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T.S. 엘리엇의 시

by 지크보크


다시는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바라지 못하리니

되돌아 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그릇을 탐내면서

이제는 그런데 아등바등하지 않으리니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

몸에 밴 권세가 힘을 잃었다고

서러워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다시는 알게 되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긍정하던 날들의 불안한 환희를

생각하지 않으리니

덧없는 단 하나의 참다운 힘을

알지 못하리란 걸 알게 되리니

이제는 아무것도 없으니

나무에서 꽃이 피고

샘물이 흐르는 곳에서 마시지 못하리니


시간은 늘 그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

있는 것은 오직 한순간

한 자리에만 있다는 걸 알게 되리니

나는 있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좋고

거룩한 얼굴에 연연하지 않으리

목소리에도 연연하지 않으리

다시 되돌아 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그래서 즐겁다

즐거워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기도하라 신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는 기도하련다 잊게 해달라고

너무 많은 토론과 너무 많은 설명으로

나를 애먹이는 그 문제들을

다시는 되돌아 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이 말을 답으로 삼으라

다시 일어날 일도 아닌데

일어날 일에 대한 심판이

우리를 너무 짓눌러서는 안 되리라


이 날개는 더 이상 날 수 있는 날개가 아니라

이제는 너무도 왜소하고 메마른 공기

의지보다도 더 왜소하고 메마른 공기에서

퍼덕이는 한낱 부채 같은 것이니

신경 쓰되 신경 쓰지 않는 법을 가르치소서

가만히 앉아 있도록 가르치소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지금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기도하라

지금 그리고 죽음의 그 순간에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