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생일파티
(1)
종종걸음으로 걷던 열음은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봤다. 오전 7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어린이집에 데리고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집에 도착한 열음은 남편을 서둘러 깨운 후 대충 머리를 질끈 묶은 뒤 주방에서 아이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시 30분, 정신없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그때,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지온이 먼저 주방으로 왔다. “엄마, 배오빠...(배고파)”
아이의 밥을 챙기고, 남편 훈이 먹을 토스트를 식탁에 내려놓은 뒤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던 열음은 불현듯 오늘이 어린이집 생일파티 날이라는 게 떠올랐다. “아, 난 몰라! 오늘 어린이집 생일 파틴데!” 열음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질겅질겅 씹던 훈이 “그런데?”라고 되물어왔다. ‘저 인간한테 뭘 기대해.’ 순간 짜증이 욱 하고 올라오려 했지만, 열음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린이집 생일파티 날 생일 선물 보내야 해. 엄마들이 답례품도 보내거든. 그냥 받을 순 없으니까, 선물도 보내는 거지 뭐.”
“별 걸 다하네. 중요한 거라면서 왜 까먹었어. 달력에 좀 적어놓지.”
“적어놨어. 그럼 자기는 왜 달력 안 봤는데?”
“... 하. 그만하자.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또 한 번 짜증이 올라왔지만, 아침부터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순 없었다. 그럼 네가 좀 준비하지 그랬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열음은 지온의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식판, 물통, 여벌 옷, 선크림까지. 가방을 모두 챙긴 후 지온의 식사를 돕고,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지온을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지온의 칫솔에 막 치약을 묻히던 찰나, 훈이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양치 안 해?!”
“아, 회사 가서 하면 되지. 내가 애야?”
‘애도 하는 걸 네가 안 챙기니 그렇지 인간아’, 열음은 또 속으로 말을 삼켰다. 이러다 곧 혼잣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고모도, 열음이 아는 아줌마들은 죄다 혼잣말을 구시렁구시렁 늘어놓았고, 열음은 그게 늘 불만이었다. 말하려면 대놓고 하던가. 안 하려면 안 하던가. 이건 말하는 것도 아니요, 안 하는 것도 아니요, 바뀌는 것도 없어, 그렇다고 바꿀 의지도 없어, 대체 그런 혼잣말은 왜 하는 걸까 싶었는데 지금 자기 모습이 딱 그랬다. 나도 이제 영락없는 아줌마구나, 열음은 괜히 씁쓸했다.
“엄마, 다 해도요” 지온이 어설픈 발음과 손짓으로 양치를 다 했음을 알렸다. 휴, 드디어 끝이다. 열음은 지온의 방으로 가 옷을 골랐다. 뭘 입히지.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 사이를 누비던 열음의 손가락이 브랜드 상하복 앞에서 멈춰 섰다. 한 벌에 무려 십오만 원을 주고 산 옷이었다. 예뻐서 사기는 했지만, 워낙 밝은 색 옷이라 때가 탈까 무서워 어린이집에는 한 번도 입혀 보내지 않았던 옷이었다. 이 정도 옷을 못 사줄 형편도 아닌데, 그냥 입혀 보낼까. 키즈노트에 올라오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보니 다들 잘사는 집인지 브랜드 옷만 입혀 보내던데.
한 벌에 만 오천원짜리 보세옷과 브랜드 옷을 놓고 고민하던 열음은 결국 브랜드 옷을 골랐다.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며.
“제발, 빨간 국물이랑 초콜릿만 묻혀오지 마라. 아, 물감도!”
(2)
어린이집은 열음이 살고 있는 아파트 202동 102호에 있었다. 그나마 도보로 갈 수 있는 곳 중 맘카페의 평이 가장 좋은 곳이었다. 좁은 방에 여러 아이가 한데 엉켜 지낸다는 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 앞에서 벨을 누르기가 무섭게 원장님이 밝은 얼굴로 문을 열었다. 늘 솔톤을 유지하고, 학부모가 말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이 원장님의 주특기였다. 오늘도 자기가 할 말만 와다다 쏟아낸 채 문을 닫으려는 찰나, 열음이 겨우 문고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제가 바빠서 생일 선물을 못챙겼는데 금방 사다가 갖다 드릴게요.”
“아 네 그러세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열음이 향한 곳은 번화가에 있는 대형 팬시점이었다. 얼마 전 직장 동료가 한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얼마 전에 우리 수호 생일이었잖아. 어린이집에서 생일 선물을 받아왔는데 세상에 싸구려 중국산 장난감인 거야. 끽해봐야 이천 원이나 할까? 그거 부품이 하도 조악해서, 한번 부서지면 다시 조립도 안 되는 거 알지? 나는 우리 애한테 한 번도 그런 거 사준 적이 없거든. 그거 사서 보낼 바에 안 보내는 게 낫지 않아? 나는 그래도 제대로 갖춰서 답례품 돌렸는데 진짜 짜증나더라. 애 생일 선물 하나도 제대로 사줄 돈이 없는 건가? 그 정도로 살기 힘든 거야?”
‘여기라면 제대로 된 생일 선물을 살 수 있겠지.’
일단 선물을 사려고 나오긴 했는데, 대체 제대로 된 생일 선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열음은 벌써 30분 째 장난감 코너를 돌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떤 건 너무 비싼 것 같았고, 또 다른 건 너무 저렴해 보였다. 생일인 아이는 남자아이 하나에 여자아이 하나 총 두 명이었다. 같은 걸 사줘야 할지, 아니면 성별에 따라 다른 걸 사줘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결국 아이 엄마들만 모여서 만든 친구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열음) 지온이네 얼집 생일파티라는데 선물 사러 왔더니 뭘 사야 할지 모르겠음
지원) 선물을 받아? 우리 원은 선물을 일절 안 받아서 난 잘 모르겠넹
경아) 우리 얼집도 지난주에 생파였는데 ㅋㅋ 나는 그냥 지점토 세트 사줬음 8천 원인가? 걍 대충 사~ 센스 있는 걸로다~
‘하. 그 센스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구요.’ 열음은 다시 한숨을 쉬며 장난감들을 돌아보았다. 그래, 만만한 게 지점토겠지? 열음은 결국 친구가 샀다는 것과 같은 지점토 세트를 집어 들었다. 포장 값까지 포함해서 선물 두 개에 20,000원을 지불하고 나온 열음은 서둘러 어린이집으로 돌아가 선물을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12시였다. “뭘 했다고 12시나 됐대” 열음은 가방을 내려놓고 엉망진창인 집을 둘러보았다. 어제 먹은 설거지는 그대로 싱크대에 쌓여있었고, 아침을 먹은 그릇들도 그대로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나온 안방 화장실 앞엔 남편의 옷이, 지온이 방에는 지온의 옷이 뱀의 허물처럼 놓여있었다.
설거지, 청소, 빨래까지 한번 돌리고 나니 2시. 자기 전에 씻으려고 화장실에 갔더니 이번엔 또 수챗구멍에 있는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결국 화장실 청소 후 샤워까지 마치니 3시.. 오늘도 나이트 근무를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잔다고 해도 4시간도 채 못 잘 판이었다. 짜증이 솟구치려고 했지만 우선 지금은 자야 한다. 열음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이 지점토를 좋아해야 할 텐데.. 괜찮으려나.... 하고 생각하며 설핏 잠이 들려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걸어온 건 남편이었다.
“여보세요.”
- 어 열음아 미안한데 나 오늘 퇴근이 좀 늦을 거 같네. 지온이 하원을 내가 못 시킬 거 같은데 어떡하지?
“뭐? 그런 말 없었잖아.”
-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장모님 오시면 안 되나?
“우리 엄마가 뭐 10분 대기조야? 오라 그러면 바로바로 오게?”
- 그럼 어떡하냐. 짜증 내지 말고. 그러니까 내가 복직 미루라고 했잖아.
“여기서 복직 얘기가 왜 나와.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건데.”
- 그러니까 그냥 장모님한테 전화드리자고. 일 때문이잖아.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열음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화 한 통만 걸면, 엄마는 한달음에 달려오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출산부터 육아까지 친정엄마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제 그만 엄마를 놓아드리고 싶은데, 자꾸만 엄마를 내 육아에까지 끌어들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온의 하원까지는 아무리 미뤄봤자 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지온이를 하원 시킨 후 출근 준비까지 하려면 아예 잠을 못 자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열음은 엄마에게 SOS를 쳤다. 그리고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3)
“열음아, 일어나. 출근해야지.”
친정엄마의 말에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열음이 식탁에 앉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아침에 보낸 생일 선물이었다.
“오늘 애들 생일이었다며? 원장인지 담임인지가 그러는데 엄마 하나가 선물을 다시 돌려보냈다더라.”
“왜?”
“근데 너 진짜 일은 계속할 거야? 내가 왔다갔다 하는 건 괜찮은데.. 아직 지온이 엄마 손 많이 갈 때고..”
“하, 엄마.. 지금 우리 아파트 대출금이 2억..”
“아이, 알았어, 알았어. 애 앞에서 돈 얘기 하지 말어. 애 기죽이는 1번이 돈 없단 소리야. 나 너네 키울 때 그런 말 일절 안하고 키웠어.”
“엄마가 언제 나 키울 때 돈 없단 소릴 안하고 키웠어? 그리고, 엄마가 먼저-”
“참. 오늘 생일 주인공 중 하나가 지온이 생일파티 초대했어.”
친정엄마는 생일파티 이야기와 함께 초대장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알록달록한 초대장에는 반듯한 손글씨로 아이의 이름과 생일파티에 초대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집 주소가 나와 있었다.
“이거 꼭 가야 하는 거래?”
그 순간, 직장 선배의 말이 열음의 뇌리를 스쳤다.
“너 절대로 어린이집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하등의 필요가 없는 일이야.”
이 생일 파티, 가야 하는 건가. 열음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고민에 빠졌다. 아 모르겠다, 우선은 출근부터 하고 생각하자. 초대장을 옆으로 치운 열음은 식사에 열중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열음은 괜히 마음이 급해져 더 서둘러 움직였다. 평소처럼 아이와 남편을 챙기고 엉망진창이 된 집을 뒤로한 채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으로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어린이집 공동현관에 들어선 열음은 다른 엄마가 있는 걸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을 굴리던 그때 지온이 먼저 상대방 아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윤아 안녕!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 네가 지온이구나. 안녕하세요! 저 지온이랑 같은 반 윤아 엄마예요. 이번 주말에 윤아 생일파티 한다고 초대장 다 돌렸는데 와주실 거죠?”
“아 그게..”
열음이 못 간다고 말하려던 찰나, 벌컥 하고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원장님이 나왔다. 결국 열음은 일이 있어 생일파티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출근하고 말았다.
(4)
윤아의 생일파티 당일. 열음은 괜스레 아침부터 예민해진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임은 내키지 않았다. 무슨 좋은 핑계가 없을까, 훈과 이 고민을 나누고자 했지만 훈의 답변은 심플했다.
“그냥 안 간다고 해. 윤아 엄마랑 친한 것도 아니라며. 형들이 그러는데 애엄마들 친목질 그거 잘못 엮이면 골치 아프대.”
그래, 이 인간에게 무슨 좋은 답변을 얻겠다고 내가 질문을 던졌을까. 열음은 자기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결혼 전의 훈은 좋은 파트너였다. 적지 않은 연애를 했고, 그 연애마다 남자들은 결혼을 원했지만 열음의 마음이 정착한 건 훈이었다. 적어도 열음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 같았으며, 함께 가정을 꾸렸을 때를 상상하면 미래가 밝았고, 부모가 되었을 때를 그려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이자 듬직한 반려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훈은 열음이 숱하게 실망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다가가기조차 겁났던 시아버지의 모습과 정확하게 닮아있었다. 육아를 아주 돕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돕는’ 수준에 그쳤다. 육아하며 겪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도 전혀 도움 되는 바가 없다고 느꼈다. 도대체 이런 결혼을 왜 했으며, 이런 사람을 뭘 믿고 아이를 낳았을까 싶어 자신의 신세가 처량할 때도 있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세 돌을 앞둔 아이를 두고 이혼하는 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남자 새끼들 다 거기서 거기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아들이라 생각하고 살어.”
어쩌면 친정엄마의 말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이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야 할지도.
생일 파티 하나가 뭐라고, 내 새끼 생일파티도 아니고 어린이집 친구 생일파티 하나 때문에 내가 이혼까지 생각해야 하나, 순간 열음은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망상은 그만두자, 애들끼리 잠깐 놀다 오는 거야. 열음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다녀와.”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리모컨을 쥔 훈이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인사를 건넸다.
음, 다시 생각해도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참 없었단 말이야. 열음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윤아의 집은 열음의 집과 마주한 아파트였다. 그것도 열음이 가고 싶었던 동, 가고 싶었던 아파트.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동이 달라지는데, 그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집값은 두 배나 차이가 났다. 열음과 훈이 쥔 돈은 한정적이었고 그들 앞에 놓인 선택지엔 그 동도, 그 아파트도 없었다. 열음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주제 파악이 빠르고 정확한 편이었고, 대충 이 도시에서 자기의 그레이드가 얼마나 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아네 아파트에 들어서고 잘 정돈된 단지를 보자 걸음걸음마다 누군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너는. 이 동네에. 못. 온. 다.’고.
“아휴, 웬 자격지심이야.”
열음의 혼잣말에 지온이 땡그란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봤다. 열음은 그 순간 아이가 아직 어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윤아네 집은 101동의 꼭대기 층이었다. 지온과 함께 머뭇거리며 집에 들어서니 이미 집은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아이 7명에 엄마 다섯 명이니 그럴 만도 했다. 열음은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엄마들과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제야 이 자리가 실감이 났고, 그 뒤엔 곧바로 불안이 따라왔다. 엄마들의 대화에 어떻게 끼어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서 와요. 여기 지온이랑 지온이 어머니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열음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에 답했다. 지온은 친구들과의 인사도 건너뛴 채로 새로운 장난감을 하나 집어 들고 몰두하기 시작했고, 열음도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지온 엄마가 오성 다니는 엄마 맞죠?”
“지온 엄마, 오해하지 말아요. 우리가 운영위원회다 보니까 원장쌤이랑 편하게 얘기하다가 지온이 엄마는 워킹맘이라고 해서.. 직업 얘기가 나왔어요.”
나쁜 의미로 오간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뒤에서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구나 싶어 열음은 살짝 경계심이 들었다. 타이밍 좋게 커피를 내어온 윤아엄마가 엄마들 소개를 시작하며 직업 이야기는 끝이 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건 지온과 같은 반인 믿음반 친구들이었다. 첫째도 이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지윤 엄마는 수다스러운 타입으로 말이 끊기질 않았다. 제일 나이가 들어 보인다 싶었던 시아 엄마는 역시 가장 큰언니였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오래도록 고생했다고 했다. 아들만 둘 키운다는 진하, 유하 엄마는 ‘하하 형제’라는 이름으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인 모양이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인사를 마치고 나니 엄마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열음은 좀처럼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시종일관 지온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지윤이네 첫째 지율이가 놀이 스타일이 꽤 거친 편인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혹여나 아이를 밀치기라도 할까 봐 불안불안했던 열음은 아예 의자와 몸을 반쯤 돌려놓고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툭툭,
“어린이집에서 맨날 보는 친구들인데 뭘 그렇게 불안해 해요. 지온 엄마 좀 유별나구나?”
‘유별나긴 뭘 유별나. 진짜 유별난 사람 보지도 못했나. 자기가 더 별나 보이는구먼.’ 열음이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며 소금빵을 북북 찢던 그때, 아이들이 놀던 쪽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난 열음이 처음 마주친 건, 장난감을 든 채 안절부절 못하며 열음을 쳐다보는 지온의 눈이었다.
(6)
소리를 지른 아이는 생일파티 주인공 윤아였다. 엄마들, 아이들이 하나둘 윤아 쪽으로 모여들자 때마침 윤아가 크게 울기 시작했고, 윤아 엄마는 한 손으로는 윤아를 달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열음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하지만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열음은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당황스러움에 귀까지 벌게진 열음은 지온을 붙들고 무슨 일이냐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지온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쬬니도 나무 가지고 놀, 놀고 싶은데 윤아가, 윤아가 쬬니 못 가지고 놀게 하고 먼저 밀어떠!!!!”
“그래서, 때렸어? 어쨌길래 윤아가 울어!!”
“윤아가 먼저 밀었단 말이야!!!”
“때렸냐구!”
어쩔 줄 모르는 열음을 식탁 앞에 앉힌 시아 엄마가 지온을 달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저러지 못했나 싶어 후회가 몰려왔다. 조금만 참을걸, 이게 무슨 창피야. 열음은 마른 세수를 하며 숨을 골랐다.
분위기 전환 차 꺼낸 생일 케이크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몰려들었다. 촛불을 20번은 더 켜고 나서야 요란한 생일 축하는 끝이 났고, 아이들은 다시 제각기 흩어져 장난감에 몰두했다. 아이들은 정말 쉽게 기분이 상하기도, 또 풀리기도 하는구나. 열음은 어쩌면 내가 진짜 좀 유별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일 파티는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울고, 떼쓰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고, 또 별것 아닌 것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좋아했다. 아이들과 잘 섞이는 지온을 보며 열음은 마음이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이에 귀까지 시뻘개진 걸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이 사람들 앞에서 체면 차리긴 글렀구나. 열음은 참담했다.
엄마들과의 대화는 호구조사, 맛집,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어린이집 뒷담화, 엄마들 뒷담화를 거쳐 사교육 정보과 아이 데리고 갈만한 곳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모임은 키즈카페에서 해보자는 말을 끝으로 생일 파티는 끝났다. 집에 돌아왔을 때 훈은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