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nalog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수 Jul 05. 2018

꽃이 진다, 꽃이 핀다

# 지는 꽃과 피는 꽃이 공존하는 날

백량금


앙다문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했다.

봄부터 꽃은 피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준비해서 장마철이나 되어야 피는 꽃도 있다. 물론, 이보다 더 늦게 피어나는 가을꽃들도 있다. 꽃들은 저마다의 시계를 가지고 있어서 피어날 시기를 아주 정확하게 안다.


장맛비가 오르락내리락하듯 꽃도 피는 꽃과 지는 꽃이 교차한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날, 지는 꽃에게도 피어나는 꽃에게도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요, 사색의 시간이요, 속세를 잠시 떠나는 시간이라 정신건강에도 좋다.



다육식물의 꽃들이 이렇게 피었다가 지고 있다. 아래의 꽃은 열 송이도 넘게 피어났는데 딱 한 송이만 남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10개의 꽃을 피웠는데 다 시들어버리고 하나만 남았다면 그래도 나는 감사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1할의 감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으로야 남은 것에 대한 감사와 진꽃이 맺을 열매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겠지만, 현실로 맞닥뜨렸을 때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 묻는 것이다.


꽃은 대답한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산수국의 헛꽃


고개를 숙이고 가는 꽃도 있다.

그러나 산수국의 헛꽃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봄이 오고 초여름 꽃이 필 때까지 그들은 기어이 남아있을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라서 갈색의 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봄이 오면 잘 마른 꽃대를 잘라 서재 벽 한편에 걸어놓을 것이다. 지금 걸어놓은 그 꽃이 바스러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 옆에 함께 걸어둘 것이다. 


본래 한 몸이었지만, 만날 수 없는 이들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니 견우와 직녀의 만남보다 더 희귀한 만남이 될 수도 있겠다.


고추꽃


그 곁에는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는 겸손한 꽃도 있다.

예쁜 걸로 치면 별로지만, 요즘 피어나는 꽃 중에서 가장 고마운 꽃이다. 언제 꽃이 피었다 지는 줄 모르게 속전속결로 피었다 지고, 질 때면 반드시 열매를 내어놓는다. 어느새 가지마다 주렁주렁 고추가 열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식탁에 올릴 고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내 식탁에 올릴 고추를 한 줌씩 준다.


고개를 숙인 꽃은 겸손한 꽃이다. 물론, 교만한 꽃은 없다. 


범부채


조금은 걱정되는 꽃이다.

장마철에 너무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다. 그러나 범부채는 범부채대로 방도가 있을 것이다. 봄이 새싹이 올라올 때만 해도 뭔가 싶었다. 꽃이 필 무렵이 되어서야 그의 정체를 알았다. 피었다가 질 무렵이면 꽃잎이 돌돌 말려 맺은 열매를 감싼다. 꽃은 단순히 예쁘게만 피어나지 않는다. 예쁜 것도 이유가 있고, 심지어는 꽃잎의 숫자도 길이도 다 이유가 있다.


허긴,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자연이다.


다육식물

피어날 꽃이다.

올해는 다육이 꽃을 많이 봤다. 물론, 봤다는 것은 내가 직접 키워 꽃대를 올리고 핀 꽃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세 종류의 꽃을 봤고 이제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다. 꽃들이 이렇게 피고 지니 그 어려운 다육식물의 이름 불러주기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생긴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지는 꽃과 피는 꽃이 공존하는 날, 나는 그들을 보며 갈등하는 두 마음들 사이에서 선한 마음에 먹이를 주고자 한다. 고마운 존재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가고 오는 것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월에 만난 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