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깡시골에 살 때 동네 땅꾼아저씨들이 가끔 하셨던 말이
백사나 청사 얘기였습니다. 백사는 색깔이 흰뱀, 청사는 색깔이 푸른뱀. 지금생각해보면 백사는 분명 알비노가 맞을텐데 청사에 대해서는 의문이 좀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이야기는 제가 분명히 직접 겪은 일입니다만, 생각많던 꼬맹이의 날 좋은 날 헛꿈이라 생각하셔도 딱히 논리적으로 설득할만한 말은 없습니다. 다만 그날의 일을 써보려합니다.
시골 논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짚단을 다 모아서 논 바닥에 쌓아놓죠. 지금은 그걸 다 포장해서 밖에서보면 꼭 마시멜로처럼 보이는데 제가 어릴때만해도 짚단을 그냥 논에 쌓아뒀습니다
그러다가 주변에 소를 키우는 집에서 지푸라기를 다 걷어가거나 그걸로도 다 처리가 안되면 그냥 가을부터 겨울내내 논에 방치되는것이죠.
초등학교1학년, 학교가 끝나면 논이나 산에가서 이것저것 잡으면서 놀았었던 저는, 좀 피곤하면 논에 들어가서 그 볏짚모아놓은곳에 그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햇볕이 따사롭고 하늘이 맑은걸 보고 있다보면 졸음도 오고 세상이 다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런 볏짚속은 굉장히 따뜻한편이라 쥐나 뱀이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는경우가 많거든요. 신기한건 딱 누웠을때 쥐가 몇마리 기어나오면 그 볏짚에는 뱀이 없습니다. 하지만 볏짚을 들쑤셔도 쥐가 안나온다면 그곳은 뱀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동물들간에 천적관계는 단순히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행동반경에 대한 본능적인 적대감과 위협을 느끼는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때 항상 신기했던게 그렇게도 쥐들이 들끓던 뒷창고에 뱀이 한마리 들어간뒤로는 쥐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던건데요. 당시 땅꾼 아저씨들은 뱀이 고양이보다 쥐를 더 잡는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납니다. 가끔씩 그물에 뱀 여러마리를 잡아가지고 오시는걸, 저랑 동생은 잡힌뱀을 보면서 참 신기해했었죠.
뱀이 좋아하는곳은 따뜻하고 햇볕이 들면서 한쪽은 조금 축축한곳이라고합니다. 아마 그런곳에 먹이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것도 있을테고, 따뜻함을 좋아하는 동물이다보니 더 그런곳으로 모이는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가 평소처럼 늦가을 볏짚단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 날은 정말 뭔지모르게 귓가에서 소름이 올라왔던게 생생합니다. 뱀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신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뱀은 쥐나 개구리처럼 울음소리를 내진 못하죠. 제가 당시 귓가에서 소름이 올라왔던건 뱀이 제 머리가 얹힌 볏짚바로밑을 천천히 기어가는 소리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소리가 선합니다. 다소 까끌까끌한 마른볏짚과 축축한 볏짚이 섞인 틈사이로 매끈하고 길다란 몸체가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의성어로도 그럴듯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꼭 매끈한 끈이 저절로 풀려나가는 소리라고 해야할까요. 귀 바로밑으로 분명히 길다란 무언가가 스윽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귀밑으로 올라온 소름의 원천은 그 매끈한 가죽이 지나가면서 볏지푸라기를 슬슬 긁어대는 소리였습니다.
소리만으로 어떤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해본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겉가죽이 볏짚사이를 헤집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저는 그것이 분명 뱀이라는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소리만으로 내 머리 바로 밑에 그런 생물이 몸통을 꿈틀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생김새와 모습이 그려지는것은 8살 아이에게는 굉장히 달갑지 않은 경험일겁니다.
쥐나 개구리가 느끼는 공포감이 어떤것일지 그 잠깐의 시간동안 짐작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왜 쥐나 개구리는 뱀이 지척까지 다가와도 도망치지 못할까 항상 의문이었는데 저는 그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쥐나 개구리도 나처럼 이런 소름을 느끼겠구나, 그 소름이 올라온 피부밑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거구나. 뱀의 단한번 공격에 몸을 빼내는 쥐나 개구리는 그 단한번의 탈출이 바로 필생을 위한 모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지진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 소름돋는 소리가 멈추었기 때문이었죠.
귀밑으로 지나가던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볏짚을 긁고가는 그 매끈할것이 분명한 몸체의 기나긴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것. 오히려 그것이 저에게 더 큰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뱀이 먹이를 낚아채기전 몸을 멈추는것이 기억났습니다. 뱀의 크기가 짐작은 안되지만 지금 식은땀을 흘리고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것이 아닐까라는 상상. 상상력이란 간혹 축복으로 표현되는 인간만이 가진 권능으로 이야기됩니다만, 사실 그런 상황에서의 상상은 압박감만을 키울뿐이죠. 뱀이 어디에 있는지 제 오감을 동원해보고 싶었지만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제입장에서는 그저 소리가 멈춘것이 공포였습니다.
딱 한번. 한번의 기회만이 있을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쥐나 개구리가 뱀한테서 벗어나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일어나서 두다리에 힘을 뻗어 그 논을 달려나가는 모습까지 상상하고 나서야 제 배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대로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배에 있는힘을 다 주는 순간. 제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그대로 흩어버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귀옆에서 다시 어떤 물체가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정말로 바로 귀 가까이로 다가와서 불규칙적인 어떤 감각으로 다가왔는데, 꼭 무언가를 재어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만들었습니다. 마치 나 말고 다른 어떤 존재가 맥동하는 소리. 생명력을 지닌 무언가가 내 귀옆에 있음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뱀의 심장소리가 들릴리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공포감에 휩싸인 제가 생각해낸 그 소리의 정체는 분명 하나였습니다. 바로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 마치 나와의 거리를 재어보는것과같은 어떤 느낌은 분명히 그 뱀의 혀가 날름대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한번, 두 번, 그리고 세번 째 들려오는 순간 저는 더 이상 온몸의 긴장과 공포를 참지못하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라서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기세좋게 달려서 논을 벗어난다는 생각은 몸에 미처 전달되지 못하고 흙바닥에 얼굴을 쳐박은 저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죠.
모든것이 제 예상한 그대로의 어떤 긴 물체가 볏짚위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길다란 지팡이같은 존재. 고개를 쳐들고 어디를 바라보는건지 눈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머리는 분명 제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상하던것과는 전혀 다른것이 한가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색깔이었습니다.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황갈색의 그런 뱀일줄 알았는데 초록잔디색깔이었습니다. 여름은 애저녁에 지나버려서 짙푸른 초목은 그 색깔을 다 잃어버린 늦가을의 오후였는데, 그 뱀의 색깔은 온전히 한여름의 녹음을 담고있었어요. 쏟아지는 햇볕아래 몸을 길게 뻗은채로 저를 바라보고있는것같은 그 길다란 뱀은 분명 짙푸른 청색의 뱀이었습니다.
제 몸을 지배하던 공포감이 어떤 탄성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물기를 머금은 것 같은 잔디의 매끈한색을 지닌 푸른뱀은 고고해보이기까지했습니다. 한줄로 길게 뻗은 청녹색은 꼭 파스텔로 일부러 그려놓은것처럼 아름다웠네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의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않았습니다. 그 푸른뱀은 정말로 연기처럼 몸을 감췄습니다. 그렇기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그 뱀은 저에게 어떤 신비스러운 존재로 남기에 충분했죠. 그 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린 그 푸른뱀. 가끔씩 8살의 어린 제가 볏짚위에서 잠깐의 꿈을 꾼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귀밑에서 움직이던 그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제 거의 30년 가까이되는 기억인데, 그날 느꼈던 공포가 짙푸른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으로 바뀌었던것이 뇌리에 깊게박혀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분명히 청사를 보았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이죠. 그리고 그 날 본 푸른
뱀을 이야기했을때 땅꾼 아저씨의 흥미로워하던 표정... 네가 본게 정말 청사라면 좋은구경 한것이라던 아저씨의 말이 아직도 선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