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선천성 심장병과 25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1966년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땅의 뿌리 그 깊은 속> <잠시 머물다 가는 지상에서의 사랑> <길 끝에 서 있는 길> <꿈섬> <우리들의 고향> <서천꽃밭 달문moon>
소개
시대가 잃은 무언가를 우리는 강산 시인에게서 찾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서정이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인간이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시라, 누군가는 고향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맑은 물이 흐른다. 서정, 인간, 시, 고향,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 흐른다.
오늘의 시대에도 어딘가에는 시적 삶이 있을 것이다. 수수하고 두터운 손으로 세상을 듬뿍 쓰다듬는 그러한 삶이 있을 것이다. 텅 비운듯 하면서도 두둑한 한 상 가득한 그러한 삶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벗는 시대에
벗는다 사람들이 서둘러 벗는다
하늘을 벗고 산을 벗고 바다를 벗고
강을 벗고 강물소리까지 벗는다
벗는다 여자들이 벗고
남자들도 서둘러 벗는다
겉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살을 벗고
속살을 벗고 뼈를 벗고
목숨까지도 쉽게 벗어 던진다
벗어야 할 것은 벗지 못하고
자꾸만 입으면서 욕심을 입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죄를 껴입으면서
이데올로기 전쟁 종교전쟁 폭력
현실과 거짓 그리고 빚더미와 어둠
벗어야 할 것과 벗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생각을 벗어 버리고
자꾸만 자꾸만 성급하게 벗어던져
버린다 우리의 몸을 벗어던져
버린다 우리의 넋을 벗어던져
버린다 우리의 양심을 벗어던져
버린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벗어던져
버린다 우리의 고향을, 땅을, 인정을,
이웃을, 뿌리 뽑아 내팽개쳐 하수구에 버린다
쉽게 벗고 쉽게 다시 입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벗어던져 버린다 떠나버린다
사람이 사람됨을 벗어던져 버리는 시대에
나는 고향 여울물 소리를 추억처럼 입는다
나는 이제 너에게 돌아간다
나는 이제 너에게 가야 한다
나는 이제 너에게 돌아간다
나는 이제 너에게 들어간다
나는 이제 너에게 스며든다
나는 이제 너에게 숨을 쉰다
나는 이제 바다로 돌아간다
나는 이제 하늘로 돌아간다
나는 그렇게 파도처럼 간다
너는 그렇게 구름처럼 간다
너에게 나를 보내려고
너에게 나를 보내려고 나를 찾는다
너에게 나를 보내려고 너를 찾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너에게 나를 보내려고 먼저 찾는다
배 가득 나를 찾아서 실어가고 있다
배 가득 푸른 하늘이 실려가고 있다
개구리밥 상에 뜬 연잎 한 상
너를 찾으려고 진흙을 뒤졌다
너를 찾으려고 물속을 뒤졌다
나를 찾으려고 흙속을 뒤졌다
나를 찾으려고 속살을 뒤졌다
개구리밥 상에 달처럼 솟았다
개구리울음소리 환하게 핀다
너의 숨소리가 환하게 보인다
너의 숨비소리 속까지 보인다
아직 홀로 서지 못하는 너와 나
뜬 잎 한 장의 실핏줄이 흐른다
너와 나의 가슴에 거미 한 마리
가시나무새와 누란의 양파꽃
당신과는 발가락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해는 서산마루를
붉게 걸어가고 나는 잠을 깬다
밤에만 피는 꽃잎 속에서 나는
살아있다 어둠은 나의 집이다
그 집에는 천년을 열어도 다
열지 못할 많은 문이 있다
천년에 딱 한 번 한꺼번에
잠깐 어둡게 열렸다가 스스로 잠긴다
그 속에는 발가락도 닮지 않은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
고백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고민한다
고민한다 그리하여 나는 불러본다
불러본다 그리하여 나는 울어본다
울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웃어본다
웃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도망친다
도망친다 그리하여 나는 쓰러진다
쓰러진다 그리하여 나는 돌아본다
돌아본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살아난다
사랑하기 위하여 저만치
저만치 피어있는 꽃 한 송이
목차
1. 강산 작가님 - 추억과 생각
2. 예술에 대한 생각
1. 강산 작가님 - 추억과 생각
이곳에서 강산 작가님을 뵈었을 때, 강산 작가님의 아들들의 맑은 얼굴들을 보았을 때, 저는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리 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4월의 폭풍을 지나 6월에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그곳에서 맡은 일을 감당하시며, 자연을 돌보시며, 윤동주에 대한 연구를 올려주고 계신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말을 아끼어야 하는 오늘입니다.
2. 예술에 대한 생각
한 영혼이 닿고자 했던 곳에 닿았다면.
하늘이 떨 것이다.
대지가 숨 쉴 것이다.
바다가 으르릉 거릴 것이다.
역사, 시대, 민중, 영향력, 인정, 평론, 알려짐, 보상은 소중한 것이며 속세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위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닿고자 했던 곳에 닿았던가.
전자는 다이아몬드, 후자는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