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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Jul 01. 2021

스핑크스, 누구냐, 넌?

눈먼 자. 오이디푸스 1


동서양 신화 속엔 눈먼 자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눈먼 자의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생의 여정이 곧 욕망에 눈이 멀고 뜨는 과정의 연속일 테니까. 이야기 속에서 종종 눈먼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눈을 뜰 지혜를 구하지만, 눈을 뜨기는커녕 이야기의 미궁에 갇혀 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솔직히 오이디푸스는 미궁이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지혜로운 인간이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낳은 비운의 인물. 대략 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읽기를 시도한 순간,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시도할수록 모든 게 의문투성이가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딸려오는 인물들의 인과와 신들의 계보에 그만 어지러워지고 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어설프게 잘 알지도 못하는 신들의 계보와 특성을 이해해 보려다가 어쩐지 아무래도 스핑크스의 덫에 걸려버린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리스 신화를 잘 모르는 이의 곤혹스러운 미궁 탈출 일지다

          



테베라는 도시에 스핑크스가 나타났다. 이 스핑크스는 여자 얼굴에 사자 몸과 새의 날개, 그리고 뱀 모양의 꼬리를 갖고 있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낸다. 풀지 못하면 테베는 스핑크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헤라의 신탁이 내려졌다.  

    

"목소리는 하나뿐이지만 처음에는 발이 네 개인데 그다음엔 두 개가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정답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잠시 모른다 치고,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정말 우리가 아는 그 답만이 정답일까? 가능한 답들이 무수히 떠오르지 않나? (아이들에게 물으면 엄청난 답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나라면 스핑크스, ‘너’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닮았다.)     



테베많은 이들이 수수께끼를 풀지  스핑크스에게 잡아 먹힌다. 문제를 풀면 죽은 선왕의 아내와 결혼하고 왕위 를 수 있다. 이때 오이디푸스가 등장한다. 수수께끼를 푼다. 알다시피 답은 인간이다. 아기일 때는 네발로 기고, 자라면 두발로 걷다가, 노년이 되면 지팡이에 의존해 걷기 때문이라나. 말 된다. 그런데 답을 맞히자, 스핑크스가 성체에 몸을 던져 자결했단다. 어라, 한동안 테베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소란의 주인공인 그 괴물이 그 말 한마디에 갑자기 자결해 버렸다고? 스핑크스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내고,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답을 맞히자 자결하고, 도시가 구원되고. 상황이 우습지 않은가? 그리고 도대체 왜 정답이란 거지? 오이디푸스는 답을 어떻게 맞힌 거고? 신화는 참 불친절하다. 도대체  옛날 테베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수수께끼라면 옛이야기에서 흔히 보는 스토리다. 수수께끼를 잘 풀면 바보가 왕이 되기도 하고, 공주와 결혼하기도 한다. 왜 그게 답인지 황당한 경우도 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대개 주인공험이 낳은 때문이다. 고생 끝에 터득한 지혜로 행운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 공식. 이렇듯 수수께끼는 삶의 난제 하는 의례 상징. 그런데 수수께끼가 실린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엔  이를 짐작할 오이디푸스의 경험이 분명치 않고, 스핑크스의 정체도 모호해 속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헤라가 보냈다는 것 외엔 스핑크스의 정체에 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가 없다. 스핑크스의 정체 그것부터 수수께끼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극으로 재구성한 소포클레스에게로 가보자. 어쩌면 그에게서 결정적 단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작품엔 수수께끼 내용에 관한 언급 없다. 만 당시 정황을 그려 볼  있는 단서 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암캐의 수수께끼를 신의 예언이나 새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재주로 풀어내그녀를 침묵시켰다”라고 다. 암캐라. 듣는 여자 갑자기 불쾌해진다. 불현듯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 속담이 겹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좀 더 추적해보자. 결정적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코러스등장한다. "날개달린 소녀의 시험을 통과하여 이 도시에 호의를 품은 현자임이 밝혀진 자" 이라는 구절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노래하는 신녀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죽음에서 구한 자”라는 구절이 동시에 등장한다.

렇다면 이 스핑크스는 사원을 지키며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신녀를 가리킨다. 정황상 신녀는 그를 현자로 증명해준 듯 보인다. (그런데 왜 신녀는 자결했을까? )그리고 오이디푸스 재주는 날카로운 발톱관련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섣불리 결론짓지 말자. 

 



스핑크스의 형상은 사자, 뱀, 새 ,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그것을 여성의 얼굴로 표현한 것은 자연과 우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신녀의 특성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런데 왜 이 스핑크스를 그렇게 괴물 취급했던 걸까? 그리고 헤라는 왜 테베에 스핑크스를 보낸 것일까?


여러 설이 있다.( 설을 파헤치다간 미궁에서 못 빠져나갈 것 같다. 일단 포기한다.) 이야기와 직접 관련된 것만 언급해보자.

유력설 중 하나다. 테베의 선왕 라이오스가 미소년들을 범했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라이오스는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취할 테니 자식을 낳지 말라는 신탁을 듣고도 술에 취해 아내와 잠자리를 하고, 자식을 자 갓난 아들의 발에 못을 박아 유기한 인물이기도 다. 이쯤 되면 헤라의 등장이 충분히 납득이 간다. 헤라를 흔히 질투의 신으로 부르지만, 사실 그녀는 가정윤리를 저버리는 놈들을 가만두지 않는 가정의 수호신이기도 했으니까. 대책 없는 바람둥이 제우스의 아내로 살자니 그 속이 오죽했을까? 때때로 벌어지는 헤라의 살벌한 공격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는 우리가 그 배후의 인과를 다 몰라서 수도 있다.( 아무래도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상한 마음 알아줄 신은 헤라가 아니었을까? 물론 당시 신들이 하는 짓은 하도 변덕스러워서 어떤 것도 단정 짓기 어렵다. 신들은 나름 인과의 법칙대로 하는데 그 인과를 다 이해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


헤라의 스핑크스가 나타나자, 라이오스는 아폴론의 신탁을 들으러 델포이로 간다. (사실 선후가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는 길거리에서 살해된다. 범인은 모른다.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다. 그렇다면 당시 테베에 서로를 의심하며 무성한 음모론이 떠돌고 있지 않았을까. 다음 왕위를 이을  암투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아폴론의 신탁과 헤라가 보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의 관계는 거슬러 올라가면 복잡한 인과들이 있다. 본래 아폴론 신전이 된 델포이 신전은 가이아, 즉 대지모 장소였다.( 델포이가 아폴로 신전이 된 건 아폴론이 대지 모신을 지키는 탁월한 예언력을 갖춘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이고 난 후다. ) 사실 헤라 제우스가 실권을 쥐기 전까지 대지신으로 모계 사회를 대표하는 여신으로 활약했다. 제우스가 권력을 쥐 부권 사회를 이동하 역할이 축소된 경향이 있지만 신화 속에서 둘 사이의 만만치 않는 권력 투쟁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스핑크스는 테베 왕 라이오스가 죽고, 왕비 이오카스테가 잠시 실권을 쥐고 헤라의 신탁에 의지해 난국을 풀어보려 했던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왕비 이오카스테 동생 크레온이 실권을 쥐려했으나 그의 아들도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혔고, 이를 계기로 크레온은 이 수수께끼를 푸는 자에게 왕위를 넘긴다고 말했는지도 모른. 잠시 밀려나지만,  후에 그는 다시 오이디푸스 뒤를 이어 테베의 왕이 된 인물이다. )


신들의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신화가 고대의 역사를 함축해 보여주는 극적인 드라마라고 이해한다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암투가 있고, 권력을 쥔 자의 입장에서 쓰인 드라마일 수 있다. 어떤 객관적 서술도 역사를 서술하는 자의 주관적 입장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이야기에서 너무 멀리 간다. 제발 오이디푸스에게로 돌아오자.          

 

어쨌든, 신화 서술자에 의해 그려진 테베는 카오스적 혼돈의 상황다. 믿었던 기존의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이를 대체할 뚜렷한 가치 체계가 보지 않 때,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이런 때에 유독 점술예언 같은 운명론이 성행한다. 구질서가 무너진 상황에 새 질서를 필요로 하지만, 이를 이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상황.  헤라가 보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테베의 이러한 혼돈과 어둠의 시기를 상징한다면,  오이디푸스는 이를 해결하고 그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세운 자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떤 방식으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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