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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May 20. 2021

신화, 바라 보기

신화의 시대적 함의


신화 속에는 모든 문명의 역사적 다양성을 넘어선 인류 공통의 직관적 사고가 담겨 있다. 바로 이점에서 신화의 의미는 현대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신화 속에는 자연관 인간관 생명관이라는 근원적 문제에 대해 인간의 마음이 무의식 가운데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징적 이미지 사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 마음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연구 과제를 준다. 프로이트와 융에서 시작된 무의식의 심리학은 신화연구를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했다. 그들은 신화를 통해 근대인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마음의 세계의 심층 영역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들은 종교성 즉 성의 차원과 관계하는 종교 경험의 발생 근거 또는 인간 정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안목과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신화적 사고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의 모태였다. 인간 생명의 신비를 살아있는 우주 존재의 대응 관계로 직관했던 원시적 신화 사유가 축의 시대를 거치면서 동서양에서 다양한 형태로 서로 다르게 발전해 온 것이다.   

  < 유아사 아스오, 몸과 우주 >     




카렌 암스트롱은 많은 현대인들이 마음의 우울을 겪는 이유에 대해 근대 이후, 우리의 의식이 외부와 객관에 치우쳐 우리 내면의 신화(mythos)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지. 근대는 이성 중심의 로고스적 사유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화마저도 사실의 언어로 인식하고 실증하려 들신화를 참, 거짓으로 판별함으로써 종교사에 유례없는 '문자 주의'와 '무신론'이라는 양극단을 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화가 본래 지닌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 이러한 지적은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 위해 신화와 꿈을 연구해 온 융의 심층 심리학과 근대적 관념론의 이론적 담론을 벗어나 신화의 상징을 재해석해내야 한다는 폴 리쾨르의 철학, '탈문자화'를 외치며 신화의 상징성에 주목한 기독교 신학의  흐름 통한다. 각기 다른 영역으로 보였던 종교와 학문들이 신화의 싱징에 주목하며 서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성(logos) 중심의 근대의 그림자에 대한 처방으로 신(mythos) 상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화상징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사유 방식에는 로고스(logos)와 미토스(mythos)라는 두 정신 기능이 있다. 로고스는 이성과 논리 중심의 사유로 합리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외적 틀을 제공하며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검증하는 언어와 주로 관계한다. 반면 미토스는 직관적 사유로 내적 신비로 느끼는, 현상 너머의 또 다른 진실이다. 은유와 상징 언어 표현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창조적 힘을 제공한다.

우리가  세계를 온전히 통찰하기위해서는 두 사유 방식의 조화와 균형 필요.  종교와 과학, 이성과 감성, 객관과 주관, 외부와 내면,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우리의 정신이 조화와 균형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이는 근대 이전의 원시 사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적 사유의 바탕 위에 미토스적 사유를 회복함으로써 변증법적 통합을 이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사유는 지금  두 정신 기능의 조화와 균형을 잘 이뤄가고 있는 것일.


사실 인류의 모든 종교와 학문은 신화로부터 출발했다.  신화 속에는 인간의 본질과 우주의  변화 패턴보편 원형 담겨 있다.  융에 의하면  원형(archetype) 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식적 틀로만 존재하는 요소로 늘 변화 가능성을 늘 품고 있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성을 지닌 동시에 다양한 결로 변화될 수 있는   원형상이기에 인류의 '오래된 미래'로,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 의식사의 여정을 살펴보면, 신화로부터 태동한 종교와 학문이 성장 발전하다 그 동력을 잃고 화석화되어 무렵이면, 오래전 신화로 돌아가 인류 태고의 숨결을 더듬어 그 원형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들이 있었다.

공자가 '주역'이라는 고대 신비의 서를 가죽끈이 끊어질 정도로 묵상하며 춘추전국의 혼란기에 참 인간상의 구현을 인류의 이상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정신문화 탄생을 알렸듯, 고대 근동에서는 포로기 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근동의 신화와의 교류 속에서 자신들의 신화를 새롭게 재창조하며 서양 정신문화의 뿌리를 제공했다. ‘축의 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며 고난과 시련 속에 살던 우리 인류가 오래된 신화에게 길을 물으며 인류 정신문화의 영적 뿌리를 새롭게 창조 것이.

굳어 버린 중세의 진리에 맞서며 고대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르네상스 맞이했, 근대문명의 그림자를 극복해야 하는 이 시대에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고대의 신화에 말을 걸며 새로운 해답을 구하고 있음을 본다. 화석화되어 버렸다고 해서 신화를 버릴 일이 아니라 융의 말처럼 신화가 다시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샘 되게 할 일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옛것 속에서 새로움을 구한다'는 온고지신의 시대사적 함의이지 않을까.


신화가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까닭은 개인의 여정에도, 인류사적 여정에도, 신화의 심층에서 인류가 각자의 삶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신화의 힘'을 만나왔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신화에 감응하는 수많은 정신들이 신화 속에서 영혼의 공명을 느꼈기 때문에 그들이 신화를 읽고 신화를 전하고 신화로부터 새로운 답을 구해 온 것이라고.


이러한 신화는 우리에게 인류의 보편 원형을 인식하게 하면서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자 의 삶 속에서 자신의 개성화 여정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 신화는 인류가 걸어 온, 각 개인의 여정인 동시에 공동체의 여정을 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가 은유와 상징의 언어로 제시되어 있기에 신화를 읽는 자의 영혼이 신화에 감응하 시간. 즉 자신 상을 그 속에서 발견하는 때는 각각 다를  을 것이다.  이 점이 선뜻 신화에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지도 다. 그러나 신화적 상징에 대한 다양한 해석 실례는 신화가 가리키는 진실의 문을 보다 쉽게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 모두에게 준다고 생각한다.신화의 징을 직접 이해하게 되면 특정 집단 주장하는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자신의 신화를 그려가 법을 배우는 동시에 나와 다른 타자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가야 하는지를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고민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더불어 사는 조화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더욱 각자의 방식으로 신화를 읽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 하는  필요한 게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신화, 그 근원 힘이 '무엇'길래 오랜 과거인 동시에 미래를 낳는 영원의 창으로 신화여전히 우리 곁에서 인류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일까.    




***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웅진 지식하우스, 정준영 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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