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시작된 몽고제국의 신화. 그 공포의 원천.
몽골마
첫번째 말이 몽고마, 두번째 말이 우리가 흔히아는 서역마입니다 (사진은 구글검색)
13세기. 허허벌판 몽골초원을 제패하고 일어난 테무진과 그 부하들은 동정서토하여 천하사방을 찍어누르니, 그게 바로 몽골제국입니다.
말 안장에서 태어나 말안장위에서 죽는다던 몽골기병들은 특히나 서쪽국가들에게 크나큰 공포였습니다. 가끔 매체에서 보여지는 몽골기병에 대한 묘사는 아마 당시 병마에 대한 확실한 고증보다는, 너무도 빠르게 다가서는 몽골군에 대한 공포심에 대한 묘사라고 보는것이 더 옳을것입니다. 바싹마른 건초더미위에 쏟아진 불덩이처럼, 몽골군은 순식간에 서쪽으로 진격하여 전례없는 속도로 상대를 박살내기 시작하는데요. 러시아부터 동유럽까지 불붙은 몽골기병의 파괴력에 제대로 맞상대할 수 있는 군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둑터진 강물처럼 모든것을 집어삼킬 뿐이었고 그것은 꼭, 전신의 대리인것인냥 몽골군의 전투력은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화가 된 제국의 패업은 천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종이에 쓰인 글자들로만 남았습니다. 전쟁사에서 워낙 유명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몽골군이 어떻게 전투를 치루었느냐에 대한 이야기는 별재미가 없을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몽골의 기병, 특히나 전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간과 말은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죠. 말은 현대의 자동차로 이야기 되는데, 조금 더 정확히 보자면 과거 냉병기 시대의 말은 뛰어난 운송수단과 동시에 전쟁에 꼭 필요한 전쟁물자이기도 했습니다. 한무제가 흉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해 대완국으로부터 데려온 3000여마리의 서역마는 결국 한나라 군전력에 큰 보탬이 되었죠. 당시 한무제가 데려온 서역마는 요즘 우리가 보는 늘씬하고 잘달리게 생긴 멋진말이었습니다. 한혈마라고도 하는 종으로 추정되는 여포와 관우의 적토마도 서역명마였습니다. 키가크고 다리가 늘씬하고 몸선은 유려한데다 목이 길어 그냥 겉모습만봐도 굉장히 멋져보였을겁니다. 그런말에 올라타서 적진으로 돌진하는 여포나 관우의 신위는 그러니 고대의 전설을 소환해낼만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힘이세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은 전투에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죠.
하지만 진짜 전투에 최적화된 명마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몽골초원에서 나고자란 말들인데요. 압도적인 위력의 몽골기병들을 상상하면서 몽골말을 직접본다면 약간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몽골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명마들처럼 키가 크지도않고 털이 가늘고 윤기가 흐르는것도 아니며, 목이굵고 머리가 크기때문이죠. 얼핏보면 당나귀처럼도 보이는지라 초원을 내달린 절세의 준걸들이 탔었다고 보기엔 볼품없어 보일수도있을겁니다. 키도작고 다리는 두껍고 털은 부드럽지않은데다 사람이 올라타고보면 영 기마병의 위엄이 서질않습니다. 실제로 처음 러시아를 침공할때, 러시아군은 몽골 기마병을 보면서 니들은 무슨 개를 타고 다니냐고 놀렸다고하죠.
하지만 겉모습과 내실이 항상 같은방향으로 가던가요. 몽골말들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루기위해 태어난 전마 그 자체였습니다. 몸이 작다보니 먹는량이 적고, 어딜가도 가리는것 없이 아무런 잡초나 풀들을 거리낌없이 뜯어먹었습니다. 짧고 두툼한 다리와 두꺼운 털들은 오히려 혹한에서도 충분히 버티게 해주었고 작은크기의 몸체는 먼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에너지 손실이 크지않아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았죠. 기존 군마들은 먹는게 까다롭습니다. 말린건초를 먹여야하고 아무곳에나 풀어두고 풀을 먹이면 배탈이 나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일이 잦았다고합니다. 물론 서역말은 크고 멋진외형으로 인해 순간적인 속도나 힘은 몽골말보다 셌지만, 지구력에서 상대가 안되었으니 가성비가 좋지 못했죠.
기존 서양군마 기준 한마리를 제대로 운용하기위해서는 일반보병10명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하니, 서양에선 기병을 하기위해선 돈이 많아야했습니다. 서양 기사계급층이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보기만해도 멋진 준마를 탄 모습은 굉장히 이상적인 전투병기 그자체였지만, 전투나 전쟁은 멋진말 콘테스트가 아니라는게 문제였죠.
작지만 마치 차돌같은 몽골말들은 멀리달릴 수 있었고 음식투정도 없었으며, 러시아의 혹한에도 잘견뎌 거칠것이 없었습니다. 눈이 내려도 눈을 파내면서 풀을 뜯었습니다. 몽골 기마병의 외면만 본다면 저게 뭐 큰 위협이 되나 싶었겠지만, 그들이 옹골차다는것은 맞닥뜨려본 상대들이 더 잘알았던것 같습니다.
기존 자신들의 행군속도로 몽골군이 들이닥칠 시점을 계산했다가 낭패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그리고 이들 몽골말은 측대보로 뛰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여기서 측대보는 걸음걸이에 대한 표현입니다. 측대보는 좌우측 앞다리와 뒷다리가 동시에 걷는 보법이고, 대각보는 그 반대로 걷는것을 말하는데요. 일반말들은 대각보로 걷는 경우가 많았고 몽골말들은 측대보로 걷는경우가 많았다고합니다. 말보법이 무슨 상관이냐 할수도있겠는데 당시 말위에서 활을 쏴야하는 궁기병들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측대보의 경우 위아래로 흔들림이 적어 말안장에서 활의 적중률이 높았다네요. 승마시 말위에서의 흔들림이 적으면 기마병의 피로도도 많이 낮아지죠. 이 역시 장기행군에 큰 장점이었을겁니다. 이 측대보로 걷는 말들을 몽골에서는 조로머리라고 부릅니다.
마르코폴로가 쓴 글을 보면 몽골기마병은 10일을 쉬지도않고 행군했다하니,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그들을 맞닥뜨리는 상대들에게는 그야말로 유령이요, 귀신같았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