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nalog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수 Aug 18. 2018

주어진 삶중에서 선택할 뿐이었다

# 나의 하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옥수동 일출


매일 신기록을 세우는 듯 날씨가 무더웠다.

그래도 입추가 지난 후, 밤은 점점 길어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함이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온다.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숲과 그늘


그러나 낮에는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햇살은 따갑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숨을 막히게 한다.

걷기를 포기했지만, 그나마 그늘이 있는 숲길은 걸을만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도 숲 사이 그늘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원함조차도 시원한 더운 바람에 실려오는 것이었다.


통영 - 비진도

그곳은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탔다.

비진도, 

그러나 포구에 내리자마자 온 몸에 느껴지는 습한 기운과 그늘 한 점이 그리울 섬은 오래 머물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현실화했다.


여객선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가장 일찍 나갈 수 있는 배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도 무더웠고, 무더운 만큼 시원한 바람과 그늘이 그리웠다.


수월로에서 바라본 남해

그러나 저녁이 되어서야 무더위는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도 따가운 햇살은 아니니까.... 이 정도면 감사한 일이며, 이렇게 멋들어진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전망대가 풀섶 사이의 도로라서 모기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저산리 유촌방파제

모기 덕분에 자리를 옮겼다.

낮에 잠시 봐 두었던 곳으로 저산리 유촌 방파제였다.

그곳은 확연히 바람이 달랐고, 숲이 아니므로 모기도 없었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해의 빛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바다의 빛과 하늘빛은 시시각각 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서 있으려는 계획은 있기나 했었던 것인지.'하는 생각 말이다.

대답은, 그냥 우연히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계획하고 마치 내 뜻대로 되는 줄로 알았지만, 결국 주어지고 또 나는 선택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유촌방파제


이정표는 있었지만, 그 이정표를 따라가다 맞닥뜨리는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겠다. 


정답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정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각자, 자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고 때론 그 판단이 '틀렸구나!' 후회하면서도 살고, '나름 나름' 안도하면서도 살아가는 것이다.


덕유산 오이풀

이번 여행은 그늘이 그리운 여행이었다.

해가 막 들어간 저녁 무렵 잠깐은 그래서 그토록 고맙기도 했고, 나무 그늘도, 잠시 구름이 만들어주는 구름도 고맙기만 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덕유산에 들렀다.

그곳엔 오이풀이 한창이었다. 나는 그냥 덕유산 향적봉을 향했을 뿐인데, 산은 내게 수많은 것들을 내어놓는다.

그중에서 나는 선택할 뿐이었다.


그냥, 그랬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주어진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조금은 깨달았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