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볼 수 있는 혜안
1. 서언: 성경의 침묵을 깨는 미드라시
성경 열왕기상 10장에는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었고, 솔로몬은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는 그 질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유대교 전승 문헌인 미드라시(Midrash)입니다. 즉, 미드라시에는 스바여왕이 준비한 열 가지의 까다롭고 기상천외한 난제와 이를 지혜로 풀어낸 솔로몬의 서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실 스바여왕의 질문은 단순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현상에 속기 쉬운 인간의 허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날이었습니다.
따라서, 본고는 이러한 스바여왕의 10가지 난제와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찰의 대답을 통해서, 그 난제들에 숨겨져 있는 함의를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스바여왕의 10가지 난제
1) 생화와 조화의 판별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살아있는 꽃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십 개의 조화 속에 보잘 것 없는 생화 한 송이를 숨겨놓고 솔로몬에게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인간의 기술로 빚은 저토록 완벽한 조화들 중에서, 곧 시들어 사라질 운명인 단 하나의 생화를 찾아보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창문을 열어 벌 한 마리를 들여보냈습니다. 그 벌은 화려한 조화들을 지나쳐 볼품없는 생화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외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이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는 혜안입니다. 조화는 인간의 기술로 빚어낸 정교함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할 수 있지만, 생명을 먹여 살릴 꿀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조화 같은 정보와 유혹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릴 때, 우리는 솔로몬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현상 너머의 생명력을 보아야 합니다.
2) 똑같은 옷을 입은 남녀 아이의 판별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똑같은 나이대에 똑같은 옷과 장신구로 꾸민 소년과 소녀들을 세워두고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의복과 환경으로 모든 차별을 지워버린 이 아이들 중에서,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본래의 성정체성을 가려내 보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아이들의 겉모습을 관찰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물을 끼얹어 세수를 하게 하였습니다. 소년들은 물로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고, 소녀들은 옷자락이 젖을까 조심하며 섬세하게 물로 닦았습니다. 즉, 솔로몬은 남녀 간에 몸이 기억하는 본성은 속이지 못한다는 혜안으로 소년과 소녀를 판별해낸 것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사회적 가면인 옷이나 장신구에 속지 않고 물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찰나의 순간에 튀어나오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읽어내는 눈입니다. 교육과 환경으로 겉모습은 규격화할 수 있어도, 몸과 영혼에 새겨진 본연의 기질은 숨길 수 없습니다.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태도 속에 남녀의 진짜 성정체성이 담겨 있다는 이치입니다.
3) 말의 땀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자연의 모든 섭리를 거스르는 난제를 내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하늘에서 내린 비(雨)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우물물도 아닌 물을 내 앞에 가져와 보시오.“
대답(Answer): 이 질문은 언뜻 들으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억지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이라는 우리가 물을 얻을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 한 필을 가져와 힘차게 달리게 한 뒤, 그 몸에서 흐르는 땀을 그릇에 담아 여왕에게 내놓았습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주어진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내 안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땀의 결실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비(운)나 우물(유산)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땀은 생명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숭고하고 고귀한 물방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고난에 당했을 때, 그 고난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길은 직접 몸으로 부딪쳐 흘린 정직한 땀방울뿐입니다.
4) 소금의 비유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소금의 탄생과 소멸 속에 감춰진 역설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없고, 자식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즉, 태어난 곳을 부정해야 존재가 인식이 되고, 존재가 인식됨과 동시에 그 근원을 잃어버리는 그 기묘한 것을 밝히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그것을 바로 “소금”이라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소금의 어머니는 바닷물이나, 바닷물(액체)이라는 상태 안에서 소금은 자신의 고유한 결정체(고체)로서의 형상을 갖지 못하며, 반대로 바닷물이 증발하여 소금이라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에 그것은 더 이상 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겉으로 보이는 형상이 완전히 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 흐르는 “본질적인 성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입니다. 바닷물(액체)과 소금(고체)은 그 형상이 이질적으로 보이나, 그 둘을 관통하는 짠맛이라는 본질은 동질적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5) 태양의 빛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한 존재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뿌리는 하늘 높은 곳에 박혀 있고, 그 가지는 땅끝까지 뻗어 내려와 온 세상을 덮는 나무는 무엇입니까? 눈에는 선명하나 손으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그 정체를 밝히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그것은 “태양의 빛”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빛의 근원(뿌리)은 저 높은 하늘의 태양에 있지만, 그 빛(가지)은 지상의 가장 낮은 골짜기와 어두운 구석까지 차별 없이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태양 빛처럼 가장 높은 곳의 진리를 가장 낮은 곳의 삶으로 연결하는 “확산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머릿속에 갇혀 있는 박제된 지식이 아니며, 지혜로운 사람은 빛과 같아서 자신을 돋보이기보다 태양 빛처럼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골고루 비추듯 따뜻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6) 그물의 역설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보이지 않는 법과 제도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땅에서 나지 않았으나 땅 위의 생명들을 덮어 가두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뼈도 없고 살도 없으나 모든 것을 옭아매며, 한 번 걸려들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정체를 가리켜 보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이에 대해 “그물”이라 답했습니다. 그물은 흙에서 자란 생명체가 아니지만, 물속과 땅 위의 생명들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킵니다. 실과 실 사이의 빈 공간이 오히려 생명을 가두는 도구가 된다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세상을 덮고 있는 수많은 인위적인 “그물(법과 제도)”을 명확히 인식하는 눈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촘촘한 그물망이 처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그물은 우리를 지켜주는 안전망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그물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통찰해야 합니다.
7) 일곱 구멍의 비밀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인간의 “일곱 구멍의 비밀”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사람이 태어날 때는 단 하나의 구멍으로 나오나, 세상을 떠나 돌아갈 때는 일곱 개의 구멍이 차례로 닫히는 그 실체가 무엇입니까? 시작은 단순하나 끝은 복잡하고 엄중한 그 정체를 밝혀 보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이를 인간의 “얼굴에 난 일곱 구멍(눈, 귀, 콧구멍, 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머니의 산도라는 단 하나의 구멍을 통해 태어났으나, 죽음에 이르러서는 평생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던 이 일곱 개의 구멍이 차례로 닫히며 생을 마감하기 때문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육신의 감각기관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고 “영혼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개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의 풍경과 소리, 맛에 취해 살다 보면 정작 그 구멍들이 닫힐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잊기 쉽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유한한 삶을 성찰하며, 일곱 개의 구멍이 열려 있을 때 선한 것을 보고 진리의 소리를 들으며, 덕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8) 참된 지혜자의 명성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헛된 소문과 참된 명성 사이의 간극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보지 않고도 믿게 만들며 멀리서도 그 향기가 전해지나, 정작 가까이 다가갔을 때 소문보다 실재가 더 위대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찬사는 대개 과장되기 마련인데, 그 과장을 부끄럽게 만드는 진실의 정체를 밝히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이를 “참된 지혜자의 명성”이라 답했습니다. 스바여왕은 멀리서 솔로몬의 소문만 듣고 찾아왔는데, 실제로 그녀가 목도한 솔로몬의 지혜는 소문보다 훨씬 더 깊고 장엄했음을 스스로 표명하게 된 것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나를 드러내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참된 지혜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가짜 명성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밑천이 드러나 실망을 안겨주지만, 참된 지혜는 다가갈수록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경외감을 줍니다. 즉, “참된 지혜자의 명성”은 억지로 퍼뜨리지 않아도 바람을 거슬러 퍼지는 향기와 같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9) 십계명 돌판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언약궤 속의 “십계명 돌판”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숨을 쉬지 않는 차가운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살아있는 수만 명의 백성을 가르치고 꾸짖는 것이 무엇입니까? 입이 없어도 준엄하게 말하며, 발이 없어도 온 나라를 누비며 질서를 세우는 그 신비한 존재의 정체를 밝히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성소 안의 “십계명 돌판”이라 답했습니다. 솔로몬은 비록 십계명 돌판은 차갑고 단단한 돌에 불과하지만, 그 위에 새겨진 율법이 인간들의 양심을 깨우고, 어긋난 길을 가는 자를 꾸짖으며, 공동체의 도덕적 기둥이 된다는 사실을 짚어낸 것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유행처럼 변하는 세상의 가치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기준”을 세우고 따르는 힘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진리의 율법은 시간이 흘러도 돌판 위에 새겨진 십계명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죽은 돌이 산 자를 가르친다는 역설은 우리가 따라야 할 진정한 가치는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한 율법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0) 은 우물의 착시
난제(Riddle): 스바여왕은 수많은 우물 모형을 준비하고 그 안쪽 벽면을 은판을 닦아 둘러쳤습니다. 햇빛이 비치면 은판에 반사된 빛이 마치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완벽한 착시를 일으켰는데, 스바여왕은 그 가짜 우물들 사이에 진짜 생명수가 담긴 우물을 숨겨두고 물었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여, 눈부신 은빛 광채가 사방에 가득하여 무엇이 진짜 우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은빛나는 우물들 중에서 목마른 자를 살릴 진짜 우물을 찾아내 보시오.”
대답(Answer): 솔로몬은 자신의 눈에 의지하는 대신, 목마른 짐승들을 우물가에 풀어놓았습니다. 인간의 눈은 정교한 은빛 물결에 속아 넘어가지만, 생존을 위해 물을 찾는 짐승의 본능은 오직 생명의 기운이 흐르는 진짜 우물로 일제히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통찰(insight): 지혜란 은빛 물결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짜 물을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눈부신 은판으로 우리를 현혹하지만, 진짜 생명수는 때로 광채도 없는 투박하고 평범한 우물 속에 숨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속지 않고, 동물적 감각으로 진짜 우물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3. 결언: 본질을 통찰하는 혜안
본고는 스바여왕의 10가지 난제와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찰의 대답을 통해서, 그 난제들에 숨겨져 있는 함의를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 또한 스바여왕의 난제만큼이나 고약하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스바여왕의 난제를 솔로몬이 지혜로 풀어내었듯이, 현실의 복잡한 문제 또한 본질을 꿰뚫는 지혜로 해결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바여왕의 난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스바여왕의 난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함의는 눈을 비롯한 오감이 아닌 지혜의 눈, 곧 혜안으로 직시해야 껍질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