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스럽게 '상징'을 사용한다

문학에서는 추상적인 주제나 내용을 구체적 사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잔잔한 마음이 사랑 때문에 사정 없이 흔들릴 때,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로 비유하는 것이다. 그대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보다, 노 저어 오는 배 때문에 물결치는 호수가 더 문학적이다.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독자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자극을 경험한다. 추상적 주제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구체적 장면을 묘사하여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문학의 핵심이다.


비유보다 더 감각적인 기술이 있다. 바로 상징이다. 비유와 상징 모두 구체적 사물을 묘사하면서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비유는 정답을 알려주는 기술이다. 직유법은 "~같이, ~처럼"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구체적 장면이 의미하는 추상적 주제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은유법은 "A=B"의 형식으로 추상과 구체를 연결한다. 반면 상징은 구체적 장면만 제시한다. 그 상징물이 의미하는 추상적 주제가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감각을 자극당한 독자는, 이 감각이 의미하는 바를 저마다 추측해야 한다.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 맞힐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추론하기도 한다. 상징이라는 기술의 특징이 그렇다.


말하는 이가 속마음을 숨기고 겉의 이야기만 한다는 점에서, 듣는 이가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상징이다. 내가 남에게 하는 말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남은 내 말의 의미를 멋대로 해석한다. 나도 남의 말이 상징하는 바를 마음대로 독해한다.


수업 중의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가 있었다. 수업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말을 큰 소리로 연신 내질렀다. 조용히 하라는 지시에 불응했다. 점점 더 큰 소리와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독자가 된다. 그의 말과 행동은 상징의 표현형이다. 그가 숨기고 있는 속마음은 무엇인가. 뻔하다. 사랑 받고 싶음, 인정 받고 싶음, 주목 받고 싶음. 내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상징은 원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기술이니까.


그래서 나는 떠드는 학생에게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쉬운 과제를 남몰래 부여한다. 그리고 발표할 기회를 준다. 떠드는 건 떠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사랑 받고 싶어서 떠드는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해준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발표를 시키는 것은, 내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 역시 내 상징을 다르게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지금 국어 수업 중. 서로의 상징을 마음껏 해석하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