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요론섬을 홀로 여행한 기록
어젯밤에 비가 쏟아졌고 다음날 일기예보도 비가 온다고 했기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부터 열었다. 다행히 하늘이 맑았다. 작은 섬은 예보가 계속 바뀌는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었다. 조식을 먹으러 복도 끝까지 걸어간 후 오른쪽에 위치한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생선구이, 계란말이, 된장국으로 구성된 일본식의 정갈한 밥상이었다. 아주머니가 잠자리는 어땠냐며 걱정을 해주셨다. 밤 사이 신경 쓰였던 딱딱한 베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눕는 시늉 후 머리를 가리키며) 카따이데스." 이것만으로 다행히 아주머니는 알아들으시고 베개를 바꾸어주었다. 식사를 하고 돌아와서 카베진 2알과 홍삼 엑기스 한 포를 먹고 앉아있다 보니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이날은 바다에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가기 좋은 간조시간은 오전 10시였다. 8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기에 결국 9시까지 다시 잠에 들었다.
아래 위로 레시가드를 입고 오리발과 장갑, 스노클, 갈아입을 옷, 속옷, 카메라, 모자, 와이파이, 핸드폰, 돈, 타월을 챙겨서 나왔다. 자전거를 빌리러 어제 아주머니가 알려준 혼다렌타카에 다시 갔다. 자전거는 세 종류였다. 기어 없는 자전거, 기어있는 자전거, 전기자전거. 지난번 요론에 왔을 때 일반 자전거로 고생한 게 생각나서 전기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고나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시원스레 앞으로 쭉쭉 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전기자전거를 선택하길 정말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전기자전거는 24시간에 2000엔이다.)
스노클링 하면 분명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것 같아서 편의점 마소에서 물, 야채음료, 에너지바를 샀다. 샤워장에서 쓰려고 일부러 100엔짜리로 거슬러 달라고 했다. 일단 어제 숙소 아주머니가 추천한 쿠로파나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자전거에 핸드폰을 거치대를 설치하고 핸드폰을 끼워 네비로 사용했다. 자전거용 핸드폰 거치대 덕분에 여행 내내 정말 편하게 다녔다. 요론섬은 길의 높낮이가 꽤 있어서 자전거로 다닐 수는 있지만 조금 힘들다. 전기가 도와주는데도 다리가 너무 아팠다. 허벅지가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그전에 왔을 때는 기어 없는 자전거로 어떻게 다녔었지? 몇 년 사이에 체력이 말도 안 되게 줄어든 건가? 하긴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쉬다 달리다를 반복했었다.
내비게이션에는 쿠로파나에 도착했다고 알림이 왔으나 길이 없었다. 옆에 보이는 건 무덤뿐. 막힌 길 앞에서 바다로 들어갈 만한 길을 찾았더니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오솔길을 지나 바다를 살펴보았다. 분명 추천할만한 해변이긴 했다. 바다도 얕고 바위도 있어서 물고기도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샤워실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있다고 했는데.. 아마 여기서 해수욕을 한다면 프라이빗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요론은 어느 해변이든 아주 유명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홀로 사용이 가능하다. 숙소가 근처라면 바로 들어가서 샤워라도 하겠지만 요슈료칸은 샤워시간이 4시부터 10시로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샤워실이 달린 해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카사키로 방향을 틀었다. 아카사키는 샤워실도 있고 씻은 다음 바로 앞 미사키에서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아카사키에 도착을 해서부터 너무 지쳐버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미사키에서 빙수를 하나 시켰다.
계피맛인지 커피맛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당을 충전하기에 바빴다. 겨우 기운을 차린 후 짐을 들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엄마와 아이들이 얕은 물에서 놀고 있었다. 나도 스노클을 끼고 들어갔다. 물고기가 꽤 있었다. 그런데 역시 오리발이 없으니 앞으로 팍팍 나갈 수는 없었다. 다시 나가서 오리발과 장갑을 들고 다른 짐들은 콘크리트에 올려두었다. 오리발을 착용하니 속도가 났다. 수영 실력은 없기에 깊은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얕은 물에서만 놀았다. 물에 떠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나비 물고기와 입술 뾰족한 물고기, 여럿이 몰려다니는 물고기를 가장 많이 봤다. 하지만 절망적인 건 산호가 많이 죽어있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하얗게 변한 것이다. 그 영향이 요론섬 바다까지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화장실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물에서 나왔다. 샤워실에 가보니 전에는 유료였던 샤워실이 무료가 되어있었다. 돈 넣는 구멍은 다 막혀 있었다. 샤워실은 낡았지만 물은 잘 나왔다. 찬물만 나오는데 밖이 뜨거워서 그런지 미지근했다. 얼른 몸을 헹구고 옷을 갈아입고 미사키에 가서 다들 맛있다고 했던 닌니쿠(마늘)라면을 먹었다.
내용물을 튼실하다. 고기 2점, 미역, 김, 마늘 후레이크. 한국이었으면 마늘 후레이크가 더욱 듬뿍 들어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식사 후에는 요론 민속촌에 들렀다. 아담한 사이즈의 정감 가는 민속촌이었다.
예전의 가옥을 재현시켜놨는데 옛날에 있던 건물들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태풍이 자주 오다 보니 금방 부서진단다. 민속촌에도 2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다. 민속촌에서는 녹차와 츠케모노(반찬)같은걸 준다. 맛있긴 한데 짜다. 밥반찬이니 어쩔 수 없지.
아카사키에서 바다에 들어갈 때는 차갑다는 느낌이었는데 햇볕만은 정말이지 뜨거웠다. 커피 생각이 간절해서 어제 갔던 스탠드 커피에서 아이스라테를 테이크아웃 (지퍼백 같은 포장용기에 넣어준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바다에 들어갔던 옷들은 세탁기에 넣고 헹굼으로 돌린 후 탈수해서 널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4시까지 기다렸다가 샤워를 하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일본 가정식은 먹을 수 있는 바쇼테에 갔다.
쇼가야끼(생강고기볶음)정식을 먹었다. 놀랍게도 아주머니가 날 기억하고 있었다. 대단쓰.. 한번 봤는데 몇 년 전에! 요즘 한국 사람들 많이 오지 않냐고 했더니 그렇긴 한데 이 가게에는 잘 안 오는 거 같다고;;
식사를 마친 후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는 한 시간 정도 잤다. 오늘은 조금 외로운 기분. 혼자 노는 건 이틀이 한계인가?!