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우리는 아라비아숫자 중에서 3이란 숫자를 정서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서, 삼세판·작심삼일·삼고초려·삼정승·삼족오·삼일장·삼다도 등등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위일체 역시 매우 친숙한 단어이며, 또한 그 의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총칭하는 기독교 용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말은 단지 국어사전의 풀이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다기하고 난해한 개념으로서,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명명백백하게 그 의미를 밝히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향후 2,000년이 지나더라도 지금이랑 더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환언하면, 기독교는 예수의 신성, 즉 삼위일체의 논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는 단순한 기독교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우상숭배와 신성모독”이라는 치명적인 비판을 방어하고 생존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한 마디로 기독교 교리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이해를 제고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삼위일체의 진정한 개념은 무엇인가? 둘째,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이단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인가? 셋째, 삼위일체란 용어가 태동하게 된 역사적 필요성은 무엇인가? 넷째,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존립근거인가?
따라서, 본고의 목적은 지난 2,000년간 삼위일체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도 그 개념이 애매모호하여, 결국 신비라는 베일 속에 깊게 감추어진 삼위일체를 다시 소환하여, 기독교 교리로서의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예수와 삼위일체의 관계를 명확히 구명해 보고자 합니다.
2. 삼위일체의 개념
(1) 삼위일체의 정의
삼위일체(三位一體)는 한자로 석 삼(三), 자리 위(位), 한 일(一), 몸 체(體)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여기서, 위(位)는 인격/위격(Person/Personae)을 뜻하며, 체(體)는 본질/본체(Substance/Substantia)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영어로 Trinity이며, 이는 세 신(Three Gods)이 아닌 세 인격/위격에 한 본질[Three Persons-One Substance(God)]을 의미합니다.
부연하면, 세 개의 위격(Three Persons)인 성부(하나님)와 성자(예수)와 성령(보혜사)은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합니다. 즉, 성경의 기록처럼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는 장면(마태복음 3:16-17)”은 바로 세 인격체가 서로 혼동될 수 없는 별개의 위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본질(One Substance)이란 이들의 근본적인 본질(Substance), 즉 신성(Divinity)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세 분의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의 하나님이 세 개의 인격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요약하면, 삼위일체는 “세 독립된 인격체는 한 본질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삼위일체의 필요성: 기독교의 존립기반
사실 기독교의 존립 근거인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를 의미하는 내용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창세기 1:1, 마태복음 28:19, 요한복음 10:30).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유대교의 배타적 유일신(출애굽기 20:3)과 마찰을 해소하고, 나아가서 기독교의 존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삼위일체를 정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단순한 기독교 교리 중 하나가 아니라, 기독교를 지탱하는 존립근거라 하겠습니다. 부연하면, 본래 기독교는 유대교라는 바탕에서 탄생했지만,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순간에 기독교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교의 시각에서,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이자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이러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바로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를 넘어 독립된 종교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예수는 곧 성자라는 위격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즉,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를 하나로 묶는 유일한 연계고리가 바로 삼위일체라는 것입니다. 부연하면, 만약 예수가 하나님과 본질이 다르다면(신성 결여), 인간의 죄를 대속할 권능이 없으며, 반대로 예수가 인간이 아니라면(인성 결여), 인간의 고통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라는 논리적 체계가 무너지는 동시에 기독교의 구원론과 존립근거는 완전히 소멸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유일신을 고수하면서, 예수의 신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독교의 유일한 존립기반이라고 하겠습니다.
3: 삼위일체와 예수의 관계
(1) 예수는 누구(성자)인가?
예수의 인성(Humanity): 구원의 방법(대속)
예수는 인간이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한복음 1:14)”라는 성경구절은 예수가 “성육신(인성)”하였다는 성경적 근거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태복음 4:2)”라는 기록들은 예수가 슬픔과 배고픔과 고통을 느끼는 완전한 인간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빌립보서 2장 6-8절에는 예수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가 인간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원죄를 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는 반드시 인간의 몸으로 고난을 겪고 피를 흘려야 하는 대속의 소명을 성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신성(Divinity): 구원의 자격(권능)
성경에 “나(예수)와 아버지(여호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와 여호와는 위격은 다르나, 본질에서 동일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15절에는 “예수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하나님의 형상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 전 인류의 죄를 사하는 구원의 권능을 갖기 위해서, 그 죽음의 주체가 반드시 하나님의 본질과 같은 메시아적 자격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결론: 성자의 충분조건
따라서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는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이 두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은 예수는 곧 성자라는 충분조건이 성립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논리학적 관점에서 표현하면, 명제 H(인성)와 명제 D(신성)의 교집합인 H D는 명제 S(성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신성[구원의 자격(권능)]과 인성[구원의 방법(대속)] 중에 하나라도 부정이 되면 삼위일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기독교의 구원론은 그 즉시 논리적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는 누구(성령)인가?
성경에 “내(예수)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요한복음 14:16)”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또 다른(Allos)이라는 표현은 신성(본질)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성경구절은 예수가 첫 번째 보혜사(성령)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약하면, 예수는 인성과 신성이라는 충분조건을 갖춘 성자이며, 나아가서 그 본질이 성령과 동일함으로써, 예수는 곧 삼위일체 하나님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하나로 묶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4: 삼위일체의 논쟁과 이단의 기준: 예수의 인성과 신성
(1) 에비온파(Ebionites, 1세기 말)
에비온파는 외경인 히브리복음서를 근거로 예수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양자로 선택되었다는 양자설(Adoptionism)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예수가 본래부터 지녀야 할 신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의 인성만으로는 성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성립될 수 없으므로, 이들은 논리적 결손에 의해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2) 영지주의
기독교는 초기부터 안팎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육체는 악하다는 이분법을 통해 예수의 인성을 환상으로 치부하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했습니다. 즉, 가현설은 예수의 몸(육체)는 실재가 아니라 환상일 뿐이라는 주장으로서,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의 논리입니다. 여기서, 영지로 번역된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는 “영적 앎”을 뜻하며, 영지주의는 이러한 앎을 통하여 신성을 깨닫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주장합니다(해탈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교리와 일맥상통).
(3) 마르키온(Marcion, 2세기 중엽)
마르키온은 그의 저서 안티테제(Antitheses)를 통해서, 구약과 신약의 신을 분리하였습니다. 즉, 구약의 신을 열등한 조물주로 규정하고 예수가 그 열등한 신이 만든 육체를 가질 수 없다는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가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성자의 필요조건인 인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마르키온의 논리는 예수의 인성을 부정함으로써 이단이 되었습니다.
(4) 터툴리안(Tertullian, 2-3세기)
최초로 삼위일체란 말을 만든 사람은 초기 교부이자 법률가인 터툴리안(Tertullian, A.D. 155-223)입니다. 즉, 터툴리안은 그의 저서 프락세아스 반박문(Adversus Praxean)에서, Trinitas(세 위격의 결합)라는 용어를 통해서, 본질(Substantia)은 하나이면서 위격(Persona)은 셋이라는 삼위일체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부연하면, 터툴리안은 로마법의 개념을 원용하여, 성자가 삼위일체의 한 축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 위격을 확립함으로써, 성자와 삼위일체의 연결고리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터툴리안은 삼위일체의 예로서, 태양이라는 본체에서 빛과 열이 나오지만, 이 셋은 하나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는 성부로부터 성자와 성령이 나온다는 논리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태양이 없으면 빛과 열이 존재할 수 없다는 종속론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즉, 성부(하나님)가 성자(예수)보다 근원적이라는 논리로서, 세 위격의 동일성을 부정하게 되는 논리입니다.
(5) 사베리우스(Sabellius, 3세기 초)
AD 261년경 사베리우스는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며, 양태론(Modalism)을 주장하였습니다. 양태론은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가면(persona)을 바꿔 쓴다는 논리로서, 성자를 실체가 아닌 단순한 역할로 전락시켜 독립적 위격을 부정한 것입니다. 즉, 예수를 하나의 위격으로 보지 않는 이 논리는 삼위일체의 구조적 통일성을 파괴하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양태론은 하나님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Mode)으로 나타난다는 논리입니다.
예컨대, 양태론은 물과 얼음과 수증기는 물이라는 본질은 하나이지만, 온도라는 조건에 따라 얼음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가 되기도 한다는 비유로서,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음인 상태에서는 동시에 물이나 수증기일 수 없다는 점은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삼위일체의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즉, 성경에 “예수가 물에서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고, 하늘(성부)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태복음 3:16-17)”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세 위격이 동일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형체로 존재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6) 아리우스(Arius, 4세기 초)
아리우스는 그의 저서 탈리아(Thalia)에서, 예수(성자)는 하나님(성부)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유사본질(Homoiousos)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여 성부와 동등한 본질을 결여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아리우스는 예수는 성자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에 도달하지 못한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7)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4세기)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저서 성육신론(De Incarnatione)을 통해서, 아리우스의 주장에 맞서 예수가 성부와 동일본질(Homoousios)임을 천명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함으로써, 성자의 충분조건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학적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며 정통신학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즉, A.D.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의 유사본질론을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며,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론이 승리했습니다.
(8)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4-5세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De Trinitate)에서, 삼위일체의 내적 통일성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예수(성자)와 성령(보혜사)의 본질적 일치를 신학적으로 변증함으로써, 삼위일체 교리의 사상적 완결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는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설이 있음). 해변에서 작은 웅덩이를 파고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퍼서 그 웅덩이에 담으려는 아이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많은 바다물을 어떻게 그 작은 구덩이에 다 담으려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당신이 그 작은 머리로 삼위일체의 신비(Mysterium)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내가 이 바닷물을 퍼서 이 작은 웅덩이에 담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9)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칼 바르트는 그의 저서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에서, 삼위일체를 인간의 이성이 인식할 수 없는 절대적 신비(Mysterium)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칼 바르트는 삼위일체를 인간이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역으로 숨겨버린 것입니다.
(10) 루이스 버코프(Louis Berkhof, 1873-1957)
루이스 버코프는 그의 저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에서 “삼위일체는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없는 신비(Mysterium)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모든 인간적 비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삼위일체를 논리적 규명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공리(axiom: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함을 이론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5. 결론
본고는 지난 2,000년간 기독교 교리의 최대 난제로서, 결국 신비라는 베일 속에 가려진 삼위일체를 다시 소환하여, 성경과 교부 및 신학자의 문헌에 기초하여 그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수가 인성을 가진 성자이자 신성을 가진 성령으로서 삼위일체와의 연계고리를 찾아내고, 나아가서 삼위일체가 바로 기독교가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임을 구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주요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삼위일체는 세 위격에 한 본질로 정의됩니다. 둘째,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성자의 충분조건을 갖춘 성자의 위격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이렇게 정립된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튼튼한 존립기반이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만든 삼위일체를 정작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이라 사료됩니다. 또한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이단으로 내몰린 수많은 이론과 주장 역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를 설명을 하려다가 결국 이단으로 단죄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현대 조직신학이 신비라는 베일 속에 감춰버린 삼위일체와 예수의 연계고리는 바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라는 사실을 구명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 1) 예수는 곧 성령임으로서, 본고에서는 삼위일체를 논함에 있어, 성령을 크게 부각하지 않았습니다.
주 2) 라틴어 스쿠툼 피데이(Scutum Fidei: 믿음의 방패)는 삼위일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기독교의 전통적 상징물로서, 중세 후기 유럽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문장(Heraldic arms of God)”이라고 하였습니다. Peter of Poitiers(페트루스 픽타벤시스), Compendium Historiae in Genealogia Christi(그리스도 족보의 역사개요), 1208년-1216년.
주 3) 논리학(Logic)에서 두 명제 P와 Q 사이의 관계성
1. 필요조건: Q P(Q only if P): 명제 Q가 참이기 위해 명제 P가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관계입니다. 예: 산소(P)는 연소(Q)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2. 충분조건: P Q(if P, then Q): 명제 P가 참이면 명제 Q도 반드시 참이 되는 관계입니다. 예: 폭우(P)는 길이 젖는 것(Q)의 충분조건입니다.
3. 필요충분조건: P Q(P iff Q): 두 명제가 서로를 완벽하게 일치하는 동치입니다. 예: 총각(P)은 미혼 성인남성(Q)이며, 반대로 미혼 성인남성(Q)이라면 반드시 총각(P)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