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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Sep 09. 2024

변기에 버린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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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소식 없어, 많이 바쁘니? 무슨 일 있어? "

"언니~ 잘 지내시나요? sns 뜸하길래 안부가 궁금해졌어요."

"요즘 많이 바빠요? SNS 활동이 너무 오랫동안 뜸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연락해 봤어요."

"언니 잘 지내시고 계세요? 전부터 매번 보였던 언니의 SNS 소식도 너무 뜸해지고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닌지..  조심스레 메시지 드려보았어요."

"잘 지내? 요즘 SNS 뜸한 것 같아서...!!"

"요즘 좀 어때? 난 조금씩 살아나는 중인데... 시간이 흘러야만 낫는 병.. "

"언니 잘 지내시는 거죠?! SNS 통해 근황 자주 보곤 했는데... 멀리서 언니 많이 응원하고 있어요."

"성별 나올 때 안 됐나? 왜 연락이 안돼? "

"형님 잘 지내죠? 요즘.. SNS에 피드도 없고.. 뭔 걱정거리 있는 건 아닌가.. 생각나서 연락했어요~"

"몸은 좀 어때? 그냥 전화했는데 며칠 안 받아서 걱정했지.. 반죽음 상태라며 어쩌냐.."

"소식이 뜸해서 걱정했는데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요, 침대 밑으로 푹 꺼지는 느낌을 또 겪고 계시겠어요.. 어떠한 말로도 위로와 힘이 안 되겠지만 시간은 지나가니까 조금만 더 힘내세요."


나는 종종 오는 연락에 반응할 여유도, 남은 뇌도 없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는 700개, 800개씩 쌓여가더니, 어느새 천 개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그 수많은 텍스트 몇 자를 읽을 만큼의 감각조차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두 눈을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내 눈 주위는 언제나 시뻘겋게 멍이 들었다. 구역질이 올라올 때면 종종걸음으로 변기에 달려가,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냈다. 위장을 탈탈 털어낼 때마다 목구멍 하나에 쭈뼛하게 솟아있는 신경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소화되지 않은 굵직한 건더기의 살아있는 날것의 질감부터, 나중에는 완전히 소화되어 미음처럼 변한 부드러운 질감까지, 그 모든 감각이 즉각적으로 나의 뇌에 어떤 형상의 이미지로 떠올랐다. 변기에 가득 쌓인 오물을 눈으로 인지하는 순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구역질로 인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동시에 콧구멍을 타고 흐르는 콧물, 등 뒤에 솜털 사이사이로 맺힌 식은땀, 그리고 괄약근이 더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풀어져 질질 새어 나오는 오줌까지, 이 모든 액체를 한꺼번에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운 없는 손으로 휴지를 집어 변기 주변을 닦아내고 쏴아- 하는 소리로 물을 내리면, 그제야 비로소 이 관조의 감각들이 정리되고,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다. 찬 물로 손을 씻고 입을 헹구며, 남아있는 구질구질한 구취를 없애기 위해 또다시 무심히 양치질을 했다. 세면대 위 거울 속, 내 눈에는 시퍼렇고 시뻘건 자국이 흥건히 남아 있었다. 눈빛에선 더는 생기가 읽히지 않았다. '아마 동태눈깔이 이런 눈깔일 거야.' 며칠, 아니 몇 주간 감지 못해 떡진 머리칼은 윤기 가득히 엉겨 붙었고, 씻지 않은 내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냄새를 직접 맡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약한 구린내가 눈에 비쳤다. 몇 주째 물 한 방울 거치지 않은 얼굴의 피부도 숨을 쉬고 싶다 외치지만 그 지방질과 먼지조차 걷어내 줄 에너지가 없었다.


질질 새는 오줌에 수치심과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으로 잔뜩 절은 배를 움켜잡았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침대로 걸어가 벌러덩 누워버리는 것이 유일한 하루 일과였다. 그리고 누우면 울렁거리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음식점을 검색했다. 오장육부에서 일어나는 전쟁같은 고통을 잊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뭘 먹지? 무얼 먹을까?'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날은 햄버거였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장 햄버거가 아닌, 수제 패티부터 정성 들여 만든 정말 맛있는 햄버거를 먹겠다는 집념이 내 뇌와 마음을 넘어서 영혼까지 집어삼켰다. 수많은 후기를 읽고 블로그를 뒤져가며 가장 먹고 싶은 곳을 찾아냈다. 맛집 포스팅을 훑어가며 입맛이 도는 곳을 첨예한 비교분석 과정을 통해 선별하여 지도에 저장했다. 뇌에는 단순 명령창 한 줄 만이 입력됐다. "이 맛있어 보이는 햄버거를 얼른 먹으러 가고 싶어." 남편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평소 같으면 혼자만의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했고, 아이들의 하원 시간과 남편의 퇴근 시간은 신데렐라가 공주에서 다시 하녀로 돌아가는 현실의 종과 다름없었는데 이번에는 유독 남편이 빨리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마음이 신혼 초 이후로 얼마만이던가.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의 손을 잡아끌고, 아이들까지 태우고는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여보, 나 오늘은 햄버거 먹어야 돼요. 빨리 가요."


아이들까지 태워서 멀리라도 나가는 길은 특히 불편한 심기가 더했다. '빨리 가서, 빨리 먹고 싶은데' 생각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서 수 없이 재생된 예상되는 맛과 기대되는 맛의 30초 광고 같은 비디오는 당최 꺼질 줄을 몰랐다. 얼른 먹어야 이 뇌에서 켜진 빨간 비상등을 끌 수 있는데, 이렇게 하다 어느 세월에 먹으러 가느냐는 마음에 남편에게 속도를 닦달했고 나는 언제나 초조했다. '찾아갔는데 줄이 많으면 어떡하지?', '찾아갔는데 맛이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온 신경은 먹는 것 외에 어떠한 것에도 안테나를 기울이지 않았다. 먹고, 토하고, 괴로워하고, 다시 먹고 또 토하고 또 고통을 호소하는 이 단순하다는 표현조차 붙이기 어려울 만큼의 과정에 하루를 온전히 쏟을 뿐이었다. 모든 과정에서 내 머릿속엔 오직 먹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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