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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Mar 27. 2023

기억

'나'의 또 다른 이름


자다 일어나 처음 떠 오르는 것은 자다 꾼 그 꿈의 기억이고, 이내 나는 그 기억이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툴툴 자리 털고 일어나 늘 했던 일상의 기억을 좇아 물 한잔, 쉬 한 번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문득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 흠칫 라기도, 가볍게 웃음 짓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기억이란 것이 나다.

부끄러움을 입은 나이기도, 한 없이 어깨 으쓱거리던 나이기도하고 사랑하는 이 바라보며 발그레하던 나 이기도하다. 그 모든 것이 기억이고, 곧 나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여럿 떠오른다.


생각하고 있자니 하마 나는 그곳에 서 있다.


빠알간 목도리 두른 소녀를 연신내 롯데리아 앞에서 보고 첫눈에 반해 콩닥 거리는 가슴 부여잡고 애써 태연히 웃음 지었던 그 겨울도, 그 소녀가 아내가 되어 내 첫 아이를 힘겹게 낳아 안고 웃던 그날도, 둘째 녀석 이가 다 빠져 바람 소리 숭숭 내며 웃으며 뛰 놀던 이천 어딘가 그 잔디에서도 나는 서 있다.

웃으며 미소 지으며, 또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듯한 한 줌 어색한 웃음으로도.


당최 쌓을 가치가 없는 못난 기억 가득한 오늘도 언젠가 한 줌 어색한 웃음으로 기억될까?

그러고 보니, 돌아보니, 결국 남는 것은 웃음의 기억이다.

험상궂고 힘겹고, 쓰라렸던 그 어두운 녀석들은 갈수록 흐릿해지니 말이다.

험상궂은 녀석들 흐릿해지니 웬일인지  웃음의 날들이 더 그립다. 아리도록..


그렇게 또 그렇게 오늘의 나를 기억으로 만들어 간다.

어깨 위, 등 뒤 내 수호천사님 몰래 아린 기억 슥슥 밀어내 보면서..


오래도록 더 오래도록 기억이라는, 나라는 존재가 문득문득 기억나며 내 세상 아름답게 엮어내 주기를..

부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아버지, 엄마, 누나, 형들, 아내, 아들놈 한놈이 두놈이..


 하나씩 하나씩 소중히 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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