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볼렛(שִׁבֹּלֶת)?!

by 장유철

구약성경의 사사기(판관기)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사망한 후부터 시작된 사사시대(B.C. 1,390-1,050), 즉 사사(판관: judge)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340년간의 혼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사시대의 특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비롯한 영적 둔감으로 범죄하여(sin), 이민족의 압제를 받게 되고(slavery), 범죄에 대한 잘못을 회개(간구)하고(supplication),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사사 보내줌)을 받고(salvation), 그리고 이를 망각하는(oblivion) 5개 과정을 되풀이한 하나님에 의한 신정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다(Jephthah, 사사 기간: B.C. 1,085-1,079)라는 사사가 요단강 동쪽에 살고 있던 므낫세지파를 18년씩이나 압제하던 암몬(롯과 그의 둘째 딸이 낳은 아들의 후손의 나라)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에브라임지파가 왜 승전의 현장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함으로써, 요단강 동편에서 두 형제지파 간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졌는데, 결국은 에브라임지파 42,000명이 요단강 나루터에서 입다의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부연하면, 이 전쟁에서 패배한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이 요단강 서편으로 건너가려고 할 때, 입다는 요단강 나루터에서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서,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쉽볼렛(שִׁבֹּלֶת: 강가라는 뜻)을 발음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단강 동편에 사는 므낫세지파 사람들은 “쉽볼렛(שִׁבֹּלֶת)”이라고 발음을 하는데, 요단강 서편에 사는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은 “십볼렛(סִבֹּלֶת)”으로 발음[히브리어 שׁ(쉰: sh)을 ס(싸멕: s)으로 발음]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입다는 이러한 두 지파 간의 미묘한 발음의 차이를 이용함으로써,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언어의 미묘한 발음의 차이로서, 적이나 타민족을 식별하는 방법은 역사적으로 이 성경의 사건 이래 많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에 일본의 자경단은 조선인을 색출하기 위하여, 일본어 특유의 초성자음이 탁음인 “쥬고엔 고짓센(十五円 五十銭: 15엔 50전)”을 조선인에게 발음하게 하였습니다. 성경의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이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발음했듯이, 초성의 유성자음을 발음할 수 없는 조선인들은 이를 “츄코엔 코짓센”으로 발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자경단은 이러한 미묘한 발음의 차이를 이용하여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근대사 속의 전형적인 쉽볼렛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 볼 때, 원래 성경의 고유명사였던 쉽볼렛은 이제 어떤 특정한 집단(민족)이 외부인(타민족)을 식별해 내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나 문구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전환되었습니다. 실제로 영어사전에서 shibboleth을 검색해 보면, “사람들의 집단을 구별해 주는 요소(언어 · 관습 등)”라고 풀이되어 있는 표제어임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의 쉽볼렛은 요단강 나루터의 비극에서 시작된 고유명사에서, 이제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인 보통명사로 그 품사가 전환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주) 한국인은 단어의 초성자음을 성대가 울리며 내는 유성자음으로 발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일본어 유성음인 “쥬(じゅ)”와 “고(ご)”를 발음할 때, 성대가 울리지 않는 무성음인 “츄”와 “코”로 발음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부산”과 “대구”를 발음하면, 외국인에게는 성대의 울림이 없는 파열음인 “Pusan(푸산)”과 “Taegu(태구)”로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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