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켰다가 추천 영상에 뜬 새로운 프로그램인 '테이크원'을 보게 되었다. 뭔가 궁금해서 옆으로 쭉 넘기다가 순간 멈칫했다. '유희열'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아...'유희열'. 아마 나처럼 예전에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얼마 정도 공감을 할 수 있겠지만, 애증 같은 이름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그를 좋아했었는데 몇 달 전 벌어진 이슈로 인해 배신감, 또는 실망감을 많이 느꼈었다. 아니... 어쩌면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좋아했었는데, 점점 방송에 비치는 그는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사업가나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만 넓혀가는 듯한 모습에서 그전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순수했던 시절 함께했던 친구가 돈에 눈을 떠서 변해버린 느낌이랄까... 그러던 차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자 기다렸다는 듯 '그래. 어차피 당신은 이미 별로였어.'라는 생각으로 그의 이슈에 대한 비판들에 묘한 통쾌함이 들었던 게 어쩌면 찌질했던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방송을 틀어서 본 지 몇 초도 안 돼서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그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를 보는 게 미울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반가운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도, 그의 얼굴도, 그리고 그의 음악들도 내가 너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가 프로그램 안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대답과 중간중간 이어지는 그의 음악들을 듣는데, 사업을 하고 방송을 오래 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 당시 '유희열'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보는데 순식간에 나의 학창 시절로 데려가서 그가 테이크원 무대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나 역시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 왜 나는 저 방청석에 없었을까.. 뭐가 그리 바빠서 저런 좋은 기회를 놓쳤는지, 방청객을 모집한다는 공지조차 보지 못했던 게 안타까웠다. 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거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게다가 음악 취향도 비슷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이상한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유희열이 방청객 사연 중 두 개를 읽어주고 그들과 현장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그때도 이상하게 슬픈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주책맞게 눈물이 많이 흘렀다.
그의 말에 나도 백 프로 동감한다. TOY, 그리고 유희열의 음악은 최고였다. 그 못지않게 나에게도, 그를 좋아했던 '우리들'에게도 좋았던 시절과 열심히 살았던 반짝거리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재미가 없었을 학창 시절을 가슴 충만하게 살 수 있었던 건 유희열을 포함한 내가 좋아했던 김동률, 이승환, 이적 등과 같은 훌륭한 뮤지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잠을 청하던 숱한 밤은 돈으로도 살 수 없었던 그 시절 보석 같은 추억이다.
<테이크원>이라는 프로그램은 뮤지션의 많은 노래 중에 딱 한 곡을 뽑아서 연주하는 방식인데, 어떤 노래를 부를지 궁금해하며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과연 내가 뽑은 그 곡이 나올까? 좋은 노래는 많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그가 나의 마음과 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두근두근 ....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요동치는 그 곡, 나의 한 곡이 흘러나왔다. 나 역시 토이를 생각했을 때 '그 곡'이 떠올랐다. 유희열도 나와 생각이 같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다.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할까? 넷플릭스를 봤을까? 넷플릭스에 그가 편집 없이 실리는 것에 대한 비판 기사도 읽었을까? 그가 한 행동이나 대처는 분명히 잘못됐다. 하지만 나는 이 방송을 보며 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가 몇 번의 잘못을 했을지언정 그를 정말 좋아했던 나 같은 팬들은 어디서 빌려온 곡들보다는 오히려 '유희열'다운, '유희열'의 냄새가 나는 음악들을 훨씬 더 좋아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잘못에 비해 그에게서 받은 것들이 비교할 수 없는 만큼 훨씬 많기에 그를 외면할 순 없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가 '음악을 다시 할까'라는 고민을 했듯이, 조만간 짠하고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그 다운 음악으로 그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서 같이 토닥이면서 잘 늙어가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아는 유명인 말고 예전처럼 '우리만'이 아는 유희열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끼리 복작복작 좋은 음악 나누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그가 말했듯, 그를 좋아하길 잘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감동스러웠던 방송이었다. 오랜만에 깊게 숨겨놓았던 서랍속에 일기장을 꺼내 읽은 느낌이었다. 보는 내내 가슴 뭉클하고, 토이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눈물이 많이 났다.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유희열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를 미워하지 않고 여전히 그리워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감정을 다시 찾아주었고 그를 이렇게나마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제작진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