던 일이다. 하늘을 날게 되니 스멀스멀 높은 자리에도 한 번 오르고 싶어 졌고 또 그것을 나도 모르게 간절함으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

어린 날 아버지가 내가 원했던 그 순간에 '포니 자동차'를 선물해 주셨다면, 다음날의 나는 또 무엇을 '간절히' 갖고 싶어 했을까?


인간의 그 '간절함'이란 늘 '간사하다.'


내가 신앙하는 하느님의 방식을 나는 모른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무언가 좋은 것을 받기는 했다는 것과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행복'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날의 우리 아버지처럼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아들 녀석들과 부대끼고 살다 보니 누구에게는 좋은 것 다 주고 누군 아무것도 안주는 선택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마냥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주는 것이 이 어린 영혼들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빵 한 개를 가진 아버지가 두 명의 아이 중 한 명에게만 빵을 쥐어줄까? 시샘이 많은 녀석이 섭섭하지 않도록 공평히 둘로 나누던지 그도 아니면 수프를 끓여 부족한 빵을 쪼개 다 함께 나누어 먹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느님의 방식을 나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이러하다.

내게 진급의 영예는 허락해 주시지 않았으나, 내가 20대에 간절히 바라던 그곳에 나를 돌려놓으셔서 '행복'을 나누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빵은 부족하지만 수프를 끓여 웃으며 함께 식사하는 것을 택했을 어느 아버지처럼.

다시 조금 삐딱한 자세로 뾰루퉁하게  간간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헤벌쭉 웃으면 싸 보이니까.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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